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극이 처음 떴을 때 가지고 있던 정보는 '국립정동극장 세실' '보이지 않는 손의 작가' 뿐이었다. 굉장히 충동적으로 잡은 표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긴, 내가 잡은 대부분의 연극 표들이 충동구매이긴 하다. 암튼 이 충동구매의 결과는, Not Bad. 나쁘진 않은데, 그다지 이해되지 않는 지점도 많은 미묘한 연극.
- 이 극의 주 갈등소재는 무슬림 가정에서 자란 자리나가 소설을 하나 발표하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필 그 소설의 소재가 이슬람교의 선지자인 무함마드이고, 선지자의 치부라면 치부일 수 있는 그의 아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무함마드는 자신이 받는 계시가 과연 신의 음성이 맞는지, 다른 불순한 것들의 목소리는 아닌지에 대해서도 의심한다. 아홉번째 아내를 취할때의 한 인간으로서의 성욕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기에서 궁금한 것은, 자리나는 과연 어떤 글을 의도했는가 이다. 자리나 본인은 무함마드를 사랑하고 그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하지만, 극을 보면서 든 생각은 '그건 아니지 않나?' 였다. 이슬람 교리의 허구성과 억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그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자리나 스스로 밝힌 그 목적이라면, 모르겠다 나는. 단순히 아버지와 파국으로 치닫는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라면 더더욱 모르겠다.
-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소설가에 의해 선택된 것들만이 소재가 되어 소설로 재탄생된다. 이 때 어떤 것이 소설의 소재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정의 기준, 부의 기준이 있다. '정'의 기준이란 그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 소설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의 적합성 등이 될 것이고 '부'의 기준이란 법적, 도덕적으로 부적합한지 아닌지, 혹은 그 이야기를 사용함으로써 소설가가 짊어지게 될 리스크의 크기 등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이야기는 쓰고 싶어도 쓰면 안된다. 본인이 그 소설로 인한 파장을 고려하고 이를 다 감당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럴 자신도 의지도 없다면 그래서는 안된다.
자리나의 선택에 대해 의문을 품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 자리나는 소설을 하나 쓰고 발표하는 것이 아주 대단한 사명인양 행동하지만, 그건 그냥 이야기를 하나 엮어낸 것에 불과하다. 자리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합리적으로' 행동해주길 기대하지만, 사람인 이상 어떤 소재도 그렇게 객관의 영역에서 안전할 수 없다. 자리나가 이 소설에서 쓰여진 내용에 대해 본인의 남편과 아버지, 가족들이 이해해주고 지지해주길 바랐다면 그것은 너무나 희망회로를 잔뜩 돌린 판단이다. 자신을 둘러싼 많은 무슬림들로부터 돌을 맞고 연을 끊을 각오를 했다면 모를까, 남편과 아버지의 태도에 대해 섭섭해하고 화를 내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소설가(혹은 예술인)들이란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걸까?
- 자리나의 소설에 대해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걱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조롱으로 느껴질 수 있는 내용과 표현들, 다른 하나는 그렇게 느끼는 무슬림들에게서 작가인 자리나가 받게 될 비난과 위협.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너무나도 이해가 가는 부분인 것이, 악마의 시를 지은 살만 루슈디가 이 작품을 발표한 후 무슬림들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아 이름도 바꾸고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을 보면 무함마드를 정면으로 다룬 이 소설은 그보다 더한 상황에 휩쓸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것이 옳은 일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그릇된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자리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버지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일수밖에 없다.
- 연극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인물이라면 자리나의 남편인 엘리일 것이다. 그는 백인 중산층 사회에서 태어나 무슬림 세계를 스스로 선택해서 들어간 독특한 포지션의 인물이다. 자리나를 존중하고 사랑하지만 그녀의 소설이 일으킬 파장을 걱정하지만, 자리나의 아버지가 내뱉는 폭언에 맞서 자리나의 편을 들어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제 3자의 시선에서 무슬림 세계를 바라볼 수 있기에 이야기 흐름에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인물이지만, 백인이고 남성이자 중산층이라는 어느 하나 소수자에 속하지 않았던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행운이 있었기에 이런 시선이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아가서, 우리 사회가 혹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시선들 또한 환경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는 이 뒤에 개인적인 몇 가지 경험들을 적었었는데, 불필요한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다 지웠다. 암튼 내게 주어진 행운은 행운으로, 불행은 극복하며, 그렇게 살아가야겠지.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나의 불운을 탓해봤자 의미 없는 일이고, 나의 남은 인생은 어찌 되었건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니.
- 결론적으로, 이 연극을 보며 묘한 불편함이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작가들의 자의식 과잉이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소설 혹은 작품이 아주 대단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 화제성을 위해 의식적으로 고르는 선정적인 혹은 논란의 주제, 내용 전개에 불필요한 선정적 묘사 등등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완성시킬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자기기만적인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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