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로 애정하게 된 이자람씨가 작창을 했다는 소식에 국립극장 패키지로 미리 잡아두었는데, 나중에 보니 웹툰 원작이라 인기가 어마어마하더라. 매진행렬 끝에 회차를 연장할 정도였음. 선예매가 아니었다면 공연 자체를 보지도 못할 뻔 했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 초반에 캐스팅 관련하여 논란이 조금 있었는데, 연출의 인터뷰 스킬이 부족했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긁어부스럼을 만들었다고 해야하나... 암튼 웹툰에서 여성으로 나오는 인물 일부를 남성 역할로 바꾸었다고 해서 시끌시끌했다. 거기다가 여기에 젠더 이야기를 덧붙였다고 해서 더 말이 많았다만, 난 일단 공개된 주요 배역이 모두 여성 배우들이었고 연출과 작창진들의 기존 작품을 고려해봐도 딱히 아쉬울만한 부분은 없을 것 같아서 일단 작품을 보고 판단하기로 함.
작품을 보고 나니 딱히 여성 캐릭터를 무리하게 남성단원이 맡은 부분도 없어보였고, 찾아보니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뀐 역할도 스쳐가듯 나오는 단역같은 역할이던데. 거기다가 인터뷰 원문을 찾아보니 '원작과 관련한 젠더 담론을 상기하는 효과'더만요?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 정도 역할은 남성 배우가 맡았을 때 해석이 풍부해질 수 있는 역할 아닌가? 원문을 찾아보니 굳이... 저렇게 논란이 된 이유 자체를 모르겠다 싶음. 아니 배역 공개도 전이면 모를까, 일단 주요배역이 다 나왔던 상태의 인터뷰인데...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배역이 원래 기준과 다르게 캐스팅되는 가장 큰 이유는 캐스팅이 어렵기 때문이다. 키가 180이 되지 않는 찰리, 브라운이 나오는 이유도 그렇고... 그냥 여성 배우들을 더 비중 큰 역할부터 채우다보니 배우가 모자랐겠지 당연히)
일부 사람들은 모든 배역을 여성이 맡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극은 여성국극을 다룬 창극이지 여성국극이 아니다. 여성만 나오는 작품을 원하시면 지금 올라오고 있는 여성 위주의 서사의 작품들 많이 봐주시고 사랑해주시면 될 듯. 분장실, 컬렉티드 스토리즈(이건 오늘이 막공이네...), 레드북(이것도 여성만 나오는 작품은 아니다만) 등등 좋은 작품 많다.
- 난 원작을 보지 않았었는데, 관람평들이 대체로 원작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웹툰을 미리 한번 볼까 싶어서 시도했다가... 무료공개분인 8회까지만 보고 일단 덮었다. 130화가 넘는 방대한 양을 이거 보기 전에 다 소화하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일 것 같고, 원작을 알고 봐야지만 보이는 작품이라면 의미없다는 생각도 있어서 그냥 극을 본 후 원작은 찬찬히 보는 것으로 결정.
- 원작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극에 대한 감상평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다보니 조금 산만하다. 그렇지만 편하게 보기에는 나쁘지 않다. 그래도 역시 이야기들을 조금 덜어냈으면 좋았을 걸. 음악은 좋았다만 중간 중간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긴 했다. 이 정도랄까? 원작 팬분들의 평을 보니 빠진 서사가 너무 많다고 하는데, 2시간 남짓한 무대공연에서 130화 웹툰 내용을 다 다룰 수 있을리가 없다. 이 부분에서 제작진들의 고민이 정말 많았겠구나 싶었는데, 나같은 사람들은 뭐 이리 난잡해? 하고 생각하는데 또 원작 팬들은 내가 아는 정년이는 이렇지 않아! 라고 생각할테니 그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게 참 어려울 것 같다.
- 난 원작을 안봐서 그런가, 중간에 부용이랑 정년이가 서로 좋아하는 레즈 서사가 되게 뜬금없이 나온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음. 특히 정년이가 중간까지는 그냥 부용이가 오면 온다 싶어하고, 딱히 특별하게 아끼거나 생각해주는 장면이 그다지 보이지 않다가 부용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갑자기 아이고 이제야 마음을 깨달았네~하며 노래하는데, 이걸 보는 내 입장에서는 엥? 갑자기???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그래서 처음에는 이걸 왜 넣었지? 그냥 쳐내는게 나았을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결말에서 부용이가 모란국극단에게 극을 써주는 장면이 해피엔딩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서사가 있는데 흐름상 맞는것 같고. 그렇다면 이들에게 조금 더, 특히 정년이의 감정에 대해 조금 더 시간을 부여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빠져서 아쉬운 서사? 장면?이라고 해야하나. 하나 더 붙이자면, 초반에 정년이가 너무 생뚱맞게 모란국극단 찾아와서 돈 많이 벌고 싶어서 들어가고 싶어요! 하고 오는데 8화까지만 본 내 눈에도 이게 맞나...? 싶었다. 이 극의 메인 서사가 정년이의 국극에 대한 애정, 그리고 성장기라고 생각하는데, 이 입장에서 정년이가 어머니에게 한소리 듣고 반쯤 홧김에 국극단 찾아가는 장면이 있었다면 좋았을걸 싶고. 아마 이 부분을 뺀 건 정년이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나중에 터트려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려고? 가 아니었을까 싶긴 하지만.
- 조금 다른 얘기지만 영서랑 정년이 관계가 유리가면의 아유미랑 마야 관계랑 약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음. 그리고 유리가면에서도 아유미 캐릭터가 더 와닿았는데, 여기서도 영서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간다.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그만큼 실력도 갖추고 있고, 자신이 가는 길에 확신이 있어서 돈과 명예에 구애받지 않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욕심이 강해서 결코 지고싶지 않아 하는. 그나마 아유미는 부모님의 든든한 후원이 있지만 영서는 엄마가 자기를 봐주지 않아ㅠ 여담인데, 후반부에 영서 어머니가 국립국극단장?으로 추대되는듯한 이야기가 나오고 이걸 영서가 지켜보는듯한? 장면이 있는데, 그래서 국립국극단은 어케 된겨? 생긴겨 만겨?
- 이 극에서 가장 와닿았던 서사는 부용이 이야기인데, 여성의 이름으로 글을 쓰면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쓴 글을 아버지 이름으로 발표할 수 밖에 없었고(심지어 여성이 연기하는 국극에서마저!!), 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남성과 결혼하여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시대상을 가장 정면으로 보여주는 캐릭터. 부용이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나도 큰 충격을 받았는데, 정년이가 국극단에서 떠나있던 기간이 기껏해야 1년도 안되었을것 같은데 그동안 언제 남자를 만나고 결혼식을 잡고 했단 말인지...!
개인적으로 저 시대의 결혼에 대해 굉장히 충격받았던 계기가 있다. 예전에 국립극단에서 올린 '운명'이라는 극을 보았는데, 당시 교제하던 멀끔하고 미래도 창창한 남자친구가 있었음에도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머나먼 미국에 있는, 사진으로 얼굴만 본 남자한테 시집가야 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보았었기 때문. 부용이의 결혼 소식에 나도 모르게 이 불행한 결혼생활이 오버랩되었고, 제발 결혼하더라도 남자만은 멀쩡한 사람이길...하는 생각만 했는데 다행히 면사포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길을 가는 부용이의 모습을 보게 되어 행복했다. 그래 부용이 하고싶은거 다 해!
- 후기가 너무 길어져서 일단 끊었는데, 그래도 창극인데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없어서 덧붙임. 판소리는 아직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 잘한다 아니다를 내가 평가하기에는 이른것 같지만, 확실한건 이 극에 나온 음악들이 내 귀에는 다 너무나도 좋았다는 것. 정년이랑 영서의 음색 대비가 캐릭터성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년이의 호쾌하면서도 약간은 거친듯한 목소리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 영서의 맑고 청아하게 쭉 뻗어나가는 목소리는 정성을 들여 갈고 닦은 매끈한 보석이 떠오른다.
그리고 극의 흐름상 판소리가 아닌 다른 음악들도 나오는게 소소한 재미포인트 아닐까 싶다. 다만 많은 곡들을 만들다보니 그런듯 하지만 중간에 음? 싶은, 조금은 유치하다고 해야하나? 그런 곡도 있었던 점은 아쉽다. 국극단이 같이 으쌰으쌰하는 장면?에서 이런게 종종 느껴졌는데 왜일까. 가사 때문인지 곡 때문인지 모르겠네. 그래도 약간의 아쉬운 점들을 제외하고서는 재밌게 봄.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정년이가 나 국극단 들어갈거요! 하고 자기 사연 이야기 할때부터 줄줄 울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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