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를 어쩌다가 알게 된건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조사와 작품활동을 모아놓은 전시라는 소식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맘먹고 찾아갔다. 내가 처음 봤던 전시정보로는 3월 말에 종료될 예정이라 부랴부랴 찾아갔는데, 다행히(?) 4월 말까지 전시기간이 연장된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재밌는 볼거리들이 많았던 좋은 전시였다만 공간의 접근성이 조금 아쉽긴 하다. DDP에서 열리는 호크니전이 좋으면 여기 가는김에 들러도 좋을법 하지만...(호크니전에 대해서는 따로 적겠다만...ㅎㅎㅎ)
전시관 전경.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다룬 회화작품들을 모기장같은 재질 위에 걸어놓았다. 넓지 않은 전시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너무 갑갑해보이지 않도록 공간을 만든 듯 했고, 무엇보다 이런 재질은 다른 장소에서 재활용도 용이할 것 같기에 환경적으로도 좋은듯.
Oneday in November라는 연작 작품들. 모든 작품이 어두운 파란색을 배경에 깔고 있는걸 보면 늦은 밤 시간대인가 보다. 어깨가 약간 내려간듯한 힘없이 걷는 행인의 모습을 보며, 나의 퇴근길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다니는 곳은 유연출근제라서 나는 해 떠 있을때 퇴근하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사진 속 네번째 그림인데 아마 물감이 가장 많이 칠해져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약간 보라보라한 어두운 파랑인것도 내 취향이고.
.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안과 밖을 찍은 사진들을 슬라이드쇼로 보여주는 화면. 개인적으로 이렇게 사진을 나열하듯이 보여주는 영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들을 주욱 인화해서 벽에다가 무작위로 붙여놓으면 개인의 속도에 맞춰서 좀 더 보고 싶은 사진은 오래 보고 여러 사진간 연관성도 그려가면서 주체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일정한 시간마다 새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사진들을 보는 것은 그저 멍하니 앉아 화면만 보고 있을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그렇기에, 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 아파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형식을 택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 속 공간들의 변화. 각 가구가 아파트 현관문 앞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부엌 공간을 2020년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어떻게 재구성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자료. 참고로 이 당시 아파트의 부엌 공간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옆에 식모를 위한 작은(대부분 창문도 없는) 방이 딸려있다. 뉴욕의 아파트 유형과 관련한 글에서, 오래된 아파트 유형 중 방이 6개정도 되는 중산층 이상을 위한 아파트 구조 또한 작은 부엌과 메이드를 위한 방이 딸린 것을 볼 수 있었던 게 기억났다. 아마 초기 아파트의 레이아웃은 뉴욕의 아파트 구조를 참고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만큼 당시 중산층에게 식모를 위한 방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여의도 아파트들의 광고 페이지. 얼마전 국현 모던 데자인전에서 보았던 광고 스타일이 여기서도 묻어나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아마 인쇄기술의 발달 전까지는 유사한 스타일의 광고들이 대부분이지 않았을까? 잘은 모르지만. 광고들을 보다보면 중간에 LDK라는 용어도 보이는데,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일본식 표현이라 신기하게 느껴졌다. 요즘 한국의 아파트 대세는 아무래도 4 Bay 아닐까...?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지어질 당시, 서민들을 위한 공간이 아닌 중산층 거주공간으로서의 아파트는 초기 시도였기에 지금과는 사뭇 다른 공간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위에서 언급한 식모방도 그렇지만, 외관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출입문 옆의 발코니 공간일 것이다. 아마도 옛날의 마당과 같은 역할을 했던 이 공간을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꾸미고 활용했다.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 미닫이 문으로 덮힌 창고같은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료집에 실린 글 중, 이 공간에 대한 글이 있어 한 단락 옮겨보고자 한다. 읽다보면 효율성과 효율성을 극도로 따지던 당시 사회상이 떠올라 쓴 웃음을 짓게 된다.
1971 - 1979 여의도 복도 아파트 실험
여의도의 첫 시범 아파트에서 건축가는 아파트의 복도 50m 전후의 공간에 복도보다 2단 높은 발코니 공간을 계획했다. 아파트이지만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전면 여유 공간이 있다. 또한 건축물의 기둥 구조가 세대별 내부공간의 구획까지만 배치되어 복도는 기둥이 없는 외부공간이 된다. 복도에 면하여 현관문의 상부에 고측장을 구성하고 주방과 방은 다른 높이의 창문을 갖는 등 건축가는 집으로 들어가는 복도 공간을 섬세하게 조율하고자 했다. 여의도 시범 아파트는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외관이라는 점에서 외부 난간은 몇 개의 단위로 나누어 철재 프레임이 교차하는 파사드로 구성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도와 집 사이 발코니 공간이 추가된 넉넉했던 공간은 그 이후 아파트 복도 풍경에서 차츰 사라졌다. 더 나아가 건설부는 복도, 계단, 베란다의 공간을 '사치성'이 짙다고 비판하며 1974년부터 주택건축면적에 포함시켰고, 아파트 가구당 40평이상 건축면적을 규제하고자 했다. 주택건설사업계획의 조건사항에 따라 아파트의 복도 풍경을 표준적인 모습으로 전형화하였던 규칙은 아래와 같다. "33평형 건축물의 모서리 부분에 위치한 세대의 6mm 창문 폭은 1.4m 이상으로 설치할 것" "주택의 창문 및 낙수구의 규격 등은 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칙(건설부령 제235호)제 10조의 규정에 적합도록 할 것. 33평형의 마감재료는 주택건설 기준에 관한 규칙 제11조의 규정에 적합토록 할 것"이라는 매우 세부적인 규범이 정해졌다. 흥미롭게도, 건축가가 집으로 가는 가로 풍경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입면도는 건축물의 전면이 아닌 후면이라는 이유로 다른 여의도 복도 아파트에서는 그려지지 않았다.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사진, 그림, 광고, 설계도 등. 테이블 위에 납작하게 붙여놓은 것이 그리 보기 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전시의 마지막 광경. 두 개의 프로젝터는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기억하는 주민들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벽면에 투사한다. 각자가 그리는 아파트 지도는 어느것 하나 같지 않은데, 개인의 기억과 취향이 담뿍 담긴 이 지도들을 통해 주민들이 얼마나 이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몇년 전 내가 그렸던 우리 집 주변의 지도는 아주 텅텅 빈,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공간 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지도였음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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