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공연관람 기록

[230318] 연극 <컬렉티드 스토리즈>

eunryeong 2023. 3. 22. 11:51

- 이 작품은 지난번에는 '단편소설집'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던 연극이었다. 이번에 제목을 원제를 그대로 읽은 이 제목으로 바꾸었는데, 의미 면에서는 단편소설집과 컬렉티드 스토리즈 간 간극이 있으니 더 정확해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솔직히 난 0점을 주고 싶다. 한국에서 공연되는 극의 제목이 왜 영어여야 하는지? 그럴거면 번역도 어차피 영어 혹은 다른 나라의 언어를 정확하게 한국어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데 아예 영어로 대사를 읊지 그래. 다른 극에 비해서 좀 더 신랄하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굳이 한국어 제목을 다시 영어로 쓴 이유를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워서 한마디 적어보았다.

 

- 노년의 대가와 젊은 지망생을 다룬 연극이 몇 편 있었지만, 여성을 소재로 한 작품은 처음이라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했다. 결론적으로는, 여성이어야만 의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 의미있는 작품이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는 남성 화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여성이어야만 의미있는 이야기에 국한하여 여성 화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 혹은, 후자라 하더라도 굳이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서 남성 화자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또 다른 특기할 부분은, 여성 화자에게 주어진 배역은 글을 쓰는 작가라는 것이다. 화가나 음악가의 영역은 아직 남성적이고 여성 대가가 등장하기에는 어색하다는 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 극의 주요 갈등은 반짝반짝하는 시간을 걸어가는 리사를 보며 루스가 느끼는 묘한 감정들, 그리고 리사가 집필한 소설의 소재. 전자는 아주 인간적인 자연스러운 감정이면서도 이를 인정하는 것은 조금 부끄럽게 생각되는 그런 묘한 부분들인데, 루스는 리사의 성공을 바라보며 자신이 다소 예민하게 구는 부분에 대해 질투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루스가 정말 질투 때문으로만 예민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교수와 대학원생으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루스는 자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선'이 있고, 그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과하게 받아들여 상처받은 리사를 나름의 방법으로 보듬어주려는 따스함도 가지고 있다. 

 

- 리사가 루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쓴 것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난 루스가 리사에게 분노한 그 지점들을 이해한다. 작품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그 소설속의 인물이 '나'라는 본연의 존재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속에서 '나'를 찾게 되고 '나'와 다른 점들, '내'가 불쾌하게 그려지는 것들에 대해 자꾸 집착하게 된다. 나는 내 이야기를 소설에 소재로 쓰겠다는 것에 대해 사전 동의도 받았고, 내 소재가 작품의 온전한 메인스토리가 아닌 일부 에피소드로만 들어가 있었고, 작품이 완성된 후 먼저 그 내용을 내게 보여주었고, 심지어 습작이어서 출판을 위한 글도 아니었다. 그리고 리사는,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신경쓰지 않았고 자신의 인생이 소설의 소재로 이용된 루스를 배려하지 않았다.

 

- 다만 관객들이 루스에게 온전히 공감을 보낼 수 있을까? 리사가 장편 소설을 쓰는 데에서는 분명히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루스에게 항변하는 내용에 대해 많은 관객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공감과 이해를 보낼 것이다. 무엇보다도 루스는 소설가이다. 루스는 그렇기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함부로 소재로 써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소설가가 아닌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저 루스와 리사 모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동의 없이 가져다 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루스는 리사에게 자신을 사로잡는 이야기가 있다면 가져다 쓰라고 이야기했고, 리사는 그 이야기가 루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내게는 목소리가 있다며, 그렇기에 그 이야기들을 소설로 적는 것이 잘못되었다며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보며 마음 한 켠이 차가워지는 이유는 은연중에 관객들을 '목소리가 없는 자들'이라고 여기는 선민의식 때문이 아닐까.

 

- 연 이틀동안 작가들의 자의식 과잉 시리즈(?)를 보게 되어 기분이 묘했는데, 이 극을 보고 나오는 길에 바로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시간이 된다면 다시 한번 같이 이 연극을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대구에 거주하는 동생이 서울까지 올라올 시간을 내기 쉽지 않았고, 대신 본가에 내려갔을 때 이 연극과 관련한 이야기를 몇가지 더 나누었다. 아마 나의 필터링을 거친 이야기 전달이었기에 그럴지는 몰라도, 동생 또한 리사가 선을 넘었다는 의견이었다.

    다만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나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품소재로 가져올 수 밖에 없는 작가의 입장에서 어디까지가 허용선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바로 정의내리지는 못했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만을 그려야 하는 것일까? 주변 인물이 연상되는 소재는 결코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그대로 소설에 옮겨 문제가 크게 불거졌던 사건, 자신이 만난 사람에 대해 주변인들은 쉽게 유추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묘사를 하여 그의 후일담을 적은 소설, 그리고 동생의 소설에 등장하는 나와 내 물건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정답이라는 게 있을 수 없었다.

 

01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