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와 고흐를 대비하여 만든 영상을 보며 내가 뭉크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적이 있었다. 빛의 화가, 주변의 모든 생기를 끌어담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 고흐의 작품이라면, 뭉크는 본래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 생동감을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음울하고 평면적으로 그려낸다. 그 특유의 왜곡된 시선과 붓질을 좋아하지만, 한편 대부분의 뭉크 작품이 가진 해골과도 같은 피폐한 얼굴상은 도저히 좋아지지 않는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것 역시 그 연장선에서이다.
반면 뭉크의 작품들 중 좋아하는 작품들은 반쯤은 숭배하는 느낌으로, 열렬하게 좋아하고 사모하는데, 그 중 최고를 꼽으라면 역시 '마돈나'를 고르게 된다. 제목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그림에서 그나마 이 여인이 성모 마리아임을 연상케 하는 것은 머리 위에 붉게 그려진 광배 뿐이다. 다양한 버전으로 변주되었지만 저 광배만은 모든 버전에서 뚜렷하게 형태와 색상을 유지하고 있다. 여자는 성모마리아와 메두사 같은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 전형적인 예술가들의 연애기질을 타고난 뭉크의 시선에서 그려진 이상적인 여인의 모습은 매혹적이지만 거리감이 든다.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매력을 유감없이 뽐내는, 온화한 표정의 성스러운 여인은 뭉크의 관념 속에서 탄생한 '마돈나'일 뿐이지만 그의 삐뚤어진 생각과 유아적인 표현이 싫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그 결과로 인해 탄생한 작품이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어떻게 그를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눈을 감은 그녀는 평온한 표정이지만, 석판화 버전에서는 왼쪽 한 켠에 말라비틀어진 태아도 함께 그려져 있다. 석판화에만 그려진 넓은 테두리에서는 꼬리가 긴 흰색 올챙이 같은 무언가가 붉은 색의 테두리를 따라 흘러가는 모양도 보인다. 남녀의 성교, 이로 인한 잉태의 순간을 그린걸까? 그렇다면 여성의 이 표정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 혹은, 그녀가 등 뒤로 숨긴 양 팔에서 무언가가 툭 튀어나오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전면에 드러난 얼굴과 몸과는 달리, 팔 부분은 어떤 판본에서는 아예 그려지지 않기도 하고 다른 버전에서는 아주 흐릿하게 형상만 보이기도 한 걸 보면, 아무래도 팔 뒤에 무언가가 있어서 그렇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그렇다면 역시 칼과 같은 섬뜩한 무기 쪽에 점수를 주고 싶다) 어느 쪽이건 뭉크는 이 여인을 매력적으로 그리는 데에 많은 신경을 썼을 것이다. 같은 스케치를 다른 방식의 채색과 표현으로 여러번 반복하여 재생산된 것을 보면, 어쩌면 그가 그려오던 이상적인 여인을 이 그림을 통해 완성하려던것은 아닐까. 억측이긴 하지만.
- 2021. 3.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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