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전시 리뷰

[230308] 최지원 개인전 - 채집된 방

eunryeong 2023. 3. 14. 23:51

    이번 전시를 보면서 문, 창문, 블라인드, 액자, 거울이라는 경계와 연결의 소재를 이용하여 기묘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림 속 인물들의 살결이 아주 매끈하게 동양적인 도자기같은 결과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인간이라는 대상을 단순화하여 그림에 표현한 것인지, 혹은 인간과 유사한 도자기 인형을 그린 것인지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 역시 이런 기묘함에 일조한다. 또한 작가가 그린 기묘한 세계는 하나의 캔버스 안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럿의 캔버스간 유기적으로 이어져있다는 인상을 받는데, 알피 케인 전에서 본 건축학적인 공간의 구성과 작품간 연결이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다만 이 작품들에서는 치밀하게 계산된 공간은 아니었는데, 이 또한 현실과는 유리된 채집의 공간이라는 작품의 결을 더 강화해주는 것 아니었을까.

 

 

- 밖에서 본 디스위켄드룸 전시장 모습. 작은 파란색 정사각형 간판과 전면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작품의 조화가 꽤나 멋스럽다. 내가 파란색을 유독 좋아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 블라인드 안에서라는 작품. 창 밖의 세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블라인드로 가려진 부분은 물론이고, 우측에 가려지지 않은 아주 작은 부분마저 색상의 덩어리만 확인될 뿐 대체 어떤 공간인지 도통 종잡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내부공간을 유별나게 그린 것도 아니다. 창문 아래 놓여진 존재감이 희미한 책상 하나 뿐. 

 

 

- 정지된 시간의 방을 향하여. 캔버스가 크게 3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왼쪽에는 블라인드와 인물 한 명이. 오른쪽에는 액자와 또다른 인물 한 명이 위치하고 있다. 가운데 영역을 커다랗게 차지한 문 하나가 슬쩍 열려있고, 왼쪽의 인물이 문 안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공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문 안쪽은 문 하나 혹은 하나반만큼의 너비를 가진 아주 작은 공간이다. 이 공간이 '정지된 시간의 방'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보다는 이 작은 공간과 그림 속 피사체가 위치한 모든 공간을 포괄한 바로 그 방, 그곳이 '정지된 시간의 방'이 아닐까.

 

 

- 뻐꾸기를 기다리며. 이 작품은 작은 골방과 같은 곳 벽에 멀찍이 걸려있었는데, 이 거리감을 의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갤러리에 처음 와서 이 전시구조가 원래 이러한지 아니면 이 작품을 위한 맞춤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암튼, 뻐꾸기시계와 그 앞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는듯한 한 인간. 여기서의 뻐꾸기는 뻐꾸기시계가 울릴 시각을 나타내는 것이겠지 아마? 그렇지만 10시 10분을 가리키는 이 시계가 과연, 정상적으로 동작하고 있는 시계일지 아니면 멈춰있는 시계일지는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 블루 문. 파란것은 맞는데 달은 어디에 있는걸까? 어딘가 으스스하고 무서움. 인물이 공간 안에서 캔버스를 바라보는지, 공간 밖에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이렇게 느낌이 달라질 수 있나 싶다. (라고 적고보니 이 후기를 늦은 밤에서야 적고 있는 내가 문제구나 싶다...)

 

 

- 박제된 시계.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시계 그림의 가장 원본이지 않을까? 여기서는 12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 시각이 또 정오인지 자정인지 항상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바로 그 시각이기도 하고. 자정이라고 생각해보면, 오늘인지 어제인지. 아니면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를 경계에 있는 시각. 이기도 하고.

 

 

- 프레임 안에 있는 곤충들. 사진으로 보면 곤충 그림들을 액자에 끼워둔 듯 하지만, 액자 모양 자체도 캔버스에 그려 나타내었다. 마치 마사초가 제단을 그림으로 그린 것과 비슷한데, 액자와 제단은 사실적이고 입체적인데 비해 그림은 다소 평면적이라 서로 대비되는 모양새도 비슷하다 싶다.

 

 

- 위의 3연작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꿀벌 그림. 큰 이유는 없고, 색상이 내 취향이다. 다른 두 작품의 프레임에 비해 다소 덜 사실적(?)이라 더 마음에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고.

 

 

- 멈춰버린 순간. 전면에 거울이 놓여져 있는데, 이를 통해 반대편에 있는 붉은 블라인드를 볼 수 있다. 거울에 비친 사슴조각과 물고기조각의 뒷면이 거울에 선명하게 비치고 있다. 블라인드가 내려진 창문 - 거울에 반사된 형상 - 캔버스 순으로 최초의 상이 계속 복제되는데, 이렇게 사진을 찍어놓은 것 또한 한번 더 복제된(혹은 채집된) 이미지의 연결이라고 할 수 있을라나.

 

 

- 무향. 하늘과 민트의 색감이 취향입니다. 생각해보면 파란색이 잘 쓰여진 작품들은 일단 다 좋은듯.

 

 

- 채집된 거울. 이번 전시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었는데, 위에서 살펴본 작품들에 기반하여 이 그림을 바라볼 때 과연 어떤게 거울이고 어떤게 액자일까? 하는 궁금증을 계속 유발시킨다. 왼쪽의 살구색 셔츠를 입은 인물과 오른쪽의 남색 랩셔츠를 입은 인물은 거울에 비친 상일 가능성이 높고, 중간에 있는 곤충 프레임은 그림액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다른 세 개의 프레임은 그림인가 거울인가? 만약 거울이라면, 하단의 블라인드 뒤 어렴풋이 비치는 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추측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어느것 하나 명쾌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