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공연관람 기록

[221203] 연극 '맥베스 레퀴엠'

by eunryeong 2022. 12. 5.

- 한동안 셰익스피어를 꽤나 좋아해서 작품들을 열심히 찾아보고 다녔지만, 워낙 많이 소개되는 작품들이다보니 요즘은 좀 시들하긴 하다. 특히 4대비극은 각자 빈도의 차이는 있어도 이미 한국에서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작품들이라. 그런 고로 이번 연극도 그냥 소식만 듣고 넘길뻔 했다만, '레퀴엠'이라는 수식어가 극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했고 음악이 많이 나온다는 소식에 대체 어떻게? 싶었던데다가, 결정적으로 할인을 해줘서(가장 중요) 일단 한번 보게 되었다.

 

- 맥베스 역할을 맡은 류정한 배우는 뮤지컬배우로 널리 알려져 있고, 실제로 그의 이력도 대부분 뮤지컬에서 쌓은 것이다. 이번에 연극무대에 올라오는 것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는데, 연기는 아주 좋았습니다. 다만 발성이나 장면 장면에서 보이는 약간의 쇼 적인 대사톤? 같은데서 약간 뮤지컬스럽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는데 이건 배우의 특성으로 보아야 할듯. 그리고 여주인공인 레이디 맥베스(왜 올리비아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역사속의 '레이디 맥베스'는 그루오크인데) 역할을 맡은 안유진 배우도 뮤지컬 배우로 더 유명하지만 역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정원조 배우의 뱅쿠오도 차분한 것이 역할과 잘 어울렸다.

 

- 음악극이라고 홍보를 하지는 않지만 극 내내 음악이 전면에 깔린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이 너무 과하게 사용되어서, 특히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때 '두둥-'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게 영 취향이 아니었다. 그 정도의 심리변화는 내가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직접 상상하게 해 주면 안될까...? 전반적인 재즈바 컨셉은 나쁘지 않았고, 특히 마녀들의 예언을 노랫소리로 표현한 부분은 아주 좋았다. 연회씬의 재즈가수 장면도 분위기랑 잘 맞아떨어졌고. 그리고 재밌는게, 뮤지컬 배우들을 두 명이나, 그것도 주역으로 불렀지만 이 분들은 노래를 하지 않으신다. 연극 배우는 노래를 하고 뮤지컬 배우는 연기만 하는 요상하지만 재밌는 극.

 

- 90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맥베스 스토리를 모두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대부분의 장면은 어색함 없이 잘 넣은듯. 그치만 역시 아쉬운 부분도 있다. 살인 전후 맥베스와 올리비아의 스탠스 변화가 좀 애매하달까... 왤케 갑자기 생각이 바뀌는거야? 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차근차근 풀어가기에는 어려운 부분이긴 했을듯 하다. 맥더프 부인과 아들이 죽는 부분에서도 그냥 총 맞고 쓰러지는게 좀 맥빠지는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맥베스의 몰락 부분은 아... 정말 이게 최선이었나? 싶기만 했던 부분. 우선 마녀들의 예언 3가지는 무조건 들어맞는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만 들어맞을 뿐 결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게 이 극의 중요한 포인트이고,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에서는 예언이 비틀어지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놀라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마지막에 드러나는 2개의 예언 결론이 너무 맥빠져. 특히 버넌의 숲이 움직이는 부분에서 맥베스가 그렇게 쉽게 '병사들이 나뭇가지를 머리에 꽂은 채 움직이고 있으니 숲이 움직이고 있는겁니다'라는 신하의 진언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고? 싶을 뿐. 마지막 결말을 바꾼 부분은 버넌의 숲 장면이 탄탄했다면 충분히 임팩트 있었을 것 같은데, 앞의 예언이 심심하게 그려진 다음에 뒤의 예언도 저렇게 끝나버려서 좀... 이게 맞나... 싶었다. 이 각색을 더 좋아하는 관객들도 분명히 많겠지만, 내 취향은 아님.

 

- 무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오른쪽 뒷편에 있는 재즈바 말고는 따로 설치된 것은 없는 심플한 구성이다. 다만 가느다란 기둥 여러개가 천장에서 내려오면서 극의 분위기를 바꾸는데 이 부분이 아주 재미있었다. 특정 열의 기둥을 완전히 내려 무대를 둘로 나눠버리기도 하고, 기둥이 내려오는 높낮이를 조절해서 문처럼 만들기도 하고. 마지막에 맥베스가 감옥에 갇히는 것 마냥 창살이 내려오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 근데 조명은... 너무 어둡다. 극 분위기에 잘 맞긴 하지만 이제 눈이 침침해서 너무 어두운 무대는 보기가 힘들어ㅠ

 

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