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일상 기록

[221204] 바쁜 며칠동안의 우연한 발견, 또는 만남

eunryeong 2022. 12. 4. 21:03

요 며칠간 나름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대부분 따로 후기를 적어야 하는 것들이지만(후기지옥에서 언제쯤 탈출할까...ㅠ) 따로 목적 없이 우연히 만나고, 발견하고, 즐겼던 몇 가지들을 그냥 넘기기가 아쉬워서 몇개 묶어 남겨보려고 한다.

 

 

1. 무려 잠실을 방문하게 된 김에 근처에 있는 뮤지엄209에 들르기로 했다. 낙서와 장난을 기발하게 소화해낸 전시도 재밌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이 전시관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본 것이다. 요즘 날씨가 좋아서인지 노을이 아주 예쁘지만, 위트있는 작품들과 함께 바라보는 노을은 왠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2. 전시를 보고 쇼핑몰쪽으로 건너오니 연말을 맞이하여 여러 공간들을 예쁘게 꾸며놓고 있었다. 롯데월드몰 1층에서는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여러 상품들을 큐레이션하여 전시중이었고, 중앙에 커다란 풍차모양?의 조형물이 분위기를 딱 잡아주고 있었다. 쇼핑몰 내부에 설치된 것임에도 풍차에 사람이 몇몇 들어가서 작은 거울룸을 실제로 체험할 수도 있었고, 풍차 벽면에 있는 'Open the Door'가 걸린 문을 열면 재밌는 영상이 보이는 디테일도 좋았다. 특히 열어도 열어도 문!은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어린아이들도 꽤나 많아서 어른이는 조용히 비켜주기로 ㅎㅎ 상품 큐레이션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식기, 인테리어 소품, 연말 파티용 식자재 등이었다. 와인과 치즈도 빼놓을 수 없고, 요즘 크리스마스때 많이들 먹는다는 슈톨렌도 예쁜 틴케이스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독일의 전통 음식을 믿지 않고, 작년에 한번 경험삼아 먹어본 슈톨렌이 그냥 그랬던지라 이번에는 딱히 무언가를 사지는 않았다. 

    쇼핑몰 밖으로 나오면 더 화려한 세상이 펼쳐진다. 무려 회전목마!!! 그리고 빛나는 트리!!! 크리스마스 시즌에 반짝거리는 저 회전목마는 언제 봐도 낭만적이다. 실제로 운행도 하고 있으니 어린 아이 데리고 한번쯤 기념삼아 타볼만 할듯. 생각보다 회전목마 탑승 대기줄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왜냐면 다들 사진만 찍으니까. 회전목마 블럭 옆에는 원뿔형 모양의 트리가 자리잡고 있고, 이 트리로 가는 길이 미로처럼 되어있다. 미로 곳곳에 오브제들이 숨어있으니 돌아다니며 찾아보는거도 재밌을듯. 은색 풍선같이 생긴 더미를 보고 '오 이거 서밋에서 본 그거 아닌가? 겁나 잘 터지는???' 생각했는데 만져보니 딱딱했다. 속았네 속았어. (아무도 속이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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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동극장에서 공연을 보러가는 길에 발견한 나무용 뜨개옷. 추운 겨울 나무들이 얼어죽지 않도록 신경써주는 마음도 뭉클했지만, 나무 하나하나 각기 다른 옷을 입고 있는게 너무 귀여웠다. 누가 이렇게 만들어서 옷을 입힐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누가 요걸 만들어준걸까? 덕수궁 돌담길 따라 걸어가면서 내내 흐뭇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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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주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에 갔다. 예술의 전당에서 집까지 오는 길이 조금 애매해서 웬만해서는 가지 않지만, 2020년부터 기다린 '라 보엠'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무조건 가야지. 공연을 재밌게 잘 보고 나와서 집으로 가는 루트를 생각해봤는데, 가장 빠른 버스 + 2호선 환승 루트는 2호선 타기 싫어서 패스. 버스 + 빠른 버스 루트는 빠른 버스에서 거의 서서 집까지 가야 할 것 같아서 또 패스. 마지막으로 겁나 돌아가는 버스 + 조금 돌아가는 버스 루트를 선택하기로 했다. 참고로 내 버릇 중 하나가 최단거리가 아닌 최소에너지사용 루트를 개발하는 것인데, 멀찍이 돌아가더라도 목적지까지 앉아서 갈 수 있다면 무조건 그 루트를 선택한다. 거기에 오늘 이 루트를 선택한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다. 바로 남산을 빙 둘러가면서 서울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것.

    예술의 전당에서 405번을 타고 시청까지 가는 길은 정말 돌고 돌고 다시 돌고-의 연속이다. 거기에다가 집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도 아니어서 한번 갈아타야 한다. 그럼에도 예술의 전당에서 집에 갈때, 심지어는 예전 회사에서 집에 갈 때에도 종종 이 버스를 타곤 했다. 버스를 타고 미칠듯한 교통체증을 (과장 약간 섞어서)24시간 7일 내내 보여주는 반포대교를 지나고 난 후, 뜬금없이 서빙고 역으로 빠져버린다. 그렇게 주욱 가다가 서빙고역에서 유턴하여 이태원쪽으로 올라가는데, 이때 유턴하는 지점 근처에 아주 좁은 철로가 도로 위를 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과거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용산 미군기지와 이어져있던 철로, 사용하지 않은지도 한참 되었지만 미군기지마저 다른 곳으로 가버린 지금은, 도로 위에 선명히 남아있는 철로를 볼 때마다 너무도 새것같은 반질반질한 철로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용산기지 10번 게이트의 수풀이 우거진 철로의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고.

    서빙고에서 이태원을 거쳐 한강진을 찍고 다시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 하얏트 호텔을 지나면 여기서부터 남산에서 바라보는 서울 풍경이 주욱 이어진다. 낮에 보면 높은 아파트들과 낮은 주택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이 꽤 시원한데, 밤에 이 곳을 지나니 커다란 아파트의 질서정연한 불빛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 아무래도 좀 싱겁다. 몇년 전에도 이렇게 아파트가 많았던가? 하는 생각도 들고. 사진도 찍어보려 했지만 몇몇 정류장에서 정차를 위해 잠시 멈춘 것 외에는 계속 달리고 있다보니 사진에 담는게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으니 오늘의 이 소소한 이탈의 결과물을 눈으로 최대한 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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