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공연관람 기록

[230506] 국립창극단 <절창Ⅲ>

eunryeong 2023. 5. 6. 23:39

- 올해 절창시리즈 3개를 다 예매했는데 두번째 편은 결국 못봤다. 평일 공연밖에 없어서 불안해하며 예매했는데 결국 그 불안이 현실로... 평일 공연은 아예 회사 근처(코엑스)거나, 아니면 집 근처(신촌이나 홍대)거나 해야 그나마 볼 수 있을듯. 오늘도 비가 계속 와서 약간의 고민을 했지만 결국 남산을 올라 공연을 보러 갔고, 아마 올 상반기 최고 공연 중 하나가 될듯한 경험을 하고 옴.

 

- 이번 공연의 가창자 중 한명이 이날치의 보컬로 잘 알려진 안이호씨였다. 이날치 공연으로는 두어번 뵌 적 있는데 판소리 공연으로는 처음이었고, 이렇게 정통 판소리를 하시는 분인줄 이번에 처음 알게 됨. 하긴 내가 판소리나 국악에 대해 그다지 알고 있는 지식이 많지 않긴 하지... 정보를 찾아보니 수궁가를 전수받으셨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날치 앨범이 수궁가를 어레인지한 것이었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익히 들어보았을법한 '범 내려온다'도 수궁가의 한 장면이고! 아 이렇게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때마다 전율이 이는걸 보면 나도 참 덕후의 유전자는 어쩔 수 없나 봄.

 

- 또 다른 가창자는 국립창극단 단원인 이광복씨인데, 첫 곡에서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기 전의 노래를 아주 애절하게 부르더니 다음에는 또 수줍게 등장하고, 능청스럽게 웃긴 장면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노래할때는 우레와 같이 소리를 지르고. 다채로운 장면들을 완벽한 연기와 소리로 끌어가는데 감탄을 했다. 근데 또 중간에 이야기를 건네시는걸 듣고, 아니 어떻게 저렇게 사근사근한 말투로 이야기하시는 분이 저렇게 강하고 끊어질듯한 거친 소리를 내시지? 하고 또 신기해했음. 

 

- 절창 3 공연은 심청가와 수궁가를 이어붙였는데, 둘 다 바다가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주인공이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행동한다는 또 다른 (생각지 못한) 유사성이 있다. 전자의 바다라는 배경의 공통점은 범피중류라는 같은 곡의 차용으로 나타난다면, 후자는 이번 절창 공연의 주제로 어레인지되었다고 볼 수 있을듯. 심청이도, 별주부도 자신의 꿈과 인생을 위해 찾아가는 결말을 보면서 21세기의 시각으로 그들의 해피엔딩을 다시 정립했다는 것이 의미있는게 아닐까. 음악적으로도, 메세지적으로도 아주 납득되었던 공연.

 

- 무대 연출적으로도 기억에 남는 부분들이 꽤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무대 뒷편 중앙에 있는 ^ 모양의 구조물을 때로는 뱃머리로, 때로는 용궁이나 절의 처마로 만들어 공간을 연출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정말 '스마트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연출. 

 

- 판소리 공연의 묘미 중 하나가 가창자들과 주고받는 추임새가 아닐까 싶은데, 이번 공연에서 이 부분을 특히 크게 느꼈다. 때로는 관객들이 추임새 넣는것에 급급해서 오히려 흐름이 끊긴다 싶은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오늘 공연에서는 너무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게, 판소리를 보면서 흥이 터져나올 때 추임새가 딱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몰입하며 볼 수 있었던듯. 뭐 내가 관객을 평가한다는 게 주제넘은 짓이기는 하지만. 나도 조금 더 내공이 쌓이면 이렇게 흥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추임새가 터져나오는 날이 오겠지? 그때가 되면 또 다른 판소리의 맛을 느낄 수 있을것 같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