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게시물은 연극 키스 공연에 대한 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들은 주의해주시고, 가급적 공연 관람 이후 해당 게시물을 확인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사진부터 올립니다. 커튼콜과 공연 마친 후 사진촬영은 불가능하고, 공연 전 무대사진만 촬영 가능합니다.
공연 후기라는게 따지고 보면 죄다 스포일러이고, 뭔가 검색해서 볼 정도면 어느정도 스포일러를 당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일거다 싶어서 다른 극들 후기를 적을 때에는 굳이 저런 경고문(?)을 적지는 않았었다. 그럼에도 이 극은 뭐라도 이야기하려면 저 문구 없이는 눈치가 많이 보일 것 같다. 공연을 볼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웬만하면 아래 글을 보지 않고 관람하시길 권유(?)드리고, 그럼에도 보고싶다! 하시면 뭐 어쩔 수 없다.
- 남녀 커플 두 쌍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친구의 여자친구를 좋아하게 된 유세프, 그리고 남자친구의 절친에게 끌리는 하딜. 하딜에게 프로포즈를 하려는 그녀의 남자친구 아메드, 유세프의 여자친구이자 이 모두의 친구인 바나.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중동지방의 안락한 가정집이 배경인 듯 하다. 푹신해보이는 소파와 작지만 깔끔한 테이블, 그리고 램프. 한국을 비롯한 많은 연극이 올라가는 지역의 관객들에게 익숙한 배경으로 극이 진행된다. 배우들의 연기는 한껏 과장되어 있다. 스토리 역시 종잡을 수 없다. 이렇게 흘러가다가 저렇게 다시 돌아가다가. 특히 하딜의 감정변화가 아주 급격하다. 그러다가, 연극이 끝난다.
- 러닝타임이 약 90분 가량 된다고 보고 들어갔는데 아직 한창 극이 더 진행되어야 할 시간에 갑자기? 생뚱맞게? 배우들이 인사를 해서 뭐야 이게...? 내 생각보다 연극이 훨씬 재밌었나? 90분이 벌써 지나갔다고? 라고 생각한 나 자신 정말 대단하다. 당연히 연극은 끝난게 아니다. 배우들이 인사를 한 후, 연출이 나와서(이 분은 찐 연출님이신것 같다. 캐슷보드에 이름과 사진이 없었으니...) 작가와 어렵게 영상통화를 잡게 되었다며, 배우들과 작가의 영상통화를 관객들도 같이 보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짜 연극은 계속 진행된다) 그 와중에 앞에 의자가 깔리는 걸 보고 내가 관객과의 대화 회차를 잡았었나...? 라고 생각한 나 자신 다시 한번 대단하다.
- 이 극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 진행된다. 시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는 한국에서 이 극을 만든 연출가와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국의 연극 '키스'를 만든 이들이 으레 그럴 것이라 생각한 배경은 작가에게는 너무나도 의아한 무언가였다. 작가와 연출가는 각자, 자신들의 머릿속에 있는 '다소 이상했던 어느날'의 이야기를 그려냈을 뿐이다. 우리는 소파와 테이블, 커다란 티비가 있는 거실이 당연히 이 이야기의 배경일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의 '다소 이상했던 어느날'에는 그런 것들이 존재할 수 없다. 배우는 (극 중 자신이 맡은 역할의) 죽음이 친구를 배신한 것에 대한 아픔 때문일거라 생각한다(아마도 연극적인 과장을 담뿍 담았다고 생각한 듯 하다). 그러나 작가에게 그 죽음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외부요소들로 인해 빚어진 죽음이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기침이란 다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라는 신호이거나 혹은 (대부분 연극에서는) 무언가 잘못 되어가는 상황에서의 헛기침이나 사레들린 기침이다. 이것이 죽음을 상징하는 것은 일제시대의 폐병이 아니고서는 거의 없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데에도 서로 텍스트를 해석하는 컨텍스트가 다른 것이다.
- 연출가는 작가에게 시리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작가는 대답한다.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뉴스에 나오는 그런 일들이다. 사람들은 뉴스를 본다. 안전한 자신의 장소에서. 뉴스에 나오는 비참한 일이 일어나는 장소를 머릿속 어딘가에 가둬놓은 채. 작가의 대답을 듣고,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나는 많은 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 어느것 하나 온전히 받아들이진 않았다. (다만 이러한 비극을 모든 사람들이 무조건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 후반에 다시 시작한 연극은, 솔직히 이야기해서 더 엉망이었다. 아 엉망이었다고 이야기해도 되나. 아무튼 (극중 설정대로라면) 급하게 연출을 바꿔 올린 극인데다 후반부는 애드립이기에 스토리가 제대로 진행되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된다. 등장인물들이 의식적으로 해대는 기침은 너무 작위적이라 웃음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아마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에서의 배우들은, 자신이 존재하는 (연극속에서의) 공간, 그 곳의 상황에 몰입하여 보여주려하기 때문인걸까. 그렇지만 이 점을 감안해도, 연극으로서 좋은 점수는 주기 어렵다. 하딜(역을 맡은 배우)가 끊어주었기에 망정이지.
- 결론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부분과 굉장히 별로인 부분이 혼재되어서 뭐라고 평하기가 좀 어려운 극이라고 해야 할듯. 작가와의 영상통화라는 씬을 통해 진행되는 스토리 부분은 정말 올해...가 아니라 지금까지 본 연극을 통들어서 가장 놀라운 연출이었지만, 그 뒷 부분의 마무리는 심하게 아쉬웠다. 이건 연출이라기보단 각본 자체의 문제인 것 같지만... 암튼 이런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 각본을 가져와 만든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서울시 극단은 재공연 거의 못본거 같아서 아마 이 공연도 다음에는 보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Diary > 공연관람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0421] 뮤지컬 '맘마미아' (0) | 2023.04.22 |
---|---|
[230408]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0) | 2023.04.21 |
[230404] 식스 더 뮤지컬 (0) | 2023.04.04 |
[230325] 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0) | 2023.04.03 |
[230325] 연극 '돈' (4) | 2023.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