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공연관람 기록

[221115]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후기

eunryeong 2022. 11. 16. 12:00

    굉장히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뮤지컬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내가 공연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게 2015년이었고, 이때도 뮤지컬보다는 연극이랑 클래식 위주로 보았던지라 뮤지컬은 거의 관심이 없었다. 고로 2015년에 올라왔던 가장 최근의 지크슈 공연을 미처 보지 못했는데, 그게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일이 될 줄 그때는 몰랐지. 겟세마네, 당신들의 천국(Heaven On Their Minds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하지만 매번 영자판으로 바꾸기 귀찮으니 앞으로는 '당신들의 천국'이라고만 적어야지), 슈퍼스타라는 3대 명곡을 실황으로 듣지 못한 채 2020년도, 2021년도 지나고 2022년도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다행히 2022년 여기에 돌아왔다! 거기다가 무려 유다역에 비투비 서은광씨가!!! 이번에도 아마 유다캐슷을 고정하고 다른 캐슷들 돌려가며 볼 듯. 여러번 볼 극이라 후기는 오늘 생각나는 것 정도만 우선 적어본다.

 

- 송스루뮤지컬, 성경에 나온 예수와 유다의 재해석, 자칫하면 신성모독, 락 뮤지컬 정도의 키워드와 주요 넘버 몇 곡 정도 알고 관람. 이전에 코로나가 한창일 때 앤드류 로이드 웨버 옹이 인터넷으로 아레나 버전 공연 스트리밍 해준거 듣긴 했지만, 집안일 하면서 듣느라 내용은 거의 파악 못했었기에 실질적으로 이번에 첫 공연관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극이 친절하게 진행되지는 않는 편. 한 넘버마다 하나의 장면을 묘사한 후 휘릭 지나가는데, 이 뮤지컬이 처음 공연된 미국과 영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의 주요 장면을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굳이 관객에게 스토리를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음악적 구성은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오페라에 가까움. 때문에 한국 관객들에게는 호불호가 크게 갈릴수밖에 없는 극일듯 하다. 물론 내 취향에는 아주 딱 맞았다.

 

- 생각해보면 이 극이 처음 세상에 나온게 (컨셉앨범 기준) 1970년. 세르주 갱스부르의 Histoire de Melody Nelson이 1971년, 데이빗 보위의 Ziggy Stardust가 1972년임을 생각해보면 상상 이상으로 오래된 옛날에 만들어진 곡과 극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명력이 있고, 어떤 부분은 지금 기준에서 보아도 파격적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는걸 생각하면 대단할 따름.

 

- 유다는 현실 세계에서의 혁명과 자유를 바랐다면 지저스는 내세의 구원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어서 둘은 시작부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관계라 안맞을 수밖에 없는듯. 유다와 다른 제자들의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제자들도 현세에서의 구원을 바라며(이는 후에 시몬의 노래로도 잘 표현됨) 지저스의 의중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지저스의 뜻하신 바를 따라간다면, 유다는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지저스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는 내가 지저스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계속 힘들어하는 느낌.

 

- 예수가 성전에서 장사를 하던 장사치들을 때리며 몰아내던(a.k.a. 나사렛의 몽키스패너) 성전정화 장면이 굉장히 쾌감있었다! 앙상블들이 성전 앞의 난장판 상황을 보여주는 부분도 좋았고, 중간에 짭예수가 기적을 '연기하는' 부분도 재밌었고(고백하자면 이 부분 진짜 예수인줄 알고 어? 내가 아는 예수는 그렇지 않은데...? 했다...), 뒤이어 등장한 예수가 분을 참지 못하고 다 들어엎어버렸다! 이전까지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애매한 지저스의 행보에서 좀 답답했는데 이 부분을 보고 그렇취-!를 맘 속으로 외쳤다. 근데 왜 번역을 하다 만건지...? 이 씬에서 예수가 마지막에 '겟아웃!'을 외쳐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나가!!'라는 대사로 진행해도 아무 무리없는 씬 아닙니까......???

 

- 처음 가야바 씬에서 엥? 엥? 에엥???이라고 생각했던게, 이건 노래가 아니고 어떤 읊조림의 영역이랄까... 아니 읊조림도 아닌, 무언가... 사람이 이렇게 낮은 소리를 낼 수 있나? 싶을 정도까지 음역대가 바닥을 뚫고 내려가는데, 그걸 또 기막히게 소화하심. 와 진짜요? 이걸요? 오늘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였다. 

 

- 시몬이 추종자들 이끌고 머릿속이 꽃밭인 상태로 우리 구원받을거야! 하며 노래 부르는 장면을 보며... 지저스의 고뇌와 고충이 아주 잘 이해가 됨. 시몬 역할의 윤태호 배우가 노래도 잘하고 춤도 멋지게 소화했지만, 무엇보다 저 해맑고 눈치 없는 캐릭터를 너무 잘 표현해서 조금 얄미웠다. 

 

- 마리아 역할은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극의 흐름에서 의미있는 포인트가 거의 없음. 시몬과 베드로조차도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도들'이라는 중요한 이야기를 담당하고 있는데, 마리아는 아직 잘 모르겠다. 예수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마지막까지 곁을 지키는 사람. 이것 뿐인걸까? 일단 좀 더 보면서 파악해야지.

 

- 겟세마네는 곡 자체도 물론 좋지만, 극에서 전후 장면들과 연결해서 보니 더 가슴이 아린다. 제자들을 다 물리친 후 그래도 남아있는 제자들은 없는지, 베드로, 시몬, 야곱을 두 번 읊조리며 불러본 후 혼자임을 깨닫고 고뇌에 차서 부르는 겟세마네. 본인의 죽음에 대해 반항도 절규도 체념도 해보다가, 마지막에 결국 아버지(=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지저스. 개인적으로 임태경 배우의 지저스 연기가 너무 좋았고, 특히 아버지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에서 손 끝이 파르르 떨리는게 가슴을 후벼팠다. 다만 목상태가 좋지 않은지 고음에서 쇳소리가 계속 나오고 소화를 힘들어하는게 보여서 안타까웠음. 컨디션이 안좋은것 같은데, 다음에는 더 좋은 컨디션에서 공연을 보고싶었다.

 

- 빌라도와 헤롯이 서로 지저스의 처분을 떠넘기는 부분에서 둘 사이에 굉장히 대비되는 연출도 재밌었음. 왠지 찝찝하고 귀찮고 책임질 일 따위 만들고 싶지 않아하는 빌라도의 관료주의적인 태도와(물론 꿈자리가 사나웠다는 흔한 핑계를 대긴 했다) 헤롯의 뒷일 생각지 않고 마구 입 놀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슬그머니 발 빼는 장면들. 어쨌든 직책을 맡고 있으니 시키는대로는 하는 빌라도. 성경에서도 빌라도는 예수의 처벌을 그다지 원하지 않는 캐릭터이긴 한데, 성경에서는 강도와 예수 중 풀어줄 사람을 선택하라며 군중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이 성격이 드러난다면, 이 극에서는 지저스에게 직접 '니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고 예수를 좀 더 인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장면이 보이는듯. 지현준 배우는 하데스 타운에서도 멋지다 생각했는데 이번 지크슈에서도 가장 무게감있는 역을 아주 잘 소화했다. '멋짐'을 인간으로 형상화하면 지현준 배우일듯.

 

- 슈퍼스타 너무 신나는거 아닙니까? 아 근데 진짜 지저스 입장에서는 저시끼... 너 저세상에서 보자... 할 것 같은 얄미움. 깐족깐족. 암튼 슈퍼스타 나오자마자 어머나 세상에 앞에 본거 다 까먹었다 ㅋㅋㅋㅋㅋ 아니 처음 듣는 곡도 아니고 영상 진짜 많이 본 곡인데요... 근데 이건 서은광씨가 잘못(?)한게, 날렵하고 화려한 춤사위와 본업 뽐내는 무대매너로 객석을 들었다 놨다 하심 ㅋㅋㅋㅋ 제 자리가 2층이었지만 분명 슈퍼스타 커튼콜때 서은광씨와 눈이 마주쳤다고 감히 주장해봅니다. 아니, 아마 1층 10열 이내랑 2층 5열 이내는 그냥 다 눈이 마주쳤을것 같은데 ㅋㅋㅋㅋ 거기다가 (삼성라이온즈의 자랑) 허니단장님의 빵댕이 못지 않은 자아 충만한 골반의 움직임과 화려한 마이크 꺾기 신공까지 ㅋㅋㅋㅋ 제 혼이 다 빠져나가는듯한 공연이었습니다. 두번 봐서 다행이야. 한번밖에 못봤으면 나 집에 못간다고 폭동 일으켰을거야.

 

- 공연 보다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여서 1막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앙상블 명단 다시 찾아봤는데, 전예나앙! 시카고에서 열연한 유리앙이었네! 어쩐지 어쩐지 눈에 계속 들어오더라! 괜히 반가워서 커튼콜때 열심히 더 박수쳤다 ㅋㅋㅋ 예나앙 역시 예쁘고 춤선도 멋지군욤 제가 많이 애정합니다! 이 외에도 모든 앙상블 배우분들이 춤도 노래도 연기도 굉장했다. 역시 극의 완성도는 앙상블의 완성도가 결정하는 것 같아!

 

덧) 이 극 제목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인데 어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라고 더 많이 부르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줄여서 부를때도 지크슈라고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