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전시 리뷰

[230308] 마우리치오 카텔란 : WE

eunryeong 2023. 3. 15. 22:52

    리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지금 가장 핫한 전시라고 할 수 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 예약이 필수인데 인기가 많아서 정각에 들어가도 표를 잡기 어려울 정도. 나도 첫날은 실패, 둘째날에 겨우 들어가 한참을 버벅인 끝에 오픈시간인 10시 타임만 남아있어서 한 장 잡았다. 원래 오픈시간에 가려고 생각중이었기에 아주 다행! 며칠간 열심히 올렸던 한남동 갤러리 후기는 모두 이 전시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밝힙니다 :)

    전시회를 보면서 느낀 점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인간 모양의 리얼한 인형, 인간의 복장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리얼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형체, 돌로 조각한 형체, 실제 동물의 사체, 동물의 뼈 등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인간이 '우리'라는 동질감을 느끼는 형체에 대해 경계 언저리에서 계속 실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음번 실험은 무엇이 될지 궁금해지는 전시.

 

 

- 입구에 있는 노숙자 행색의 작품 1, 로비에 자연스럽게 앉아 있는 또다른 노숙자 행색의 작품 2. 어린 시절에 인형에 옷 입히고 이것저것 꾸며둔 것처럼, 몇 겹의 옷으로 칭칭 감은 '무언가'임에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데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보면서 다양한 존재의, 인식의 경계를 넘나들다보니 전시장을 나오는 길에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커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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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시 정각에 들어갔더니 1층에는 사람이 많아서 2층부터 돌았다. 일단은 2층에 있었던 작품들부터

 

1 - 프랭크와 제이미. 경찰복을 입은 두 개의 인형이 거꾸로 서 있다. 왠지 여기서 물구나무를 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재밌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만. (실제로 그렇게 가능한지는 모름)

2 - 잉글랜드가 다른 나라에게 진 축구경기 결과 스코어를 비석에 박제한 잔인한 작품. 작가가 어느나라 사람인가 했더니 이탈리아 인이시구랴. 왠지 이 작품 이탈리아 버전으로도 있을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드는군요.

3 -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4 - 대구집에 있는 동이가 생각나서 왠지 울컥한 작품.

5, 6 - 뼈다귀만 남은 비밀, 가죽까지 온전한 모습이 보존된 가족. 전시 동선상 뼈다귀부터 본 후 박제작품을 보게 된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전시장 곳곳에 있는 작품들이 실제 동물의 사체를 이용한 것들인데, 자연사한 동물들의 사체만 이용했기에 윤리적인 문제는 없지만 이상하게 꺼림칙하다. 

7 - 2층에서 내려다 본 1층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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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 전시를 둘러보고 난 후 3층으로. 올라가자마자 가장 처음에 눈에 들어온 것은 빨간 카페트, 그리고 수많은 

 

1, 2 -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하얀 천을 뒤집어쓴 (혹은 바디백에 담긴듯한) 형태가 눈 앞에 있는 존재를 마치 다른 것인양 느끼게 만든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러한 형태의 이미지는 대체로 재난, 사고, 테러 등 비극적인 사건에서 등장하기에. 이 작품은 그저 이미지, 표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켠에 서서히 퍼지는 불안감과 고통을 잠재울 수 없다.

3 - 일그러진 표정을 한 채 비스듬히 쓰러져계신 우리 교황님. 작품의 제목이 '아홉번째 시간'인데, 찾아보니 예수가 숨을 거둔 시간이라고 한다. 갑자기 지크슈가 보고싶어지는군요. 암튼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님이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느껴졌지만, 한편 마지막 순간을 예수에 빗대었다는 점에서 교황님에겐 꽤나 영광스러운 제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4 - '찰리는 서핑을 안하잖니'라는 제목의 작품.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해석이 전혀 되지 않는 작품이라 오히려 신선했다. 하고 정보를 찾아보니 작가의 유년시절 경험이 담긴 작품이라고 한다. 아하 그래서 이해가 어려웠군.

5 - 결박된 사람(형태의 인형)이 작품인지, 혹은 사람 모양의 인형을 운송하기 위해 고정한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작품인지 잘은 모르겠다. 발이 허공에 떠있는 채 단단하게 고정된 것을 보면 십자가 위에 못박힌 형상도 떠오른다. (이건 과대해석인것 같지만 뭐 어때 내맘인걸)

6 - 머리를 벽에 처박고 있는 모양의 말 박제. 약간 휘슬 재킷이 생각나는 포즈이기도 한데, 휘슬 재킷에서는 늠름하고 역동적인 포즈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수동적...임을 넘어서 생명력을 상실한, 완벽하게 '죽은' 모습이라는게 다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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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히 인기있는 작품인 시스티나 성당. 사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달리 인기있다기보다는, 한번에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없고 한번 들어간 사람들이 사진을 여러장 찍으며 꼼꼼히 둘러보다보면 자연히 줄이 길게 늘어설 수밖에 없다보니 그런게 아닌가 싶었다. 10시 타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내가 갔을때 한팀정도 기다리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음. 근데 사실, 이 작품은 예쁘긴 한데 그래서 뭐? 왜? 굳이? 라는 생각이 많이 들긴 했습니다. 무엇을 의도한거지? 거대한 성당이 작아지면서 초라해지는것이라기엔 그냥 너무 예쁜뎅. 그냥 시스티나 성당의 팬인가? 건담 50:1 피규어를 소장하는 그런 기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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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층에 있는 다른 작품들 이야기. 들어왔을때 넓게 보이는 장소 뒷편에, 작게 나누어진 공간에도 작품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살짝 숨겨둔 공간이라 더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르고.

 

1, 2 - '사랑이 두렵지 않다'라는 타이틀의 작품. 누가 봐도 코끼리지만 사실 대부분의 면적이 천으로 가려져 있다. 코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힌트는 거대한 덩치, 그리고 아주 길고 잔뜩 주름이 낀 짙은 회식의 코. 시선을 아래로 돌려 커다랗고 둥글둥글한 발을 본다면 더 확신은 커지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것이 코끼리구나 라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 작품 타이틀은 조금 생뚱맞게 느껴질 수 있는데, 누군가와 만나 사랑을 하고 애정을 나눈다는 것 또한 그들의 일부분을 보며 확신을 가지게 되는(혹은 가져야만 하는) 행동이므로 마치 연애, 사랑은 천을 덮어씌운 코끼리를 만나는 것과 같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고 멋대로 해석해봅니다. 뭐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보라고 저런 제목을 단거 아닙니까? (뻔뻔)

3 - 코미디언.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는 클리셰에서 나온 작품인 듯 한데,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서는 저 덕테잎을 뜯고 바나나를 먹은 후, 껍질을 바닥에 놓고 아주 자연스럽게 길을 가다가 넘어지는 것까지가 완성 아닙니까? 다른 전시에서 누군가 덕테잎을 뜯고 바나나를 먹었다는 글을 보았는데, 누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는 것까지 해보면 재밌겠다. 아 이것도 이미 했을라나.

4, 5 - 비디비도비디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박제 다람쥐를 인간의 일상을 모방한 공간에 넣어두고는 총기자살 시켜버리다니. 상당히 넓은 전시관 한 켠에 아주 작게, 무릎을 구부려야 겨우 보이는 작품을 설치한 공간낭비도 좋았고, 인간과 다람쥐의 크기 차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엿보기 느낌이랄까? 그런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너무나 현대 인간의 삶 그 자체라서, 아마 신이 인간을 굽어본다면 이렇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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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 3층을 둘러보고 내려와 다시 1층으로. 들어오자마자 천장에 걸린 말 박제가 전시장의 풍경을 약간은 스산하게? 만든다. 마치 도축장에 걸려있는듯한 느낌도 들고. 그리고 10분 정도?마다 북 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가장 오른쪽 박스 위에 걸터앉은 소년이 시간이 되면 북을 열심히 친다. 아 소리만 들리고 실제로 치는건 아닌가? 암튼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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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디게디게 쪼끄만 엘리베이터. 사진으로 보니 별로 안작아보이지만 이거 무릎 구부리고 앉아서 찍은 사진입니다. 참고로 엘리베이터가 양 쪽이 번갈아가며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면서 문이 열리는데, 왠지 이 엘리베이터로 3층의 다람쥐 맨션까지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이즈도 딱 다람쥐 전용 사이즈같은데.

2, 3 - 까만 돌로 만든 고양이. 약간 이집트 느낌의 고양이 상인데, 모서리 귀퉁이에 놔두어서 아무리 얼굴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 그래서 고양이같지만 진짜 고양이인지는 모르겠다. 작품명도 그것 이라고만 적어놨고.

4 - 이 박제비둘기떼에게 유령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으니 사람들이 피하지도 않고 이렇게 사진도 찍어가는군요. 이 전시 보고나서 정확히 이틀 후, 석촌호수에 있는 카페 테라스에 앉았다가 비둘기가 내 테이블 앞쪽 난간에 앉아서 기겁하고 자리를 피했던 게 떠오르는건 왜일까.

5 - 강아지만 보면 우리집 동이가 생각나...(눈물) (동이 살아있음, 건강함) 병아리가 중간에 있는데 한마리만 달랑 있으니 너무 외로워보인다. 강아지랑 병아리를 같이 '우리'로 볼 것인지, 강아지 두 마리만 '우리'로 볼 것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병아리는 그들 사이에 온전히 낄 수 없는것 같아.

6 - 천장에 매달린 말, 노베첸토. 찾아보니 이탈리아어로 20세기를 뜻하는 단어라고 하는군요. 벨 에포크 같은 느낌일라나? 거대한 동물의 사체가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광경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수많은 동물의 사체 위에 살아가고 있으니 고작 눈 앞에 보인다는 것 만으로 겁을 먹거나 충격을 받는다면 그 또한 위선적인 것일지도. 혹은, 사체가 '감히' 우리 머리 위에 있는 사실이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만약 발 아래에 있었다면 그냥 흔한 작품 하나로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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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스타그래머블한 작품이 아닐까. 전시장 바닥을 뚫어서 사람모양의 인형이 빼꼼 튀어나오도록 배치시켰는데, 과연 그가 저 구멍에서 나오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지상의 세계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 사실 저 인형이 보는 풍경을 각도 맞춰서 바라보고 싶었는데 전시장 바닥에 누우면 너무 관종일거 같아서 그만뒀다.

2 - 우리. 쌍둥이? 아니면 형제? 혹은 상대적으로 젊었을 때와 나이 들었을 때? 하고 찾아봤더니 둘 다 카텔란이라고 하네요. 본인을 두 개의 형상으로 만들어 '우리'라는 제목을 붙인게 오히려 본인 외의 누구와도 '우리'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인가 하는 뒤틀린 생각이 든다.

3 - 그. 누가 봐도 히틀러인데 참 어울리지 않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다. 표정은 그다지 성스럽지는 않은데, 마치 '내가 뭐?' 하는듯한 느낌. 햄릿에서 클로디어스가 하나님에게 회개하는 기도를 한 후, "Words without thoughts Never to heaven go." 라고 독백하는 부분이 연상되는 뻔뻔함. 참고로 나는 이 작품을 볼 때 앞모습을 보기 전까지 별다른 인상을 받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뒷모습을 먼저 보고 귀여운 아이로 생각했다가 앞모습에서 충격을 받는다고 하는군요. 작품의 배치도 그런 점을 의도한 것이겠지요 아마?

4 - 축 걸린 인간, 인형, 아니 인간.

5, 6 - 냉장고 속에 웅크린 인간의 모습. 작품 제목이 그림자인데 역시나 이해가 잘 되는 제목은 아닙니다. 인형씨가 입고 있는 바지가 꽤나 몸빼바지 스럽다는 것과 우리집 냉장고에 있는 바질페스토가 여기에도 있어서 반가웠다는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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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어머니. 땅에서 솟은 손, 마치 생명력과 재생을 상징하는듯한. 땅에서 느껴지는 재생산의 이미지 블라블라- 등등이 있겠지만, 어느것 하나 가슴으로 와닿지는 않으니 그냥 어머니구나 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가야지.

2, 3 - 아버지. 아주아주아주 커다란 발. 가까이 가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그의 존재감. 모래와 오물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발. 등등- 역시나 해석을 위한 해석인것 같아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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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요 작품도 마음에 들었는데, 이 냉소적인 전시작품들 중 유일하게 희망적인 작품이라 좋았다. 부츠를 가득 채운 흙, 거기에 뿌리내린 고추모종. 부츠에서 느껴지는 군화 혹은 권위적인 이미지와 고추모종에서 느껴지는 대지의 자애, 풍성함. 이런걸 다 차치하고서도, 죽음의 상징 혹은 죽음 그 자체가 가득한 이 전시장에서 파릇파릇하게 살아있는 존재라는 점이 마음 한 켠을 밝게 만들었다. 물론 이 작품이 아주 크지도 않고, 전시장 내에서 주목받는 작품도 아닌지라 그저 스쳐가는 하나의 쉼표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2 - 커다랗고 예쁜 지도. '아름다운 나라'라고 합니다. 반어법이라기엔 바다를 너무 예쁜 색으로 표현해놓았으니 꼬아서 듣지 않고 그대로 믿어보기로.

3 - 검은색으로 칠한 캔버스를 칼로 베어버렸는데, 가까이서 보는 것을 제재하는 통에 서로 다른 각도에서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를 충분히 살펴보지 못했다. 아쉽지만 크게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었으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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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의 마무리는 전시장 입구(혹은 출구) 옆에 있는 보이드라는 작품으로. 이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하나같이 마우리치오 카텔란, 그의 작품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가는 길에 한번 빙 돌아보면서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듯 하다. 아니, 꼭 그리 해봤으면. 덧붙여서 '하양'의 이미지가 전시 내에서 죽은 것들에 대한 박제로 종종 사용되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작품 또한 자신이 만든 작품들의 박제, 죽음으로 볼 수도 있을것 같다. 심지어 하나하나 만든것도 아니고 대충 뭉쳐놓았어... 종이 구깃구깃하게 말아서 버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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