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오늘 적을 이야기들은 지난 주말동안의 기록이지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12월 3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다보니 10시 전에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많았고 그날도 평소와 같이 잠자리에 들었는데, 깨어나보니 세상이 완전히 흔들렸다가 간신히 돌아왔다. 제정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동기의 계엄, 그 여파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고 그저 본인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당위성을 역설하는 이 나라의 지도자(였던 누군가). 그를 탄핵해야 한다며 소리높여 외친 시민들의 목소리가 무색하게, 회의장에서 단체로 나가버린 어느 시정잡배들의 모습까지.
그 와중에도 일상은 이어져야 하기에 대부분의 시간은 평소와 다름없이 보냈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고, 저녁이 될때까지 정신없이 일하고, 미리 예매해둔 공연이 있는 날은 공연장에 들러 머릿속의 잡념을 누르며 공연을 보러 앉아있는 것까지. (고백하자면 계엄 후 첫 주말에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여의도로 뛰쳐나갔었다. 그래도 일주일 중 단 하루만 행동했으니 거의 일상과 다름없었다 할 수 있겠다)
1. 13일, 그러니까 지난 금요일에는 서울시향의 교향악 공연을 보러 갔다. 올해 마지막 정기공연은 (으레 그렇듯) 이번주에 있을 합창 공연이지만, 회사 종무식이 겹쳐 고민 끝에 티켓을 취소했기 때문에 내겐 이 공연이 마지막 서울시향 공연이었다. 공연 제목은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이지만 난 이 곡을 듣지 못했다.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만 듣고 인터미션 시간에 공연장을 나왔기 때문. 서울시향의 공연은 훌륭했지만 도저히 공연에 집중할 수 없어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아니다, 어쨌든 1부를 들으러 공연장에 갔으니 깔끔하지는 않은가.
1-1. 신촌역에 내려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신촌역에서는 대학생들이 모여 멍청한 지도자를 성토하는 모임이 한창이었다. 잔뜩 모여있는 깃발을 보며 후배들은 어디 있나 슬쩍 찾아보기도 했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잠시 서서 듣다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한참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2. 다음날은 파주로 이사한 사적인 서점에서 얼리버드 북클럽에 참여했다. 예전에 적은 일기에서도 이 북클럽에 대해 적은적이 있는데, 성산동에서 파주로 이사간 다음에도 시간날때마다 종종 나가고 있다. 책은 자꾸 증식하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책을 읽지 않고 있기에 의도적으로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기도 하다. 파주로 이사한 후 공간도 더 넓어지고 중정을 바라보는 소파 자리가 생겨서 여유롭게 독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멀지만 열심히 찾아가고 있다.
연말임에도 무엇 하나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이 없는 기분이어서 새로운 책을 펼치고 싶지 않았기에, 오랫동안 멈춰있던 책을 꺼내들고 책방을 찾았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이 책은 양자물리학을 다루고 있지만 마지막에는 나와 세상의 관계에 대한 고찰로 끝난다. 이론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이 종종 나오지만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묘사와 신선한 시각으로 인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이론적인 부분은 완전히 이해하기 조금 어려워서 슬쩍 넘기기도 했다) 북클럽 시간동안 다행히 한권을 끝낼 수 있어서, 내년에 이 책을 질질 끌고 가지 않아도 될듯 하다. 작은 성취겠구만 이것도.
2-1. 파주에서 다시 서울로 나오는 길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멍청한 지도자때문에 다들 여의도에 모이느라 광역버스는 만원, 열심히 지도앱을 검색해서 마을버스와 전철을 타고 한참을 돌아가는 루트를 찾았는데 이쪽 또한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그나마 입석으로라도 탈 수 있어서 다행히 파주에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문제는 전철을 내린 다음이었다. 내가 가려는 목적지는 여의도, 정확히 국회의사당을 가려는 길목이었던터라 전철에서 내려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덕분에 30분 가까이 열심히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고, 피크민이랑 꽃 많이 심었으니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도닥였다.
3. 아주 오랜만에 이승열님을 영접했다. 작년부터 신곡이 조금씩 나오고 있어서 살짝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음감회라는 것을 하신다 하여 바로 신청! ...은 아니고, 업무때문에 바빠서 티켓팅 시간을 놓쳤더니 남은 자리가 없어서 아예 못갈뻔 했다. 다행히 새벽마다 열심히 들어가본 끝에 취소표 한 자리를 구하는 데 성공해서 천신만고 끝에 음감회에 참석했다.
공연이 아닌, 신보가 나온 시점도 아닌 시점의 음감회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했는데 승열님의 음악 이야기를 길게 들을 수 있어 기대와는 다른, 기대보다 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음감회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별도로 적기로 하고(오랜만의 승열님 이야기이므로 상세하게 따로 적어야 한다!!), 이날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승열님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된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 한주 전에 국회 앞에서 듣고 싶었던 소식이었지만, 이렇게라도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어쩌면 승열님과 함께 이 소식을 나누게 된 것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겠다 싶었다.
3-1. 탄핵안이 가결된 덕분에 서강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향하지 않아도 될듯 하여,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물론 집으로 가는 버스는 여의도에서 나오는 방향의 버스이기에 이 또한 탈 수 있을리 만무했고, 신촌까지 열심히 걷고 걸어서 다른 방향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또다른 단골 서점에 들러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방향을 틀었다. 또 걷고, 또 걸었다.
4. 오랜만에 들른 밤의 서점은 폭풍의 점장님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저녁시간이어서 그런지 다른 손님들이 없이 조용했기에 잠깐 서로의 안부를 나누었고, 오늘 들려온 기쁜 소식과 12월 3일에 들려온 황당한 소식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나 그랬듯 책을 몇권 골라 주문했고, 얼마 후 있을 북클럽에 대한 책을 꺼내어 서점 내 카페 공간에서 잠시 읽어내려갔다. 그 와중에 이날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어 일기장을 펼쳤고, 아침에 적다가 잠시 중단한 일기를 열심히 써내려갔고, 두 페이지에 걸친 이날의 일기가 노트에 남겨졌다.
4-1. 그럼에도 남은 이야기들이 있기에, 생각나는대로 오늘 이 블로그에 털어본다. 몇가지 적지 않은 기록들도 있지만 그 정도의 이야기는 잊혀져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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