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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공연관람 기록

[230212] 뮤지컬 <미드나잇:앤틀러스>

by eunryeong 2023. 2. 13.

- 초연부터 꾸준히 챙겨본 몇 안되는 소극장 뮤지컬. 이 극을 처음 본 계기가 조금 특이한데, 연극 '페리클레스'에서 전성민 배우의 노랫소리에 완전히 홀려서 이 극의 초연까지 보게 된 것. 이 극은 대본만 사와서 한국식 연출로 제작한 앤틀러스 버전과 영국 연출까지 가져온 액터뮤지션 버전이 있는데, 두 버전 모두 한두번씩 본지라 내 기준에서는 꽤 많이 본 편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다시 이 뮤지컬을 관람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전성민 우먼의 복귀.

 

- 액터뮤지션과 비교했을 때 무대가 꽤 직관적인데, 유일하게 해석의 여지를 불어넣은 부분이 무대 정중앙에 위치한 사슴각하이다. 처음 이 극을 봤을때 쓴 후기에는 바포메트의 이미지 차용이니 뭐니 거창한 해석을 늘어놓았었는데 ㅋㅋㅋㅋ 알고보니 Dear 각하를 Deer 각하로 치환한 것일 뿐. 근데 이런 단순명료하면서 위트있는 해석이 더 마음에 든다. 이런 장난질을 숨겨놓은 연출 너무 귀엽잖아 ㅋㅋㅋㅋ

 

- 비지터와 우먼은 초연부터 봐온 배우들이고, 류제윤 맨은 아마도(확신은 없음) 이 극으로 처음 보게 되었는데 맨의 연기가 다른 두 배우와 조금 다른 결이라서 아쉬웠다. 특히 전성민 우먼과 합이 잘 맞지 않는것 같았는데, 상대적으로 낮은 톤에 좀 더 연극적으로 대사를 소화하는 우먼에 비해 살짝 들뜬듯한 목소리 톤에 너무 현대식 억양이라 극에 착 달라붙지 않는다는 느낌? 사랑꾼 남편을 연기하기 위해 귀여운 행동을 중간중간 많이 하는데, 연기가 착 붙지 않은 상태에서 극의 진행과는 크게 상관없는 동작들이 더 크게 부각되다보니 어딘가 겉돈다는 느낌을 중반까지 받았다. 갈증이 고조되는 후반부에서는 괜찮았던걸 보면, 다른 배우와 연기하는걸 보면 또 다른 감상이지 않을까 싶음.

 

- 고상호 비지터는 이제는 뭐 고유명사니까요. 의도한건 아니지만 내가 본 모든 미드나잇의 비지터는 고상호씨였고, 내가 본 모든 고상호씨의 극은 미드나잇이었음. (각각 다른 비지터와 다른 극을 시도했지만 코로나...가 다 취소시킨 바람에^^) 비지터라는 역할이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이지만 그만큼 제대로 소화하지 않으면 오히려 우스워질 수 있는 도전적인 역할인데, 위트와 위압을 모두 갖춘 완벽한 비지터라고 생각함. 특히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혼자 능청스럽게 이야기하는 연기가 일품이다. 

 

- 전성민 우먼은 차분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쎄한, 결국에는 맨도 비지터도 다 이겨버릴것만 같은 강한 우먼. 연기도 캐릭터 해석도 좋지만, 역시 맑으면서도 힘있고 옹골찬 노랫소리가 가장 좋다. 특히 파파는 내가 본 우먼들 중에서 가장 내 취향으로 잘 소화함. 왜 전성민 우먼의 파파 박제가 없는건지 아쉬울 따름.

 

- 몇번씩 본 극이라 내용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만한 것은 딱히 없고, 대숙청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모르더라도 어떤 상황인지 한국인이라면 모두들 잘 알수밖에 없어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지리적으로 저 북쪽에서는 여전히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이 곳에서도 몇십년 전까지는 없었던 일은 아니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현실의 여러가지 상황들을 상기시켜서 보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해지기까지 함.

 

- 마지막에 커튼콜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다같이 박수를 치는데, 아니 뮤지컬 보는 관객들의 박자감각이라고 믿을 수 없는 성급하고 빠른 박수소리 ㅋㅋㅋㅋㅋ 이게 맞어? 이러다 연주까지 휘말리겠는데? 생각이 드는 순간, 고상호씨가 관객들에게 잠시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박수소리가 잠잠해지자 다시 박자를 맞춰 박수를 유도했다. 와 역시 비지터 짬바(?)가 이런데서 드러나는구만 하고 생각했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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