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공연관람 기록

[221119] 아크람 칸 컴퍼니 '정글북: 또 다른 세계'

eunryeong 2022. 11. 21. 13:43

- 흔히들 첫 인상이 반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 또한 첫 인상이 아주 강렬했다. 다만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강렬함은 아니다. 아주 서서히 막이 오르고 무용수들이 가만히 선 채 몸을 아주 천천히 아래로 굽히는데, 언뜻 보면 멈춰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어느새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그 절묘한 경계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작품의 주제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보았을 때, 아마도 이 인상적인 인트로를 통해 자연 그 자체를 보여주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해 볼 따름. 십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 자연도 매일 매일 보는 그 얼굴은 똑같을지라도 한달, 일년, 십년마다 분절하여 보는 모습은 분명히 차이가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하늘 위에서 아주 서서히 흘러가는 구름이 생각나기도 한 장면.

 

- 극 제목이 '정글북'인데, 정글북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아서 원래 스토리랑 비슷한지 아닌지를 잘 모르겠다. 정글북에서의 조난된 아이는 아주 갓난아기였던것 같기도 하고...? 암튼, 인간의 아이가 동물들 사이에서 자란다-는 기본 스토리는 동일하지만 여러 장면에서는 현대사회의 이야기를 반영하여 각색한 듯. 제목은 이 무대의 모티브 정도라고 이해해도 될듯.

 

- 분명히 무용, 춤 카테고리의 공연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스토리 전개가 되는 부분도 많았고 연기가 많이 필요했다. 공연들을 다니다보면 확실히 기존의 공연 장르간 경계가 많이 희석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춤으로만 스토리를 전달하고(이 부분에서, 기존 발레와 다른 점이라고는 춤의 형태일 뿐인데 왜 이 극에 '댄스 뮤지컬'이라는 이름이 붙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아크람 칸의 정글북은 중요한 스토리를 각 무용수들의 춤과 몸짓 외에 언어적으로도 이를 드러낸다. 더 나아가, 이 작품에 사용되는 다양한 프로젝터 화면은 무대의 배경을 그려내거나 일부 삽입되는 장면처리에 그치지 않고, 무대 위의 각 무용수들과 직접적으로 교감하면서 무대를 채운다. 모든 공연예술은 각 요소들의 총체적인 합으로 완성된다고들 하지만, 이 작품만큼 다양한 요소들을 어우러지게 잘 뭉쳐낸 작품은 내겐 꽤 오랜만이었다.

 

- 무대 연출적 요소를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프로그램북에서 그가 밝힌대로 어떻게 해야 세트를 적게 쓰고, 좀 더 가볍게 투어를 다닐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아주 효과적으로 답한 흔적이 보이는 것도 흥미로웠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환경 파괴를 늦추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해야 한다는 공허한 외침에 그치지 않는 작품. 무대를 가득 채우는 것은 무대 뒤쪽, 그리고 간간이 내려오는 무대 앞쪽의 두 개의 프로젝션을 통해 투영되는 디지털 그래픽이다. 간간이 무대 위에는 가득 쌓인 종이박스들, 혹은 나풀거리는 커다란 천이 보이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 물성을 가져야만 하는 일부 것들은 해제와 재조립, 보관과 이동이 쉬운 형태임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대가 텅 비어보이거나 성의없어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박스를 이용해 참신하면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뱀 모양을 창조해냈고, 천 위에 일렁이는 물결 이미지를 투영하여 환상적이면서도 실감나는 강물을 표현했다. 모든 새로운 시도는 완성도 높은 결과물로 드러나야 의미가 있는 것. 이 작품은 결과물로 그 시도가 가치있었음을 증명했다.

 

- 춤의 요소에 대해서는 잘 아는 영역이 아니라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물론 다른 영역도 알못인건 마찬가지다), 동물들의 움직임을 잘 구현해내면서 이를 '춤'의 영역으로 풀어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신체로 동물의 움직임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성의없는 행위이고, 그렇다고 인간에게 편한 몸짓을 그대로 이용하게 되면 동물적인 움직임이라는 인상이 흐려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4개의 다리(팔과 다리)를 통해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그 타협점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다. 두 발로 걷고 춤을 춰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장면 전에 4개의 다리로 바닥을 자유롭게 활보하던 것이 머리에 깊게 남아서가 아니었을까? 음 모르겠다. 춤에 대해 적는건 여전히 어렵다. 그냥 나는 보면서 부드럽고 유연한 그들의 움직임에 경탄했고, 시원시원하게 뻗는 동작들도 매력적이었다. 칼군무랑은 거리가 멀지만, 그만큼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무대였다.

 

- 이건 LG아트센터 이야기 약간. 분명히 지난주 이은결씨 공연에서는 LG아트센터의 마스코트 언니가 오랜만에 안내방송을 하는걸 들어서 무지 반가웠는데, 아크람 칸 컴퍼니 공연에서는 다시 예전 안내방송이 나왔다. 뭐지? 혼자 반가워하고 혼자 아쉬워했네 흑흑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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