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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공연관람 기록

[230311] 연극 <회란기>

by eunryeong 2023. 3. 15.

- 고선웅이라는 연출가는 국립극단 공전의 히트작인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연극 연출자들 중 내가 이름을 알 정도면 꽤나 유명한 분이라는 의미. 조씨고아라는 극을 꽤 재밌게 본 터라 이번 극도 기대하며 예매를 했고, 그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시킨 공연이었다. 찾아보니 극단 마방진의 예술감독이시던데, 이 극단의 공연도 조금 더 챙겨보아야겠다 싶던.

 

- 회란기라는 제목이 낯설었는데 막상 공연을 보고나니 어디선가 보던 내용인듯? 아닌듯? 솔로몬의 명판결로 흔히 이야기되는 친자찾기 에피소드가 여기서도 나오는데, 이 판결을 내리는 주인공이 어릴적 TV에서 많이 보았던 바로 그 인물, 판관 포청천이다. (이 극에서는 '포대제'로 나온다) 1막까지의 분통터지는 에피소드들 또한 중국식 신파의 전형이라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 다소 진부하다면 진부한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싶었는데, 과장된 연극톤과 동작으로 극 중간중간 재미를 주면서도 감정선이 너무 바깥으로 새지 않도록 적절한 템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듯 했다. 특히 마지막, 포대제가 한참을 고민하며 판결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던 그 부분에서는 침묵이 꽤 오랜 시간 이어졌음에도, 아니 오히려 계속 이어지던 그 침묵으로 인해 극의 긴장감이 유지되었다는 생각도 들었고. 

 

- 극을 보고나면 보통 아주 좋았던 부분, 아주 별로였던 부분을 나누어서 생각하게 되는데 이 극에서는 둘 다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기발하고 참신하거나, 아주 웅장하거나,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지만 또 한편 어느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었던 '잘 만든' 극. 이런 점에서 볼 때 가장 큰 미덕은 역시 배우들의 연기가 아닌가 싶다. 약간은 빈 곳이 있는듯한, 게다가 중간 중간 의도적으로 연극적인 과장을 더한 극에서 연기가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에는 어색하고 유치해질 수 있는데 극을 보면서 그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연출이 별로였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에 신뢰를 가진 연출이었다는 것일 뿐)

 

- 이 극을 보기 전에 알고 있던 배우는 TV에서도 자주 본 박상원씨 뿐이었고, 다른 분들은 모두 이번 극으로 처음 접한듯. 매체연기를 주로 하는 배우들의 연극 연기에 대한 선입견이 여기저기서 종종 들리는데, 박상원씨 그냥 잘하시던데? 그냥 포대제 그 자체시던데? 감초연기 중에서는 조영사 역할의 김남표 배우가 기억에 남는데, 딱 무성영화 시대의 스크린 배우들의 몸짓 연기와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를 더한 캐릭터가 너무 절묘하게 잘 맞아서 재밌었다. 그리고 주인공인 장해당 역의 이서현 배우, 마부인 역의 박주연 배우 또한 두말할 것 없이 최고의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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