보통의 공연관람 기록 포맷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사태는 같은 시기에 같은 원작 작품을 소재로 한 연극을 올린 국립극단과 엘지아트센터를 탓해주시길. 비슷하면서 약간씩 다르게 각색된, 혹은 바라본 지점들을 생각나는대로 (=생각나는 만큼만) 적어봅니다. 항상 모든 후기는 아주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함을 강조하지만, 특히 이번에는 두 극을 비교하게 되다보니 더 조심스럽습니다...만 뭐 언제나 그랬듯 그냥 적습니다.
1. 손상규 연출 '바냐 삼촌' at LG아트센터 (5.21, 5.28)
- LG아트센터 시즌 패키지이기도 했고, 손상규 배우의 연출작이라기에 고민없이 선택했다. 그런데 이게 첫 연출작이 아니더라고? '타인의 삶'이 첫 연출작이고, 이게 두번째 연출작인듯 했다. 아 아깝다...하고 생각하던 찰나... 놀랍게도, 타인의 삶도 이미 관람했던 작품임을 뒤늦게 깨달음. 허허... 기억력아 일해라...
- 패키지 예매할땐 항상 가장 저렴한 좌석으로 선택하는 편이고, 이 공연 또한 S석으로 2층에서 처음 관람했다. 2층 1열, 약간 사이드쪽이다보니 아주 멀지 않은 거리이기도 하고 연출과 동선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자리이기에 평소에는 선호하는 좌석이다. 그렇지만 이 극을 보고 나니, 한번 더,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1층 가까운 좌석으로 다시 예매하고 관람했다. 대체로 연극은 가까이서 봐야 더 몰입이 되는 장르라는 걸 가끔 망각하고 좌석을 예매하는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는 가급적으로 멀지 않은 자리로 예매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하게 되었다. 아니 근데, 그것보다도 연극을 이렇게 큰 무대에 올리지 않는게 더 좋지 않을까 싶긴 한데...
- LG아트센터에서 주관? 하는 연극은 매년 매체배우들의 첫 연극 연기 도전의 장이기도 한데, 올해에는 이서진, 고아성 두 배우가 그 주인공이었다. 이서진 배우의 바냐는 굉장히 묘한 느낌이었는데, 무대 위의 모습이 너무나도 이서진 그 자체이면서도 또한 극 속의 바냐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다보니 뭔가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굉장한 칭찬임) 보통 매체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와서 고전하는 부분 중 하나가 무대발성인데 워낙 큰 극장이라 마이크를 써서 그런지 발성에서도 아쉽다는 느낌이 없었고, 딕션도 깔끔하고, 약간 대사가 빠르고 꺼드럭댄다는 느낌이 있지만 그 또한 바냐다웠다.
고아성 배우는 처음 보았을 때에는 멀리서 봐서 그런가 몸연기가 살짝 어색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모든 부분에서는 아니고, 특정 장면에서 손끝이 약간 흩날린다는 인상 정도?) 가까이서 보았을 때에는 또 괜찮았다. 어쩌면 그 장면에서의 힘빠진 손놀림 또한 의사선생님을 사랑하는 소냐가 허둥지둥 정신없이 이야기를 내뱉는 장면에 맞는 동작이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연기도 너무 좋던데? 소냐 대사에서 희극과 비극을 넘나드는 부분들이 꽤 많은데, 이 지점들을 잘 살리더라. 연극에 조예가 깊은 분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딱히 깊은 조예가 없는 내 기준에서는 두명 모두 좋았다.
- 이 연극을 다시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양종욱 배우의 아스트로프 연기를 가까이서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양손프로젝트 공연으로 두 번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이번처럼 하나의 배역을 맡아서 연기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니 근데... 아스트로프 역할이 물론 매력적인 역할이긴 하지만, 이사람 너무 위험하게 매력적인거 아니냐고... 엘레나와 맞붙는 씬에서 숨막히면서도 도망칠 수 없는,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그 아슬아슬한 지점을 너무 잘 살려서 (마음 속으로) 벽을 긁어댔다. 아니, 나 못가겠는데? 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중... 이 불확실한 세상속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인생에 단 한번만 오는 거에요 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 (정확한 대사는 다를 수 있음)
- 이 극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증의 진원지, 엘레나 역할을 맡은 이화정 배우는 완벽하게 엘레나를 연기하고 관객들을 납득시켰다. 2층에서 봐도 아름다워... 매력적이야... 멀리서 보면 표정 연기는 흐릿해지고 대신 목소리와 몸 연기가 더 크게 다가오는데, 2층에서 봐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엘레나였다. 아이같고 솔직한 면을 더 부각시킨, 소냐와 친구같은 엘레나.
2. 국립극단 <반야 아재> (5.22)
- 국극에서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1930년대 한국으로 시공간을 완벽하게 전이시켜 가져왔다. 원작에서의 갈등요소들이 일제강점기의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아니 그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재밌었지만 일제강점기라는 배경을 활용하기 위해 순사들이 중간에 깔짝대는 부분은 약간 거슬렸다. 원작에서의 모든 요소들은 꽤나 깊게 얽혀 있는데, 이 순사라는 요소가 그 바깥에 곁다리만 걸친것 같아 집중이 어려웠달까. 그럼에도 과감한 시도임을 생각하면 전체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각색이었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 장면 즈음에서 정미소를 가동하고, 뭔가 막힌 정미기계를 고쳤는지 어쨌는지 암튼 곡식이 와르르 쏟아지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이 장면을 왜 넣은건지 모르겠다. 무슨 의미지? 최근 국극 무대를 보면서 큰 의미없이 무언가를 무대 위에 마구 쏟아버리는 연출이 꽤 많다는 생각이 있는데 (비라든가... 피라든가...) 개인적으로는 빈공간의 미학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굳이 저런 방식을? 이라는 생각도 있고, 특히나 이 장면은 무대장치를 위해 이야기를 각색했다는 생각이 들다보니 뭔가 더... 더... 암튼 그렇다.
- 국극에서는 반야아재에 조성하, 은희(소냐) 역에 심은경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심은경 배우의 은희는 각색때문일수도 있겠지만 너무나도 현실감 있게 몰입이 되더라. 약하게 사투리를 가미해서 연기하는데 이게 또 도시와 시골의 차이를 꽤나 크게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고. 반면 조성하 배우의 연기도 좋았지만 아쉽게도 몰입은 조금 어려웠는데, 원작에서 47살이었는데 각색을 통해 50살이 넘었다고 표현하다보니, 그 나이에 거의 스무살 가까이 어린 여성에게 연심을 품는게 불편하게 느껴진 탓이 클것 같다. (물론 원작도 스무살 나이차이이긴 한데...)
- 김승대 배우는 뮤지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연극 무대에서 보는 건 처음인듯? (기억력이 좋지 않기에 아닐수도 있다) 그의 아스트로프는 조금 더 점잖은 느낌이었는데, 1930년대의 매력적인 한국인으로써 표현 가능한 선을 고려한 선택이 아닌가 싶었다. 임강희 배우의 엘레나 또한 (상대적으로) 우아하고 조신한 느낌으로, 각색으로 인한 캐릭터성 변경이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 두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 국립극단의 연극들은 다른 극단의 공연에 비해 원로배우들을 많이 기용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손숙, 기주봉, 남명렬 배우와 같은 원로배우들이 함께 했다. 기주봉 배우는 처음이었지만 다른 두 배우는 다른 연극에서도 뵌 적이 있고, 역할 또한 나이대에 맞는 배역이라 편하게 보았다. 나이듦을 연기하시는건지 원래 발성인건지 약간 갸웃거리게 되는 부분들도 있었다만... 기주봉 배우는 엘레긴 역할이었는데, 원 배역의 나이와 차이가 크다보니 약간 붕 뜨는듯한 느낌이 있다. 물론 연극에서 반드시 나이대를 딱 맞춰서 캐스팅해야 하는건 아니지만, 그게 극에서 느껴지는건 조금 다른 이야기니까.
3. 체호프 희곡 '바냐 아저씨' - 을유문화사 체호프 단편선 중 (5.30)
- 약 열흘동안 세 번을 관람한 극에 대한 텍스트이다보니, 처음 읽었음에도 이미 여러번 읽은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내 머릿속의 '바냐 삼촌'들과 조금씩 다른 부분이 느껴져서 독특한 독서 경험이었다. 또한 원작을 먼저 읽으려고 시도했다면 아마 금방 덮어버렸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 희곡의 경우 등장인물들의 대사 위주로 적혀있는데, 중요한 부분들은 지시문이 들어가있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텍스트는 무미건조하게 대사만 적혀있다. 실제로 읽어보지 않는다면, 아니 읽어보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몇번씩 읽어 내용을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텍스트들을 접한다면 굉장히 심심하고 단조롭게 읽혔을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4편의 희곡 중 3편은 연극무대로 본 것이지만 아직 세 자매는 (짧은 장면을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읽힐지 굉장히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 북클럽에서 바냐와 소냐를 두고 안정형 조카와 불안형 삼촌이라고 우스개소리 삼아 이야기했는데, 어쩌면 이 두 캐릭터의 비교가 체호프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들 불행하다. 가끔 행복한 날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지금 오늘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살아가느냐, 불행한 삶을 스스로 끝내려고 하느냐. 소냐는 어떻게든 버티고 버티며 계속 일할 것이라고, 그렇게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그러면 죽은 뒤 신이 자신의 노력을 알아줄 것이라고, 그제서야 우리는 온전히 쉬게 될 것이라고. 삼촌을 도닥이며, 그리고 어쩌면 본인 스스로 또한 다짐하며 힘주어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또한, 체호프가 온전히 약간 뜬구름 잡기처럼 보이는 덧없는 희망을 설파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잘것 없는, 불행한 현실에 대해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그렇게 파고 파고 들어가다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소냐의 위의 대사. 극을 보면서, 그리고 책에서 읽으면서 인생은 고통이고 고통이라는 불교적인 시선이 생각나기도 한다. 불교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닌 것처럼, 체호프 또한 나름대로, 그나마 현실적인 언어로 사람들을 위로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 모든 작품을 읽은건 아니지만, 바냐 아저씨의 의사 캐릭터도 그렇고 갈매기의 도린도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실제로 의사였던 체호프의 삶을 볼 때 약간은 본인을 투영한 캐릭터가 아니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갈매기에서는 소설가 캐릭터도 나오긴 하지만.
- 늙은 교수의 노망난 소리를 네번째 듣고 읽으면서, 볼때마다 점점 더 화가 커진다. 정말이지, 사람은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한다. 아니, 돈을 벌어서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 남의 돈으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특유의 밝음과 무책임함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 교수처럼 이기적인 건 정말이지 용납하기 어렵다. 아니 지금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을 팔자니, 그러면서 이 사람들의 거취는 차차 생각해보자니 진짜 미친놈 아닌가? 그리고 대학교수로 나름 돈을 받았을텐데 그 돈으로는 뭐하고 처가에 와서 빌붙어사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생활비도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말이다.
- 아스트로프와 엘레나의 장면을 원작으로 보니, 생각보다 더 도발적인 장면이었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봐도 옴마야 싶은데 당시에는 어땠을까. 너무 파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 시대 연극에서도 허용되는 범위였으려나. 동시대의 이야기는 내 기준에서 쉽게 평가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닌 작품들은 이런 부분이 자꾸 궁금해진다.
- 아스트로프가 백년, 이백년, 천년 후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곳곳에 있는데, 아니 그거 아니라고 자꾸 겐세이를 놓고 싶었다. 백년 이백년 후에도 딱히 행복해지는 방법 따위는 찾지 못했고, 아직 이백년도 되지 않았는데 환경과 생태는 아주 빠르게 악화되어, 천년 후의 사람들은 (아직은 모르겠지만) 당장 존재할지조차 모르겠는걸. 체호프 극이 오늘날에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시대성이 아닐까. 그 시대에도 물론 통했겠지만 (그러니 유명해졌겠지), 미래를 살아가는 후손들에 대한 상상이 녹아져 있고, 이에 백년 이상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 보아도 여전히 의미있는 이야기라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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