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공연관람 기록

[230122]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eunryeong 2023. 1. 24. 23:53

- 전날에 이어 노년의 배우분들 무대를 보기 위한 연극 티켓팅. 처음에는 크게 볼 생각이 없었는데, 신구 배우님이 나오신대서 흔들. 박윤희 배우도 나오길래 한번 더 흔들. 결국 예매해버리고 말았다.

 

- 한국적인 신파극이 아닐까 생각하고 갔는데, 예상과 같이 굉장히 한국적인 극이지만 또 예상과는 달리 전형적인 신파극은 아니다. 시골마을의 45년 된 단관 극장의 마지막 며칠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가족간의 갈등,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 대한 여러가지 모습을 비추면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좀 애매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중심 갈등은 근본적인 부분이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한 꼬이고 꼬인 실타래는 그래도 싹둑 정리된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는데, 현실적인 이야기 흐름이라는것을 알고 있음에도 마음 한 켠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그 지점이 남아있어서 극장을 나오는 길에 욱신욱신하는 느낌을 받는다. 너무 사이다 감성을 원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긴 하다.

 

-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갑자기 퀴어 요소가 툭 튀어나오는데, 극 중 영화관 이름이 레인보우 시네마라서 또 묘한 느낌. 이 커플의 갈등 원인도 굉장히 현실적인데, 커플을 둘러싼 주변 인물의 반응은 약간은 판타지스럽기도 하다.

 

- 토끼 탈을 쓴 캐릭터가 나오는데 토끼탈이 너무 귀엽다. 토끼탈 나올때마다 속으로 너무 귀여워!!!!를 외쳤음. 그래서 나중에 탈을 벗고 나올때 조금 아쉬웠다(?) 탈을 쓰지 않고서는 차마 세상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등장인물이 한걸음 껑충 성장하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러니 무조건 탈을 벗어야만 하지만... 귀여웠는데... 이런 관객들의 아쉬움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마지막 장면에서 다른 등장인물이 토끼탈을 쓰고 나타나는데! 그 방정맞은 몸짓을 보고 아 이거 누구겠구나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ㅋㅋㅋㅋㅋ 참고로 아래 사진에서 뒤에 고사지낼 때 돼지머리 놓아두는 것마냥 토끼탈 머리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거도 묘하게 웃음이 나왔음 ㅋㅋㅋ

 

- 후반부에 대놓고 울어! 울라고! 라고 휘몰아치는듯한 장면이 있는데, 배우들 연기가 너무 감정과잉이라서 머릿 속으로 잉? 싶었음. 심지어 중간에 연기 감정선 잘 잡고 나가던 배우도 갑자기 아아아아-! 하면서 울어버리니 엥? 갑자기??? 모든 배우들이 이렇게 쏟아내는걸 보면 아마도 연출의 디렉인것 같은데 흠 난 모르겠다. 근데 연극을 많이 보시지 않는 분들에게는 저런게 더 직관적으로 와닿을수도 있겠다 싶고. 솔직히 나도, 분명 극을 보면서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분하게도 눈에서는 눈물이 나왔다... 아 이렇게 울면 진짜 지는 느낌인데. 

 

- 신구 배우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참 성실하게 하신다는 느낌. 박윤희 배우는 극에서 볼 때마다 너무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하나같이 찰떡으로 잘 소화함. 이번 연극과 같은 캐릭터도 처음이었는데 역시나 잘 하더라. 아니, 이렇게 약간 수더분한 캐릭터가 제일 찰떡인 것 같기도 하고. 박장면 배우는 다른 역에 비해 개그포인트의 티키타카가 많았는데 대사를 잘 살리더라. 다음에 코믹극에서 한번 보면 재밌겠다 싶었음.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언제 오나... 

 

- 이 극을 보면서 내가 종종 다녔지만 이제는 사라진 여러 극장들이 생각났다. 멀티플렉스에 밀려, 그리고 OTT에 한번 더 확인사살 당한 지방(그리고 서울의) 극장들. 시사회 전문 극장으로, 혹은 예술영화 상영관으로, 재개봉영화 전문관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극장들의 소식을 찾아보니 지금은 모두 사라진 듯. 하긴 나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이니. (기생충도 헤어질 결심도 보지 않음)

    온라인으로 언제든지 쉽게 영화 혹은 다양한 컨텐츠를 접할 수 있지만, 문제는 온라인의 경우 본인이 찾아가기 전에는 그 컨텐츠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온라인에서도 브라우징을 할 수는 있지만, 예전과 같이 하나의 포탈사이트에서 모든 분야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기에 내가 이미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알고리즘 속에서만 새로운 것을 접하게 된다. 오프라인의 가장 큰 의의라면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야에 대해 접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서점도, 레코드점도, 영화관도 그런 의미에서 나의 취향을 넓혀주고 나의 세계를 만들어 준 곳들이기에, 이런 곳이 하나 둘 사라져간다는 것이 영 기분이 이상하다. 내 세계의 문이 하나 둘 닫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만 유통되는 시대가 된다면, 내 세계도 그 시간에서 멈춰있게 되는걸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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