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공연관람 기록

[230504] 국립극단 <벚꽃동산>

eunryeong 2023. 5. 5. 23:21

- 국립극단의 공연, 체호프 각본, 그리고 김광보 연출. 딱히 고민할 이유가 없어서 바로 예매했습니다. 국립극단 연극은 배우들에 대한 정보는 거의 모르고 가는 편인데, 그래도 이번 공연에는 익숙한 이름과 얼굴들이 보여서 반갑더군요. 뭐 완전히 처음 보는 분들이었어도 믿고 봤겠지만.

 

- 체홉 극은 극본으로 읽긴 했어도 이렇게 연극으로 본 적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음. 셰익스피어는 온갖 버전으로 여러번 보았는데 말이죠... 다른곳은 그렇다 쳐도 국립극단에서도 매년 셰익스피어 극을 하나씩 올리는 편이었는데, 올해에는 셰익스피어 대신(이라고 할수 있을진 모르지만) 체홉의 극을 볼 수 있어서 좋네요. 

 

- 벚꽃동산은 희곡집을 읽었던 작품이 아니라 이 연극으로 스토리를 처음 접했다. 공연 전 프로그램북을 사서 인물관계도를 잠시 보다가 아 이건 도저히 지금 머리속에 넣을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편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공연을 봤는데, 인물은 많아도 극을 보면서 관계도를 파악하기 어렵지 않아서 괜찮았음. 오히려 희곡집으로 읽었다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겠지만 아무래도 등장인물이 적은 극이나, 이미 모든 등장인물을 알고 있는 극만 희곡으로 읽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 이 극의 주요 갈등은 벚꽃동산을 지키고 싶지만 재정적인 능력도 시대에 맞춰 이를 타개해보려는 적극성도 없는 지주가문,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여러 군상의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도 벚꽃동산의 소유권을 지킬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안하는 로파힌이 가장 크게 대비되는데, 이대로 있다간 이 곳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라며 허황된 희망만 붙잡고 있는 이 가문 사람들을 끝까지 붙잡고 설득하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이 곳을 본인이 사버린다. 철길이 멀지 않고 바로 옆에 강이 지나는 이 땅의 부동산적 가치를 생각한 것도 있을테고, 이 곳에서 농노로 일한 본인의 아버지, 그리고 조상들이 생각나서이기도 하겠지.

    막상 이 땅이 팔리고나니 절망적이던 분위기는 어느정도 가라앉고 지주 가문은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외국으로 가 다시 정착할 곳을 찾아 나선다. 어떤 면에서는 마지막까지 참 그들다웠다고 할 수 있으려나. 비극의 시작일것 같았지만 막상 닥쳐오니 담담한, 생각보다는 해볼만한 정도의 굴곡이겠지.

 

- 이 극에 나오는 여러 관계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의미가 있는건 역시 바랴와 라피힌의 관계.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둘이 결혼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관계이기도 하다. 바랴는 라피힌과 결혼하고 싶지만 그의 청혼을 기다릴 수밖에 없고, 라피힌은 그녀에게 호감이 있음에도 청혼은 하지 않는다. 연극을 보는 내내 둘의 관계를 응원했는데 마지막까지도 아무 진전이 없어서 슬펐지만, 라피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녀를 둘러싼 너무나도 순진...하다고 해야하나... 속된말로 머릿속이 꽃밭이기만 한 몰락귀족과 혼인관계를 맺는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일지 이해가 간다.

 

- 방금 후기를 위해 프로그램북을 찾아보다가 안 사실인데, 윤성원 배우가 대학생 역할로 나왔더군요??? 아니 극을 보면서는 전혀 못알아봤는데... 머리가 벗겨졌다는 대사가 몇번이고 나오는데 이거도 분장이었나??? 와 배우들에게 흔히 천의 얼굴이라고 하지만 정말 공연을 보는 내내 못알아본 적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움 ㅋㅋㅋ 물론 제가 얼굴을 잘 못알아보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건 심하지 않나 싶은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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