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공연관람 기록

[221112] 이은결의 '더 일루션 - 마스터피스'

eunryeong 2022. 11. 20. 12:33

   - 공연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착석했는데, 공연 시작전부터 관객들과 카메라로 소통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설치된 카메라가 관객들을 한두명씩 포커스하고, 진행자(이은결씨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가 자막으로 글을 써서 관객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고, 작은 협조를 요청했다가 거부당하기도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물론 화면에 본인이 나왔는지 미처 모르고 지나간 분들도 많았고, 촬영을 피하는 분들도 있었다.

 

- 첫 공연부터 아주 화려하게 터트려주신다. 보통 마술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인체절단마술과 탈출마술이 초반에 연달아서 등장한다. 가장 처음에는 다소 클래식하게 시작하는가 싶다가, 점점 어라? 이렇게까지도 가능한가?싶을 정도로 마술의 난이도를 올리고(예를 들어, 인체절단마술을 위해 꽂는 칼이 두세개 정도가 아니라 10개 이상 들어간다), 마지막에는 야 이런 스타일로도 가능하구나 싶은 마술을 선보인다. 첫 스테이지가 끝난 다음에 이은결씨가 땀을 닦으며 "처음부터 스케일이 다르다~"고 자랑하는데 ㅋㅋㅋ 그러실 만 하다. 참고로 시작할 때 U2의 City of Blinding Lights가 배경에 깔리는데, 이게 또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 쇼에 쓰인 음악 이야기가 나온 김에, 보위 옹의 Space Oddity가 들렸던 로켓 마술쇼도 아주 인상깊었다. 애기들 자원을 받아서 진행했는데 무게 때문인지 7세 가량의 아이들만 가능했다. 어른이는 안된다...? 그치만 마술의 대상이 되는 놀라운 경험은 아이들에게 양보하는게 맞긴 하지. 처음 올라온 아이는 약간 어머니께서 더 적극적이신것 같았는데, 역시 무대에 올라가는게 부담이었던지 중간에 내려왔다ㅠ 낯을 가리는 애기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있는다는게 많이 무서웠을테니ㅠ 다음으로 올라온 어린이는 아주 씩씩하게, 즐기면서 마술에 참여했다. 아이가 낯설어하는 이런 경우도 종종 있었던지 중간에 아이가 내려가고 새로운 친구가 올라오는 과정이 굉장히 자연스럽고도 서로 무안하지 않게 잘 흘러갔다. 전체적으로 쇼를 보면서 느낀 점이기도 하지만, 이은결씨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이런 진행능력이 아닐까 싶었던 부분. 아, 아이에게 반짝반짝거리는 밤하늘을 보여주기 위해 관객들에게 플래시 쇼를 요청했는데, 이 부분도 장관이었다. 

 

- 관객들의 참여를 요청한 쇼도 있었지만, 동물과 함께한 부분도 있었다. 마술쇼의 영원한 친구, 토끼와 비둘기!...가 아닌, 앵무새가 등장! 올해 초까지 '싸가지'라는 앵무새와 함께 20년간 공연을 해왔는데, 안타깝게도 올해 초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오늘 쇼에 나온 앵무새는 '인싸'라는 이름의 새로운 친구로, 이 공연이 데뷔무대였다. 첫 무대이다보니 이은결씨도 약간 긴장한것 같아보였는데, 앵무새도 긴장이 되었던지 공연 도중에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서 꾸럭꾸럭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연현상을 시원하게 해결해서 스태프 분이 뒷처리를 하러 급히 올라오시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마술쇼만큼은 아주 멋지게 보여준 인싸에게 박수를! 하늘나라에 있을 싸가지도 좋은 곳에서 행복하기를.

 

- 경이와 놀라움이 사라진 시대, CG와 기계장치의 등장으로 환상에서만 존재하던 것들을 현실에서도 아주 유사하게 느낄 수 있는 시대에 마술이 주는 놀라움은 이전과는 같지 않을 수 있다. 큰 스케일의 마술은 무대장치의 힘을 빌려야하기에, 어떤 부분에서는 잘 짜여진 쇼라는 느낌때문에(물론 마술 자체가 쇼이긴 하다) 완벽하게 몰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오히려 작은 스케일의 마술이 주는 감동이 컸는데, 아프리카에 갔을 때 가장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는 손가락이 절단되는 마술도, 이미 트릭을 다 알고 있음에도 막상 그 마술을 보고 있으면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 이은결씨 스스로를 마술사가 아닌 일루셔니스트라고 칭하는데, 그 이름에 어울리게 마지막 스테이지를 본인의 양 손과 빛을 이용해서 보여주는 그림자놀이로 장식했다. 이 그림자놀이 전에 본인이 손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 매일 연습하는 루틴을 보여주고, 관객들이 실제로 따라해보게 해서 이 루틴을 자유자재로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하고, 이 루틴을 아주 빠르게, 그리고 자유롭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서사가 담긴 그림자놀이를 보여주는 전체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스토리를 잘 짜는 사람이라는 생각. 게다가 그림자놀이가 너무 멋졌다! 스케일 큰 여러가지 마술들을 보다가 마지막에 애걔, 그림자놀이?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직접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이 웅장한 쇼를 본인의 손기술만을 사용하는 아주 소박한 스테이지로 마무리하는것은 웬만한 자신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일텐데, 그 어려운 일을 아주 멋지고 완성도 높게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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