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공연관람 기록

[221202] 서울시향 - 실뱅 카브를랭의 드뷔시와 라벨

eunryeong 2022. 12. 5. 08:09

- 서울시향의 교향악 공연을 꽤 오랜만에 왔다. 지난주에 다녀온 실내악 공연도 오랜만이었던듯 한데. 매달 SPO가 집으로 배송되기 때문에 공연 오는 날 미리 챙겨오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깜박하고 집에 둔 채 공연장에 와버렸다. 3천원밖에 안하긴 하지만 굳이 두 권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어서 그냥 사지 않았는데, 사전정보 없이 공연을 관람하는게 녹록지 않은 일인걸 깨닫게 되었다. 특히 오늘처럼 다소(?) 난해한 곡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 처음 서울시향 공연을 보러다녔을 때 '아르스노바'라는 현대음악 연주 시리즈가 있었다. 진은숙 작곡가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이 프로그램은 13년간 연주된 후 사라졌다. 내가 처음 가본 서울시향 공연이 무려 아르스노바였는데(정말 사전정보 하나 없이 덜컥 예매하고 간게 드러나는 부분) 멍-하게 이게 뭐야? 하다가 나온 기억이 난다. 여전히 현대음악은 어렵지만 그때의 경험은 음악 듣는 폭, 더 나아가 사물을 바라보는 폭을 폭발적으로 넓혀준 계기였다. '듣기'보다는 '경험하기' 위한 음악을 여러차례 시도해 본 결과, 현대음악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얻는건 아직 어려웠지만 대신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하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개인적인 호불호는 있기에... 앞으로 이 블로그에 올라올 내멋대로의 후기는 이해를 해 주길)

    갑자기 아르스노바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드뷔시와 라벨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이긴 하지만 오늘의 연주는 아르스노바의 그 난해함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기 때문. 거기에 뒤티외라는 생소한, 2013년에 영면한 작곡가는 변명의 여지 없이 아르스노바 라인업에 들어갈 만한 작곡가이다. 덕분인지 서울시향 정기공연 좌석이 이렇게 많이 비어있는건 처음 보는 듯.

 

- 이번 공연은 꽤나 특이하게도 1,2부 모두 처음 연주되는 곡의 길이가 꽤 길다. 그리고 피아노 협주곡을 1부 혹은 2부에 몰아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1부 후반에 하나, 그리고 2부 초반에 하나. 이렇게 나누어 배치해주었다. 아마도 덕분에 피아노 협연자의 앵콜은 없었다만, 오히려 연주되는 곡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 드뷔시의 첫 곡 시작할때 관악기 소리가 굉장히 좋았다. 3악장 중간에 첼로가 치고 나오는 부분(메모에 진짜 이렇게 적어놨는데 막상 그 파트가 기억이 안난다. 나중에 다시 들어봐야지)도 인상적이었고. 왼손 협주곡은 정말 왼손만 쓰는 것 같더라. 아마도. 2층 자리에서 피아노가 거의 다 가려 연주하는 모습을 잘 보지 못했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 마지막 곡인 메타볼은 제목때문에 한번은 들어봐야지 하고 참고 들었던 곡. 내 머릿속의 정형화된 '현대음악'(표현이 이상하지만 암튼)에 딱 맞는 곡이었다. 처음에 아주 거슬리는 불협화음으로 시작하여 관객들의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이게 연주의 잘못인가 곡이 이따위인가'를 잠시 고민하게 만들다가, 중간에 잠시 짧게 아름다운 화음이 이어져 나와 연주자와의 굳은 신뢰를 다시 회복했다가, 몇번 이렇게 관객 혼자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파국- 이런 느낌. 정말 오늘이 아니면 들을 수 없었던 곡이 아닐까. 근데 놀랍게도 한국 초연이 아니네? 아마도 아르스노바에서 연주된거 아닐까? 암튼 오랜만에 이렇게 온 피부로 생소함이 느껴지는 음악을 들어서 기분이 꽤 좋았다. 

 

- 위에서 불협화음이 나올 때 연주자들을 잠시 의심하게 된다고 적기도 했지만, 이 공연을 보는 내내 내 마음이 사실 그랬다. 서울시향 공연을 하루이틀 보는게 아니라 웬만한 곡들, 특히 고전주의 시대 곡들이랑 차이코프스키 곡을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음악의 구성조차 생소한 곡이 나오면 아 이게 작곡가가 의도한 바가 맞는건지부터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불협화음이 작곡가의 의도인가? 지휘자의 잘못된 해석인가? 연주자들의 실력 부족인가? 아니면 합이 잘 안맞았나? 등등. 더 나아가면, 이번엔 화음이 절묘하게 맞는 부분에 대해서도 또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거 화음이 잘 맞아도 되는거야? 작곡가가 이런 곡 쓴게 맞아?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정말 개인적인 감상을 쓰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지는게,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데 혼자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 그러니 여러분들은 꼭 SPO나 프로그램북에 적힌 해설을 읽어주세요. 저는 망했습니다만.

 

 

[ Program ]

- Debussy, Le Martyre de saint Sebastien:Fragments Symphoniques

-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 Ravel, Piano Concerto for the Left Hand in D major

- Dutilleux, Métabo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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