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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피중류(泛彼中流)

2023년 올해를 나 혼자만의 '국악과 친해지는 해'로 지정한 바, 예년에 비해 국립극장에도 자주 가고 판소리나 국악 관련 공연을 더 챙겨보려고 하고 있다. 다만 크게 감명받은 공연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평소에 접하는 다른 유형의 공연에 비해 국악은 아직도 낯설고 잘 모르겠는 미지의 세계였기에 일부러 더 친해지고자 계기를 만들어 낸 것도 있다. 5월 중순을 넘어선 지금까지 아직 많은 수의 공연을 보지는 못했지만(곧 시작하는 여우락 기간이 찐일 것이므로...!) 그래도 올해 본 공연들 중에서 내 귀에 콕 하고 박힌 곡이 있다. 얼마 전 절창 공연 후기에서도 적은 바 있는 범피중류. 이 곡을 약 일주일 간격을 두고 두 번이나 듣게 되었는데, 절창 1 공연에서는 수궁가의 일부로, 절창 3 공연에..

Tom Odell, Cruel

취향 스크랩 카테고리에 새로운 취향의 무언가가 들어오는 것보다는 이전부터 좋아하던 것들을 생각날 때 여기에 정리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Tom Odell의 곡 또한 그러하다. 그의 곡을 처음 접한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아마도 어느 커뮤니티에 올라온 추천글을 보고 음악을 들어보았다가 이 곡에 낚여 그대로 그의 음악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콘서트를 다니다보면, 뮤지션들의 대표곡들 중에서도 음원을 위한 곡과 공연을 위한 곡이 다르다는 게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다. 이 곡이 특히 그러한데, 초반에 휘몰아치는 피아노 선율부터 디스토션 잔뜩 먹인 소리로 그르렁대는 기타사운드, 노래가 끝난 후 멋대로 치닫기 시작하는 각 악기들의 솔로까지. 이 곡을 집에서 스피커로, 혹은 버스나 기차 안에서 이어..

친구의 초상 by 구본웅 (1935)

10여년 전, 덕수궁에서 처음 마주친 작품. 당시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프라하 미술관 소장전을 보러 갔다가, 다른 전시관에서 열린 소장품 기획전의 '우인상'을 보고 강렬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이 날 본 다른 것들은 모두 잊었지만 이 작품만은 처음 보았을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호쾌한 굵은 라인과 과장된 색상, 일그러진 형태. 그 이후 국현 과천관, 그리고 서울관에서 각기 이 작품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는데, 다소 휑한 느낌이 드는 과천에서의 만남과 어두컴컴한 느낌이 들던 서울관 전시에서의 만남은 처음만큼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작품은 내겐 the best one이자 the only one이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원래 첫사랑은 잊을 수 없는 법이니까.

코이와이 요츠바

요츠바랑의 주인공, 5살 요츠바! 귀여운 만화 주인공들을 많이 모아놓았지만, 현실에서도 만날 수 있을법한 귀여움은 역시 요츠바가 최고입니다. 무려 종이책과 이북 두 가지로 전권을 소장중인 만화인 만큼 ㅋㅋㅋ 보다가 몇 가지 귀여운 장면들을 캡쳐해서 올려봄. 내용과는 크게 상관없는 부분들만 최대한 줄여서 올리느라 요츠바의 귀여움이 온전히 전달되지는 않겠지만! 궁금하신 분들은 만화로 봐주세요! - 무언가를 먹는 모습이 귀여운 요츠바 - 뭐든지 다 잘 어울리는 면이 있는 요츠바! 그치만 동글동글한 헬멧이 제일 잘 어울려 ㅋㅋㅋ - 비누방울 놀이를 하고싶지만 미운 얀다한테 웃는 얼굴로 대하기는 싫은 요츠바 - 단호한 요츠바 (근데 너무 귀엽...) - 우산 되게 못 쓰는 요츠바 (이거 왠지 그네 되게 못타는 서..

삼성라이온즈 마스코트 라온이

세상의 귀여운 것들을 다 모아놓으려고 따로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었다. 역시 귀여운 거에는 일단 우리 라온이가 제일 먼저 들어가야지. 라온이 사진 몇 장만 추리고 추려서 올려보았다. 용량 문제도 있고 저작권 문제도 있고. 암튼 삼성라이온즈 홈경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친구라 다음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ㅠ 얼른 시즌 시작하고 홈경기도 다녀올 수 있었으면 좋겠넹. - 머리가 커서 슬픈 마스코트 라온이. 문에 머리가 낑겨서 오도가도 못하는 귀여운 모습 ㅋㅋㅋ 덕분에 원정을 갈 수가 없엉... 흑... - 코로나로 무관중 경기할 때 조용히 마스크 끼고 경기 관람하는 라온이 (근데 마스크가 엄청 큰데 또 엄청 작네...) - 삼성 라이온즈 화이팅! 응원중 (경기 이겼나 졌나 모르겠넹) - 누나 머리를..

매의 날개, 함정과 진자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내 인생에서 꽤 의미있는 작품 중 하나. 이전까지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그다지 보지 않다가 이 작품을 시작으로 뮤지컬 공연도 조금씩 챙겨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다른 장르의 공연은 주기적으로 보았지만 이상하게 뮤지컬만큼은 쉽사리 내키지 않았었고, 그 벽을 부숴준 것은 이 뮤지컬에 수록된 아주 기깔난 넘버들이었다.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던 '매의 날개' 넘버는 나를 뮤지컬 공연장으로 끌어당겼고, 이 외에도 일렉기타 소리가 들어간 많은 넘버들이 내 귀를 사로잡았다. 아쉽게도 내가 본 시점은 공연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 다시 보러가진 못했지만 말이다. 이제는 언제 다시 돌아올지 기약이 없어진 극이지만 그래도 이 넘버만큼은 꼭 다시 듣고싶다 하는 2곡을 골라보았다. 사실 ..

어둠 속의 댄서 by 라스 폰 트리에 (2001)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는 두 번 보기는 힘들다. 기괴하지만 현실적이고, 담담하지만 절망적이다. 이 간극에서 오는 무력감은 보는 사람의 감정을 뿌리부터 잡아채 흔들어버린다. 어둠속의 댄서는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이 실낱같이 존재하지만, 예전에 왓챠에 적었던 한줄평처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친절하게 멘붕으로 인도하는 영화"일 뿐. 작중 화자의 구원 없는 종말로 종결되는 서사구조는 다른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뮤지컬 영화이나 뮤지컬의 화려한 쇼도, 기깔나는 넘버도 없는 이유는 그 뮤지컬은 오직 여주인공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세상은 잿빛 현실을 아주 약간 탈피했을 뿐,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조명이나 멋진 쇼댄서들을 데리고 올 수는 없다. 그녀의 진..

밀크 우롱

뉴욕여행 기념품으로 사온 것들이 많지는 않다. 책 몇 권, 미술관에 들를때마다 사온 엽서들과 몇가지 기념품들, 문구 몇 개, 그리고 차. 뉴욕에서 유일하게 방문한 티샵이 브루클린에 있는 벨로크 티 하우스였는데, 작은 공간에서 파는 수많은 차들을 보며 어떤 차를 사야할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향을 맡아보았다. 묵직하고 우디한 향, 가볍고 과일 느낌이 나는 향, 꽃잎이 첨가된 향 등등. 그 중에서 단연 내 코를 사로잡은 것은 진한 밀크향을 풍기는 밀크 우롱이었다. 처음에는 이 차의 투박하고 거친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향들을 몇 가지 맡아보았지만, 밀크 우롱을 포기할만큼 매력적인 향은 없었다. 고민 끝에 밀크 우롱 캔 하나와 작은 크기의 다른 차 하나를 선택해서 들고 왔고, 한국에 도착해서야 미술관..

Untitled, Rome, Italy by Francesca Woodman (1977-1978)

반듯한 사진 속 반듯한 문틀 위에 아주 약간 삐뚜름하게 매달린 여성이 주는 묘한 긴장감. 아마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나의 사적인 도시'에 적혀있었던 듯 하다. (지금 찾아보지 않아서 정확한 내용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사진을 처음 알게 된 계기 또한 그 책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현대 예술을 잘 알지 못해 책에 적힌 대부분의 예술가들을 그냥 흘려보냈는데, 유일하게 내 취향으로 저장된 작가와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이었다. 왜 이 사진이 좋은지 물어보면 이유를 무어라 명확하게 댈 수는 없다. 좋은것이 으레 그렇듯 말이다. 그저 이 사진, 그리고 이 작가의 사진들이 궁금해졌고, 날로 애정이 커져갔고, 결국 이 작가의 사진들이 우리 집에 걸리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 사진에 대한 내 애정의 크기를 표현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