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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일기

[250705] 회사 동료의 결혼식, 서점 나들이, 연극 '미러', 그 외

by eunryeong 2025. 7. 6.

1. 회사 동료의 결혼식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온전히 축하하러 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이는 특별한 행위이다. 오늘날에는 품앗이, 기브 앤 테이크라는 인식이 더 강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참석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의 축하를 위해 시간을 들여 방문하고, 주인공들은 찾아와 준 사람들을 위해 감사의 의미를 담아 잔치를 대접하는, 온전히 상호간의 선의에 의해 만들어지는 하나의 행사이다. 이 날의 결혼식은 사전적 의미의 '결혼식'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행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신랑과 신부를 축하하고, 결혼식 주인공들은 재밌는 퍼포먼스와 맛있는 음식으로 찾아와 준 사람들을 대접하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발견한 카카오톡 메세지에서, 오늘의 주인공이 찾아와 준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정성들여 작성한 메세지를 받고서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가장 바쁘고 정신없었을 주인공이 신경써서 이렇게 메세지를 남겨주다니. 좋은 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 날의 결혼식이 유독 기분 좋게 느껴졌던 건, 주인공 두 명이 주는 좋은 기운때문이었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하루를 기분좋게 마무리했다.

 

2. 서점 나들이

    원래의 목표는 미술관에 가서 전시 몇 개를 보는 것이었지만, 결혼식장에서 미술관까지 가는 길도 만만찮고 무엇보다 결혼식에 가느라 오랜만에 꺼내 신었던 플랫슈즈가 너-무 불편해서 목적지를 선회했다. 잠시 카페에 들러 냉기를 맞으며 한 숨 돌린 후, 한동안 들르지 못한 단골서점에 오랜만에 들르기로 결정. 6월에 도서전에서 백만원 넘게 책을 산 터이지만(그리고 그 중 한권도 아직 읽지 않았지만), 서점에 들르면 또 새로운 책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고 역시나 대량의 책을 구매했다. 오랜만의 방문이다보니 새로운 책들도 많았고, 그만큼 장바구니에 담은 책도 산더미처럼 늘어나버렸다 하하. 뭐 택배로 보내주시니까 나쁘지 않지 뭐.

    이번에 산 책 중 가장 먼저 펼쳐본 것은 점장님이 최근에 낸 책이었다. 꽤 오랫동안 서점에 들르면서 종종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느날 나눈 이야기를 듣고 점장님이 이 에피소드를 소재로 글을 써도 되는지 여쭈어보셨었고 글을 쓰신 후에는 완성본도 보여주신 적이 있었다. 시간이 상당히 흐른 후 출간된 이 책을 넘겨보다가 익숙한 내용이 나와서 자세히 읽어보니, 이 때의 바로 그 글이었다. 한 편의 소설로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사이 원래의 에피소드는 몇 가지 장면 외에는 모두 흩어졌지만, 어쩐지 반갑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은밀한 이야기를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이상했다. 

 

3. 연극 '미러'

    최근 가장 핫한 연극이라는 소문을 듣고 오랜만에 대학로를 찾아갔다. 연극에 대한 정보는 거의 찾아보지 않고 갔었기 때문에, 극장에 도착하여 결혼식 컨셉으로 꾸며진 로비를 보고 순간 어리둥절해하다가 하객룩을 그대로 입고 갈걸 하는 후회를 잠깐 했다. (책을 사기도 했고 가방이 무거워 집에 잠시 들러 옷을 갈아입고 갔었음) 연극에 대한 후기를 먼저 하자면, 극본도 연기도 무대도 모두 만족. 재밌게 볼 수 있는 연극이면서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연극에서 던지는 질문에 쉽게 정답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도 생각하겠지 라는 제 2의 답이 함께 떠오른다. 

    연극의 주요 갈등 중 하나는 아덤이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그대로 극본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첼릭 국장이 보이는 반응이다. 아덤은 주변의 이야기를 마치 녹음기와 같이 똑같이 옮겨적어 극본으로 만들면서 어떠한 의도도 담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첼릭은 예술에 희망이 담겨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아덤의 목적성 없는 받아쓰기를 예술이 아니라고 일갈한다. 아덤의 이야기는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첼릭의 이야기가 개소리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하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첼릭이 아덤과의 첫 대면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본인이 보고 들은 수많은 이야기들 중 극본으로 옮길 '어떤' 이야기를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목적성이 있는 것이고, 의도를 가지지 않고 이야기를 써내려갔다는 것 자체가 전체주의 사회의 미덕에 반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덤이 정확하게 옮겨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등장 인물들의 대사일 뿐. 그가 적어내려간 행동이나 지문은 개인의 주관적인 시선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덤의 항변은 교묘한 말 비틀기이거나, 아니면 스스로 이 모순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순진하거나. 

    또한 아덤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었기에, 이에 대해 화를 낸다면 그건 자신의 모순을 인정하는 것?이었는지 뭐였는지 암튼 그런 뉘앙스의 대사를 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이야기한 것이 기록된다면 불편한 감정을 가진다. 아니, 때로는 스스로 동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불편해할 수 있다. 이전에 적은 컬렉티드 스토리즈 후기에서도 이에 대한 생각을 적은 적이 있는데, 이 연극에서도 비슷한 갈등을 접하고 나니 어쩌면 창작자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담겨있는 에피소드, 이야기를 창작물로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면죄부를 받고 싶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4. 결혼식장으로 가는 길에 서해선을 처음 타보게 되었다. 이동거리가 길었던 하루인 만큼 열심히 피크민을 했고, 새로운 장소에서 엽서를 이것저것 얻었다. 대학로에 가니 이화동 벽화마을쪽에 컨페티가 흩날리는 빅플라워 장소가 있어 더운 여름날임에도 가벼운 하이킹을 했다. 고양이도 만나고 감성적인 벽화와 구조물도 볼 수 있었다. 오늘 신었던 플랫슈즈는 안감이 삭아가는게 느껴져서 버리기로 했다. 신발장에 있는 수많은 신발들 중 반 이상을 버려야겠다 싶었다. 옷장에 있는 곳은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0. 여러 경험들이 묘하게 연결된 하루를 보내고 나니, 이 기묘한 연결을 글로 적고 싶어졌다. 막상 적고나니 별로 연관성이 커 보이지는 않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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