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the day before 13

'직업 만족도가 높은' - 두번째 이야기

표현의 주어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지만, 이 표현을 사용하는 대상의 경우 크게 두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부단한 노력. 대체로 무대 위에서 기량을 발휘하는 경우에 이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실수하지 않고 본인이 해야 하는 몫을 다 발휘하는 것에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두 번째는 무대를 즐기는 태도. 중압감이 느껴질 수 있는,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는 무대 위에서 더 빛을 발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모든 무대에서 즐기는 태도를 보여주기에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아무리 노련한 배우나 뮤지션이라도 이상하게 긴장이 되는 무대가 있을 수 있고, 혹은 본인에게 맞지 않는 노래나 작품이어서 온전히 즐기기 어려울 수 있다. ..

'직업 만족도가 높은'

다양한 분야에 걸친 아주 좁은 취향의 보유자로써,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표현하기까지의 허들이 꽤나 높은 편이다. 딱히 좋아하지 않아도 한두번쯤 흥미를 가지고 해당 분야에 대해 쉽게 찾아보고, 공연을 가보고, 책을 사보고, 후원을 하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관심사를 금방 확대하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는 대상은 그 중 소수에 불과하다. 일반화와 규칙성 찾기를 좋아하는 성격상 내가 좋아하는 관심사와 취향들에 대해 공통점 혹은 맥락을 찾을 수 있을지 매번 고민하지만, 취향적인 측면에서는 일관적인 하나의 답을 찾기 어려웠다. 밝은 에너지를 불러 일으키는 일본 여자아이돌의 오랜 팬이면서도, 다양한 악기를 현란하게 배치한 클래식 관현악도 자주 찾아듣고, 기타와 드럼, 베이스의 기본적인 밴드구성으로 원초적인..

어느 주말 저녁, 명동에서

서울에는 많은 번화가가 있다. '시내'라고 하면 당연히 동성로를 떠올리는 대구출신인 나에게는 다양한 번화가와 만남의 장소가 있는 서울이 처음에는 복잡하고 정신없게 느껴졌다. 광화문, 종로, 강남, 홍대, 이태원, 왕십리, 잠실, 압구정 등등 각자의 생활권에 따라 선호하는 장소가 판이하게 달랐고, 각각의 장소는 공통적인 유희시설(극장, 쇼핑몰, 다양한 종류의 맛집 등)과 각기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같은 종로권이지만, 종각과 교보문고, 종로타워가 있는 종로 1가와 탑골공원, 낙원상가가 있는 종로 3가의 분위기만 보아도 서울의 도심지가 지닌 각각의 개성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니까. 그렇지만, 이 많은 번화가들 중 서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서울의 '시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고르라면..

뭉크의 '마돈나'

뭉크와 고흐를 대비하여 만든 영상을 보며 내가 뭉크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적이 있었다. 빛의 화가, 주변의 모든 생기를 끌어담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 고흐의 작품이라면, 뭉크는 본래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 생동감을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음울하고 평면적으로 그려낸다. 그 특유의 왜곡된 시선과 붓질을 좋아하지만, 한편 대부분의 뭉크 작품이 가진 해골과도 같은 피폐한 얼굴상은 도저히 좋아지지 않는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것 역시 그 연장선에서이다. 반면 뭉크의 작품들 중 좋아하는 작품들은 반쯤은 숭배하는 느낌으로, 열렬하게 좋아하고 사모하는데, 그 중 최고를 꼽으라면 역시 '마돈나'를 고르게 된다. 제목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그림에서 그나마 이 여인이 성모 ..

단상 - 기록수단과 글

오랜만에 서울에 들른 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글을 쓰는 도구에 따라 결과물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언젠가 유시민 작가가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 기억이 들었는데, 동생 역시도 펜으로 쓰는 것과 타이핑으로 작성하는 글은 서로 결이 다르다는 의견에 일치했다. 생각해보면 아주 옛날, 글자와 필기구(혹은 저장매체라고 볼 수 있겠다)가 없었던 시절에는 구술로 지식이 전해졌을 것이고, 쐐기문자, 붓 혹은 펜, 타자기, 컴퓨터, 그리고 휴대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단을 거친 지금은 다시 음성인식을 통한 기록이 흥하고 있는 것을 보면 꽤 재밌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동안 변화되어 온 다양한 스펙트럼의 기록수단 중 본인에게, 그 상황에 잘 맞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미세먼지의 계절

시험준비는 지지부진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고, 되는대로 살고 싶었던 어느 날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당시 거주하던 곳은 겨우 난 창문 하나마저 건물 복도를 향해 있던, 다시 말해 해가 전혀 들지 않는 컴컴한 곳이었다. 학교에 가거나 알바를 가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하루를 침대에 누워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기만 했던, 의욕도 기력도 없던 죽어가는 생명체 하나로 그럭저럭 버티던 하루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잠들어야 할 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잠을 청할수가 없었다. 아마 너무 오랜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지만, 아무튼 그 때는 잠들지 못하는 그 시간이 견디기 괴로웠다. 무언가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에서였던 것 같지만, 결국 일어나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집 근처에 있는 하천을..

국제갤러리 Jenny Holzer, Jean-Michel Othoniel 개인전

1. 요즘 물성을 탐구하는 것에 천착하는 작가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토니엘의 이번 작품 또한, 투명한 유리로 투박하게 느껴지는 벽돌을 예쁜 조형물로 만들어 쓸모없이 벽에 부착하거나 바닥에 쌓아놓았던 점이 재밌었음. 색상 배치는 적당히 예쁜 조합을 만든걸까? 2. 꽃 시리즈는 그다지 기대하던 작품은 아닌데, 막상 가서 실물을 보니 마음이 동했음. 적당히 가까이서 보면, 동글동글한 구슬 하나하나마다 내 모습이 비치는 게 기분이 묘하더라고.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 것 같지만. 3. 외부와 접한 큰 통창이 있는 전시공간 좋더라. 국제갤러리 자주 오게 될 듯. 4. 제니 홀저 작품은 국현, 테이트에 이어 세 번째인데 여전히 잘 모르겠음. 고르고 고른 문장들이라고 하지만 딱히 와닿는 것도, 신선한 충격도 받지..

낯설고 익숙한 거리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향하는 명절 연휴. 오랜만에 대구 본가에 들러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집에 짐을 풀고 잠을 청한 후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던 오늘 아침, 유난히 신촌 거리는 한산했고 공기도 부드러웠지만, 무엇보다 이상하게 낯설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오랜 시간을 보낸 동네지만 여전히 이 곳은 완전히 내 영역은 아니라는 느낌. 대구에 다녀온 직후라 더 그렇게 느껴진걸까? 아니면 항상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동네가 너무 한산해서였을까? 어딘가 낯선 동네로 여행온듯한 느낌이 들어 약간은 설레기도 했고, 한편 어디에서도 온전한 소속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없는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울적해지기도 했던 하루. - 2021. 2. 13. -

2018. 12. 2.

머릿속이 복잡하다. 잡념을 비울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단순한 인생을 살고 싶었지만 그게 쉬이 올 수 없음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 둘 켜켜이 쌓이고 쌓여, 지금은 어느것 하나 손을 대더라도 다른 것들이 날 기다리고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내가 스스로 벌여놓은 것. 내가 아닌 타인이 시작해놓은 것. 내가 원하지 않는 상태로 휘둘리는 것. 그냥 다 엉망인 것 등등. 이틀정도 휴가를 내고 바닷가에서 멍하게 파도소리나 듣고 싶지만, 최소한 자리를 비우는 동안 더이상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은 있어야 하겠지만 그건 절대 아닐 것이기에. 예민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나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같이 한다. 스스로에게 한없이 관대해진다. 동시에 절망감을 느낀다. 지켜지는 것은 아무..

그림 그리기 두 번째

2주만에 다시 그렸다. 첫번째 그림은 이슬람 문양을 그려보고픈 마음에 시도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 나중에 다시 이어서 그릴 생각이다. 두번째 세번째 점점 지날수록 귀찮아서 대충 그리게 되더라. 그치만 잘 그리는 것 못지않게 빠른 시간내에 그리는 것 또한 내겐 중요한 일이라 대충 그리는 것 또한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디쯤에서 절충할 것인가 하는 부분인거고. 색칠하는게 너무 귀찮다. 마카 하나정도는 사야겠다. 지금은 큰 스케치북에 그리고 있으니 라이너 펜으로 그려야 페이지를 다 채우지만, 여행다니면서는 작은 노트를 들고다닐테니 가는 펜으로 그리는 연습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좀 더 연습해보고 방향성을 다시 잡아보자. - 2013. 12.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