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전시 리뷰

[230308] 로버트 맨골드 개인전

eunryeong 2023. 3. 9. 22:38

    PACE 갤러리에서 열린 또 다른 전시, Robert Mangold의 개인전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물론 엄밀히 이야기하면 몰랐던 전시이므로 비교할만한 기대치가 없었긴 하지만, 유명 갤러리의 전시라고 했을때 기본적으로 가지는 기대감은 있는데 이번 전시는 확실히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음. (돈이 있다면) 사고싶다고 생각한 작품도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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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쨍한 노랑색의 가운데가 비어있는 사각형 캔버스, 가운데 사각형을 둘러싼 하나의 곡선. (사선으로 난 선은 갈라진 캔버스의 틈일 뿐, 작가가 손으로 그은 선은 아니다) 멀리서 보면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손으로 선을 그렸다는 것이 보이는데, 저렇게 각 변에 딱 접하면서도 끊김없이 부드럽게 선을 그을 수 있도록 얼마나 연습했을지, 그리고 얼마나 치밀하게 고민하고 저 선의 위치들을 잡았을지 느껴진다. 회오리같은 선이 역동적이면서도 그림 안팎의 정사각형들이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묘한 작품.

 

 

- 제목이 아마도 3개의 사각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누군가에게는 1개의 사각형만 보일테지만 작품 제목을 본 사람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올만한 작품.

 

 

- 포뮬러 서킷의 자동차 바퀴자국이 생각나는 그림. 물론 드리프트 라인이 저렇게 제각각 나있는건 좋은 시그널은 아니지만. 그림은 고정되어 있고, 선은 흘러가고. 색상은 음... 잘 모르겠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라면, 눈이 아프다...?

 

 

- A, B, C 프레임이라는데 이상하게도 각 그림에서 A랑 B, C가 표현되어 있는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왜죠? 어디서 대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지만 제목을 잘 지은것 같구랴.

 

 

- 작품의 생김새는 잘 모르겠고, 색상이 매우 제 취향입니다. 초록색인지 파란색인지 모를 아주 짙은 색상. 이렇게 차분하고 안정적인 색상을 저렇게 위태위태해보이는 구도의 캔버스 위에 칠한게 재미있네요. 

 

 

-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멋대로 툭툭 잘라놓은듯 생긴 두 개의 캔버스에 각기 다른 디테일을 넣어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둘을 굳이 병렬배치하여 나란히 둔게 묘하게 어울린다. 듬성듬성 짙은 색을 칠하고 달걀같은 선을 그림 내에 그어둔 왼쪽 작품, 가운데를 툭 하고 들어낸듯한 모양의 캔버스에 꼼꼼하게 밝은 색을 칠한 오른쪽 작품. 이 두 작품은 아랫변이 접하고 있고 직선으로 이어진다-는 점 외에는 접점이 없다시피 할 수 있지만, 이 아슬아슬한 접점이 주는 긴장감이 재미요소가 아닐까. 생각해보니 나 약간 불안정한데 안정적인 작품들 좋아하는 것 같네.

 

 

- 언뜻 보면 빨강-하양-빨강이 점유하는 캔버스의 면적이 크게 차이나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오른쪽 빨강이 왼쪽 빨강에 비해 상당히 큰 면적을 점유하고 있다. (발걸음으로 대충 재어봄) 캔버스 윗변 곡선이 끝나는 지점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설정해서 착시를 노린 것일까? 하얗게 비어있는 가운데 부분은 사람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비워둔 공간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공간이 상당히 넓은데 비해 양쪽에 그려진 타원은 좁은 편이라서 양 쪽의 선들이 이어진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는 않았다. 비디오 설명을 보고 아 그런가? 싶었을 뿐.

 

 

- Simple is the Best! 평행사변형 모양의 캔버스와 길쭉한 타원형 선이 접한 작품. 이런것도 작품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1990년에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개인적인 취향을 덧붙이자면, 캔버스에 칠해진 바탕색이 또 굉장히 제 마음에 듭니다. 아주 옅은 청자-혹은 백자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옥색. 한국인의 핏줄에 흐르는 바로 그 색상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