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일상 기록

[230310] 면접, 석촌호수, 서울시향의 쇼스타코비치와 WBC 한일전

eunryeong 2023. 3. 18. 10:35

    일기를 며칠 지나서 기록하는 건 그 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훗날의 감상까지 뒤섞여버리는 경우가 많아 그다지 선호하지 않지만, 어쨌건 기록을 남겨야 할 하루임에는 분명하고 그렇다고 본말이 전도된 기록을 남기고 싶진 않아서 고민 끝에 지금이나마 이렇게 적어본다. 원래는 쇼스타코비치 공연 후기를 적으려고 처음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공연을 제대로 본 게 아니라서 '공연 후기'에 이 글을 적는건 기만인것 같고. WBC 관련 이야기를 하자니 이미 따로 적은 바 있어서 무의미한 반복이 될 것 같고. 거기다가 글도 써지지 않고. 그래서 부담이 제일 적은 일기 형식으로 바꿔보았다. 공연이나 전시 리뷰가 아닌 하루의 행적을 적는 일기는 오랜만인거 같은데 앞으로는 조금 더 자주 적어봐야지.

 

 

1. 2023년 3월 10일의 첫 일정은 구직인터뷰였다. 이 날은 몰랐지만, 그 다음주 화요일에 다른 회사의 면접을 본 것이 최종발표가 나서 이 인터뷰가 이번 이직타임에서는 마지막 구직인터뷰가 되었다. (사실 최종발표 다음날 다른 회사의 임원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결과 발표 후 취소해버렸다) 이 인터뷰는 꽤나 독특한 인터뷰였는데, 실무 포지션으로 지원을 했음에도 대표님이 1차 면접을 보셨고, 실제 면접시에도 지원한 포지션보다는 다른 직무쪽을 더 생각하고 있으신 듯 했다. 다만 나를 어떤 직무로 고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짐작가는 부분이 없어서 여러가지로 의아했던 부분. 면접 중간부터 좀 피곤해하시는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면접 끝나고 나오니 한시간 반이 지나있었다. 아 그만큼 면접을 보면 피곤해하실만 하지...

    암튼 이렇게 금요일에 면접을 보고, 주말 지나고 월요일에 헤드헌터분 통해서 면접시간에 물어보지 못한 질문을 추가로 물어보시기까지 했던걸 보면 면접에 정말 진심이시구나 싶었다만 다른 회사에 먼저 합격한지라 조용히 지원취소 의사를 헤드헌터분께 전달드렸다. 인연이란게 다 그렇듯 모든건 타이밍인 법. 아마 내가 그 포지션에는 완벽하게 핏한 지원자는 아니었을 것이고, 고민하신 만큼 더 적합한 인재가 나타나리라고 믿는다.

 

 

2. 면접을 마친 후, 저녁에 있을 공연을 위해 잠실로 향했다. 공연까지는 시간도 좀 있고, 식사를 하지 못해서 간단히 요기거리도 해야했고, 무엇보다 날이 좀 풀렸으니 호수가 보이는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석촌호수가 보이는 (그렇지만 공연장쪽에서 너무 멀지 않은) 카페를 찾아보았고, 호수공원 안에 있는 카페에 가서 2층 테라스쪽에 자리를 잡았다. 난간때문에 호수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껏 풀린 날씨를 즐길 수 있었던 하루. 저 난간 위로 비둘기가 갑자기 지나가서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고 공연시간 즈음에 맞춰 들어갔다. 다만 배를 채울 수 있는 베이커리 류가 많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고, 결국 스콘 하나만 조금씩 먹다가 반 이상 남기고 나오게 된건 아쉬운 점. 

 

 

 

3. WBC 두 번째 경기였던 일본전은 하필 미리 예매해두었던 서울시향의 쇼스타코비치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공연을 보고 일본전 소식은 나중에 들을까, 아니면 공연을 취소하고 일본전을 (중계로) 볼까 고민했지만 쇼스타코비치를 포기하기에는 아쉬워서 결국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공연 전 잠깐만 상황을 체크하려고 보고 있던 일본전 경기가 너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김광현 선수가 2회까지 멋진 피칭을 보여주고, 강백호 선수의 2루타에!(베이스 꼭 밟고 세레머니 하는거 귀엽고 짠했다...) 양의지 선수의 홈런까지!!!

    이 상황에서 공연에 집중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표를 받고보니 객석 2층 L구역 2열 34번. 롯데 콘서트홀의 좌석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 끝중에서도 제일 끝자리인데다 의자가 무대를 향해 45도 각도로 놓여져있어서 웬만하면 뒷쪽 사람이 뭘 해도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가 오케 공연은 연극이나 뮤지컬과는 달리 조명도 완전히 어둡게 하지는 않기 때문에 핸드폰 불빛이 객석에서 크게 튀지도 않을것 같았다. 지금까지 읽어보신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그렇다. 내가 내린 결론은, 공연장에서 야구경기 상황을 체크하면 된다! 였다. 물론 이어폰 같은걸 끼고 중계를 직접 보는건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고 상황을 파악하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심지어 공연이 시작되고 나니 내 왼쪽(이자 무대 기준 앞쪽)에 계신 분이 아예 난간에 몸을 기대고 관크(!)를 하셨고, 덕분에 내가 의자에 등을 딱 붙이고 휴대폰을 체크하는 장면이 옆자리 분에게 방해가 될 가능성이 더더욱 줄어들었다. 이 글을 빌어 관크동지(?)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아무튼, 그렇게 시작한 오케 배경음악과 야구경기 문자중계(이자 커뮤니티 팬반응 중계)의 조화는 환상적이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이날 프로그램이었던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5번의 전개가 한일전 흐름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위기의 순간이 끊임없이 찾아왔다는 것. 3회, 무사만루 위기의 순간 원태인 선수가 등판하는데 내가 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특히 태인이가 등판하는 그 순간, 쇼스타코비치 바협 1번 3악장이 시작하는데 와 미친 싱크로율... 우리 태인이가 안타 하나를 맞긴 했지만 무사 만루 그래도 잘 마무리하고, 다음 회도 완벽하게 막고, 5회 선두타자에게 홈런을 맞은 후 투수교체로 들어갔는데 그제서야 조금 숨이 쉬어졌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지, 그게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그래도 5회는 괜찮았다. 6회 7회가 진짜 문제였지)

    5회...라고 해야하나 6회라고 해야하나... 암튼 그 이후 상황에 대한 소회는 WBC에 대한 단상에 적어두었으니 이만 줄이기로 하고, 결론은 이 상황에서 공연에 집중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공연후기가 따로 없다는 것. 그래도 커튼콜 시간에는 열심히 연주해준 오케스트라와 협연자분께 열심히 박수를 쳤다! 다음번 공연은 정말 열심히 집중해서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