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공연관람 기록

[230304] ITA Live <더 닥터>

eunryeong 2023. 3. 5. 22:09

- 이 공연에 대한 후기를 적기 전, 먼저 고백할 게 있다. 이 공연은 전반부 30~40여분? 가량을 미친듯이 졸면서 봐서... 앞부분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극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하지 못한 채 적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 감안해주시고 보시길 권장드림. 만원버스 타고 공연시간에 거의 딱 맞춰 도착했더니 체력이 바닥났는지 진짜 입장하자마자 피곤함이 몰려와서 어쩔 수 없었다...

 

- 영상 시작할 때 이보 반 호프씨가 소개하셔서 잉? 이보 반 호프 연출작은 이거 아니었던거 같은데??? 싶어서 잠시 동공지진 옴. 체크해보니 이 작품은 로버트 아이크 연출작이 맞고, 해당 작품을 공연한 인터내셔널 씨어터 암스테르담이라는 단체의 예술감독이 이보 반 호프씨라고 한다. 이름은 이전에 몇번 들어봤지만 이번 작품으로 처음 로버트 아이크씨의 연출작을 간접 체험하게 되었는데, 다음에 한국에서도 작품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런 작품을 데려올만한 곳은 LG아트센터밖에 없으니까, 다음에 힘 좀 써주셨으면.

 

- 줄거리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하기 위해 여기저기 정보들을 찾아보니,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베른하르디 교수'라는 극을 현대 배경에 맞게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원작에서는 유대인 병원장을 쫓아내기 위한 음모였던 사건이, 현대에서는 보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여러 '집단'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계기로 작용한다. 어느 누구도 온전히 옳지는 않다. (온전히 그른 사람은 있는 듯 하다) 

 

- 20세기의 배경에서는 유대인이었던 주인공이 21세기에는 유대인 여성으로 바뀌었다. 여성이 병원장으로 재직해도 어색함 없는 시대를 반영한 것일수도 있고, 여성이라는 소수집단적인 성격을 부여하기 위한 것일수도 있을 듯 하다. 유대인이라는 설정은 그대로 가져왔지만 함의는 다소 다르다. 20세기에는 일방적인 매도의 대상에 가까웠다면, 21세기의 유대인은 은근한 기피와 선입견의 대상으로 기능한다. 크게는 백인이라는 우위를 가진 집단에 속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유대인을 바라보기 위한 선입견의 렌즈를 벗어던지는 경우는 없다.

 

-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은 '의사'로서의 결정일 뿐, 인종이나 종교, 성별등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집단과 개인을 완전히 별개로 둘 수 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계속 등장한다. 사실 여기에서 조금 피곤함을 느꼈는데, 주인공의 입장은 (최소한 내가 기억나는 장면부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하고 단순한데 비해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은 가지각색의 형태로 똑같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 아마도 이런 피곤함을 의도하고 만든것 같긴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정말 정말 많이 피곤했다. 아마 초반에 열심히 졸았던 데에는 이것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 2막에서는 각 집단의 의견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하나씩 배치한 TV토론회가 열린다. 이 토론회에서 의견을 나누는 일부 인물들의 행태도 그렇지만, TV토론회라는 수단 자체도 꽤나 흥미 위주의 포퓰리즘적인 오늘날의 여론 흐름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병원 내부에서 우려하는 외부에서의 시선을 이 토론회를 통해 여과없이 드러낸다.

 

- 한편, 이들이 끊임없이 주인공의 '유대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 논쟁에서 반유대주의의 시선, 좀 더 온건하게 표현하면 유대인들을 타자화하는 시선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데, 표면적으로는 백인 엘리트 여성이 흑인을 밀친 것, 혹은 환자의 종교적인 자유가 보장받지 못한 것이 이슈가 되었지만 실상은 유대인이 기독교인을 막아섰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큰 트리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만약 크리스천 의사가 목사를 제지했다면? 혹은, 유대인이 이슬람교나 불교 성직자를 제지했다면? 이렇게 문제가 커졌을까 과연?

    오늘날 유럽에서 표면적으로 반유대주의를 외치게 되면 돌팔매질을 당하게 될 것이기에, 다른 이유들을 갖다붙여 성공한 유대인을 조롱하는 사건이 되어버린게 아닐까 싶은 생각. 21세기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을것 같고. 그녀의 면전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익명의 누군가가 차에 '나치'라는 글자를 쓰고 간 것을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 이웃집 여자아이가 왜 등장하는지, 그리고 왜 마지막에 주인공에게 폭언을 퍼붓는지 잘 모르겠다. 초반에 둘 사이에서 무엇을 매개로 라포가 형성되었길래 이렇게까지 외면을 당하는걸까. 앞 부분을 싸그리 놓쳐버린 내 탓이오 내 탓이다 이건.

 

- 여성은 남성을, 남성은 여성을, 흑인은 백인을, 백인은 흑인을 연기하는 뒤죽박죽 캐스팅. 이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캐스팅으로 상상의 영역을 더해 이야기를 완성해야 하는 연극이라는 장르의 묘미이기도 하면서, 이해관계가 뒤얽힌 각 집단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려 극의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무대 위에서 그들이 입는 의사가운, 혹은 여타 다른 의상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