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전시 리뷰

[230603] 2023 금호 영 아티스트 2부

eunryeong 2023. 6. 25. 07:05

현승의

    작가 현승의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의 모습을 밀도 있는 회화로 구현해낸다. 자신이 나고 자란 제주를 작품의 주요한 소재로 삼아 온 작가는 이상화된 제주의 이미지에 감추어져 있는 어두운 면에 주목한다. 제주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지닌 관광지로 각광받지만, 그 이면에는 관광 자본에 의한 무분별한 개발과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 역사적인 아픔이 도사리고 있다.

    이번 개인전 《평범한 ■씨의 휴가 The Ordinary ■'s Ordinary Vacation》에서는 가상의 인물 '씨'의 휴가를 주제로 삼아 그가 제주 여행에서 누리는 안락하고 낭만적인 의식주 생활을 그려낸다. 제주를 둘러싼 자연 및 사회 문제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장식한 과장된 홍보 문구와 조화는 만들어진 관광지로서의 비대화된 낭만과 허황된 속성을 부각시킨다. 이와 함께 나타난 인기 관광지의 전형화된 기념사진, 쉼 없이 섬에 내려앉는 비행기, 수족관 속 쓰레기와 뒤섞인 해양 생물의 모습은 우리가 평범하게 누리는 제주 관광이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 어떤 대가를 치러 가능하게 된 것인지를 고찰하게 만든다.

 

    제주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펼치는 작가들을 꽤 많이 보았고,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의식도 대체로 비슷한 편이라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육지에서 들어온 자본의 섬 파괴'라는 공식이 그다지 와닿지 않는지라 약간은 심드렁하게 보는 편. 그러나 이번에 본 작품들 중, 제주에서 촬영되는 아주 전형적인 기념사진 구도에서 블랭크로 대치된 인간의 형체는 조금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의 관광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모든 유형의 관광에서(어쩌면 작가도 포함해서) 저런 류의 행위가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여행을 통한 자아찾기보다는 오히려 여행을 통해 나와 타인의 경험이 균질화되는 양상이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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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

   작가 이희준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건축적인 공간으로부터 이미지를 수집한다. 공간이 만들어내는 형태와 비례, 색채로부터 미감을 발견하는 작가는 이를 캔버스 위에 추상적으로 재배열한다. 기하학적인 형태의 색면과 선, 점으로 기호화된 화면은 공간에 대한 작가의 경험을 시각화하면서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전달한다. 이전에 주로 완성된 건축 공간을 소재로 다루었다면, 이번 개인전 《비계 Scaffolding》에서는 가공되지 않은 건축 재료와 표면이 가지는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속성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 건설 현장에서 활용되는 임시 구조물인 '비계'의 개념을 접목한 포토콜라주 회화와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건축물의 외벽과 장식적인 요소, 조경을 포착한 사진 위로 비계에 드리워진 가림막을 닮은 색면이 축적되고, 선과 도형이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물성과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전시장의 벽과 바닥을 감싼 보양재와 그 중앙에 설치된 단열용 압축 스티로폼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이 공간을 무언가가 건설되고 있는 임시적인 공간으로 감각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작가는 지속적인 사유와 대화가 만들어지는 장을 제시하여 또 다른 시선으로 회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건축이라는 요소를 접목하여 작품을 만들어내었다는 설명은 그다지 와닿지 않았고, 그냥 아름답네. 정도의 감상. 전시장 내부의 구성까지 신경써서 공간을 채운 점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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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노식

    작가 임노식은 낯선 시점으로 바라본 일상의 풍경과 사물을 회화에 담아낸다. 이번 전시《깊은 선 Deep Line》에서는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인 여주의 모래산과 돌, 나무에 대한 관찰과 기억,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전달받은 풍경에 대한 묘사를 종합해 구축한 이미지를 선보인다.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과 수집된 이야기를 회화로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작가는 여러 기법을 시도한다. 거리두기와 지우기, 분석하기, 긁어내기, 추가하기, 버리기, 끌고가기, 인식하기, 비우기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기억 속의 불확실한 이미지는 확실한 선으로 축약된다.

    작가는 판화와 유사한 기법을 활용해 선을 따라 화면을 파내고 그 자리에 물감을 메운 후 다시 평면화시킨다. 이를 통해 선은 화면 위에서 최소한의 공간을 점유하면서도 최대한의 깊이감을 가지게 된다. 선 밖의 여백은 비워지고 버려진 이미지에 대한 상상의 여지를 내포한다. 프레임 안에 매달려 있는 선 덩어리들은 주변을 맴도는 허공까지 여백으로 흡수하면서 공간을 깊이 있게 점유한다. 이렇게 평면과 공간에 그려진 함축적인 선들은 수집된 이미지로부터 원천을 추출해 화면으로 옮기는 작가만의 시각화 방식을 보여준다.

 

    낯선 시점으로 바라보기. 작가의 다양한 시각을 선과 면만을 사용하여 그려낸 많은 작품들을 나름 재밌게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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