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준비는 지지부진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고, 되는대로 살고 싶었던 어느 날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당시 거주하던 곳은 겨우 난 창문 하나마저 건물 복도를 향해 있던, 다시 말해 해가 전혀 들지 않는 컴컴한 곳이었다. 학교에 가거나 알바를 가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하루를 침대에 누워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기만 했던, 의욕도 기력도 없던 죽어가는 생명체 하나로 그럭저럭 버티던 하루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잠들어야 할 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잠을 청할수가 없었다. 아마 너무 오랜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지만, 아무튼 그 때는 잠들지 못하는 그 시간이 견디기 괴로웠다. 무언가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에서였던 것 같지만, 결국 일어나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집 근처에 있는 하천을 따라 한강까지 계속 걷기 시작했다. 아주 늦은 시각이었지만 여름이어서 오히려 선선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어두운 길이 무섭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한시간 가량을 걸어 한강까지 내려왔고, 벤치에 앉아 잔잔하게 일렁이는 한강 물결을 보며 한참 시간을 보냈다. 그 때 기분에 취해 싸이월드에 짧은 글을 끄적였었고, 이후 싸이월드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다른 블로그, 텀블러, 다시 블로그로 여기저기 옮겨적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옮겨적은 것이 한달 전, 이 블로그를 정비하면서였으니 꽤나 오랫동안 정착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글이 흩어져 있던 셈이다.
글을 쓰고 난 후, 한강에서 한참을 앉아있은 후의 이야기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새벽 네 시 경에 글을 적었으니 버스가 다닐 리 만무하고, 그 장소에서는 버스를 타는 것도 어려우니 아마도 걸어서 다시 집으로 들어왔겠지. 한강으로 나오기 위해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었을 것 같지만 확신은 못하겠다. 집에 도착하면 아무리 빨라도 다섯시, 늦어도 여섯시 였을텐데 어떻게 봐도 애매한 시간이다. 다시 잠들었을까? 다음날 외출해야 하는 일정은 없었겠지? 만약 밖에 나가야 했다면 그 늦은 시간에 몇시간이나 밖을 서성이진 않았을테니. 한강에서 머리를 식힌 다음날은 좀 더 생산적으로, 또는 더 즐겁고 재밌는 하루를 보냈을까? 궁금한 것이 여럿이지만, 기록이 없으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의미없는 질문의 도돌이표일 뿐. 어쩌면, 기록을 하지 않은 대다수의 하루하루에 대해서는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적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울한 날들을 되새김질해봤자 우울함만 증폭되어 갈 뿐일테니, 차라리 어제의 기억을 흐리게 간직하는 게 더 나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의 하루하루는 미세먼지에 둘러쌓인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어제 퇴근길에 뿌옇게 흐려진 하늘과 흙맛이 느껴지는 텁텁한 입 안을 곱씹다보니, 내 인생에서의 미세먼지의 계절이 떠올라 손가락이 움직이는대로 끄적여본다. (아주 식상한 표현으로 마무리해서 만족도가 약간 낮지만, 더 이상 생각하기 귀찮으니 이대로 마무리하기로 한다)
- 2021. 3.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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