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에 걸친 아주 좁은 취향의 보유자로써,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표현하기까지의 허들이 꽤나 높은 편이다. 딱히 좋아하지 않아도 한두번쯤 흥미를 가지고 해당 분야에 대해 쉽게 찾아보고, 공연을 가보고, 책을 사보고, 후원을 하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관심사를 금방 확대하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는 대상은 그 중 소수에 불과하다.
일반화와 규칙성 찾기를 좋아하는 성격상 내가 좋아하는 관심사와 취향들에 대해 공통점 혹은 맥락을 찾을 수 있을지 매번 고민하지만, 취향적인 측면에서는 일관적인 하나의 답을 찾기 어려웠다. 밝은 에너지를 불러 일으키는 일본 여자아이돌의 오랜 팬이면서도, 다양한 악기를 현란하게 배치한 클래식 관현악도 자주 찾아듣고, 기타와 드럼, 베이스의 기본적인 밴드구성으로 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는 록 콘서트장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으니 장르 기준으로 취향을 가르는 것은 무의미했다. 음악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연극, 무용, 뮤지컬, 회화, 사진, 스포츠, 교양강연 등 분야도 가리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 방대하고 맥락이 보이지 않는 내 취향의 대상들을 죽 늘어놓았을 때, 하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가장 가까운 표현은 '직업 만족도가 높은' 사람들, 혹은 그러한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직업 만족도가 높다'라는 표현은 상당히 식상한 표현이기도 하다. 연기자가 본인 스스로 배역에 더욱 몰입하여 다양한 연기 디테일을 선보이고 발전시켜 나갈 때, 뮤지션이 무대 위에서 공연을 누구보다 즐기고 관객과의 호흡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때, 스포츠 선수가 경기에서 본인이 갈고 닦은 역량을 십분 발휘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줄 때 등등 다양한 상황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챙겨보는 모든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본인들의 무대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종일관 무대를 휘저으며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끝나지 않는 앵콜에 앵콜을 거듭하는 록스타. 본인이 맡은 표독스러운 악역의 모습을 어떻게 하면 더 과장하고 강조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공연을 거듭할수록 세부적인 설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뮤지컬 배우. 곡 컨셉과 어울린다면, 그리고 관객들이 즐거울 수 있다면 기꺼이 망가지는 모습도 감수하는 아이돌 가수. 이런 저런 설명을 많이 붙였지만, 결론은 관객들이 온전히 공연에 몰입하고 즐길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기꺼이 미래의 내 시간을 내어줄 믿음이 생기느냐 하는 것이다.
- 2021. 3. 22. -
'Archive > the day befo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업 만족도가 높은' - 두번째 이야기 (0) | 2022.10.22 |
---|---|
어느 주말 저녁, 명동에서 (0) | 2022.10.22 |
뭉크의 '마돈나' (0) | 2022.10.22 |
단상 - 기록수단과 글 (0) | 2022.10.22 |
미세먼지의 계절 (0) | 2022.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