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공연관람 기록

[230527]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 다미안 잘레 'Kites' & 샤론 에얄 'SAABA'

eunryeong 2023. 5. 29. 13:24

    조금 이르긴 하지만, 아마 2023년 올해의 댄스공연이 될듯한 아주 멋지고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몇년간 LG아트센터 기획공연들을 꾸준히 관람해본 결과, 클래식은 무난하고 안정적인 편이고 연극은 기복이 심해서 아주 좋거나 아주 별로거나. 항상 기대치 이상을 보여주는 좋은 라인업을 가져오는 분야는 댄스였는데, 그 중에서도 발레와 같은 고전적인 무용보다는 현대무용에 가까운 공연들이 더 만족스러웠다. 마곡으로 이사온 이후에도 댄스공연들은 하나같이 다 좋았고, 일부에서는 아주 큰 감동을 받았으니.

    이날 본 공연은 하나의 단체에서 2개의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보여주었다. 두 프로그램간에는 출연진들을 제외하면 공통적인 부분이 없으니, 각 무대에 대한 감상은 따로 적어보려고 한다. 

 

다미안 잘레 Kites

- 프로그램북을 훑어보다가, Kites 무대 초반에 흘러나오는 영어 독백의 번역이 실려있었다. 자막이 제공되지 않으니 미리 읽어달라던 안내를 보고 열심히 머릿속에 담아갔는데, 시를 번역한 것이기에 매끄럽게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않아서 아쉬운대로 대략적인 내용만 머리에 담아갔다. 신기했던 점은 공연을 보면서, 무용수의 움직임을 통해 내가 읽었던 내용들이 다시 머릿속에 재생되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연이 뜨고 내리고 거칠게 움직이고 바람을 따라 편안하고 자유롭게 몸을 내맡기는 등. 연의 다양한 움직임을 표현한 문장이 무용수의 움직임과 완벽하게 맞아들어가는구나 하는걸 느낄 수 있었다. 

 

- 무대 뒷편에 두 개의 낮은 언덕같은 구조물이 있는데, 마치 스케이트보드에서 경사면을 이용해 묘기를 선보이는 것처럼 무용수들이 이 공간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는 흐름을 보여주면서 다이나믹한 광경을 만들어낸다. 백스테이지 투어에서 이 구조물을 먼저 보았었는데, 1층에서 볼 때는 낮은 철판같은걸 댄 것인줄 알았어서 그냥 뒷배경 정도로만 생각했다. 공연을 보고 나니 이 단순한 구조물을 통해 무대 자체를 휘어지게 만든듯한 효과가 나왔구나 싶었음.

 

-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보다보면 이들이 지금 표현하고 있는 것이 연을 둘러싼 공기의 흐름인지, 연의 움직임 그 자체인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장면은 한명 한명의 무용수가 각자, 그렇지만 흐름을 따라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연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을 표현하는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부분에서는 한명 혹은 여러명의 무용수가 한 공간에서 혼자, 혹은 여럿이 모여 연이 펄럭이는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마 두 가지를 넘나들면서 표현하지 않았을까? 

 

- 때로는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 벅차오르고 눈물이 나는 그런 공연이 있다. 이 공연도 그랬는데, 처음 독백에 맞춰 움직이는 무용수의 모습을 보다가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걸 보고 어라 왜지? 하고 생각하며 공연을 봤다. 후반부에 빠르게 몰아치는 장면에서도 그렇고, 암튼 여러번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신기한 건 나 말고도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던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린듯 한데, 멋진 공연을 보고 느끼는 감동은 언어를 초월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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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에얄 SAABA

- 제목을 보고 대략적으로나마 공연에 대해 예측할 수 있었던 Kites랑은 다르게, SAABA라는 제목에서는 아무것도 예상하기 어려워서 그저 공연에 몸을 맡겼다. 2부 시작하고나서 나오는 음악이 아주 경쾌했는데, 음악과 딱 어울리는 신나는 안무들을 전신 살색타이즈를 입은 무용수들이 표현하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 기괴하기도 하고... 묘한 느낌이 드는 공연이었지만,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무대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 위에서 '신나는 안무'라고 적었지만, 흔히들 생각하는 K-POP 아이돌들의 멋지고 세련된 안무라든가 혹은 댄서들의 역동적이고 화려한 안무랑은 거리가 멀다. 오히려 아주 작은 동작 하나를 가지고 집요할 정도로 반복하고 변형해내면서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작은 모티프가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이상한 쾌감이 든다. 바흐의 주제동기 마디들이 웅장한 곡으로 만들어지는 과정도 생각나고. 한명씩 천천히 점입자처럼 움직이던 무용수들이 갑자기 전열을 가다듬고 군무를 시작하는 장면은 여러번 보아도 카타르시스가 엄청나다.

 

- 이 공연을 보고 난 후 올라온 비트콤에서 서은광씨가 춘 킹받는 댄스를 보면서, 아 이거 오늘 본거 같은데? 하고 생각해보니 이 공연에서 본 비슷한 동작이 생각나더라. 전날 본 지젤에서의 부레부레 동작과도 비슷한데, 무용수가 사이드로 천천히(그러나 다리는 아주 빠르게) 움직이면서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가 그대로 다시 무대 바깥으로 사라지는 장면. 빌리 진 동작과 유사한 동작을 하며 한명씩 지나가는 장면도 떠오르는데, 한명씩 천천히 무대를 지나가다보니 한번에 무대 위에 올라와있는 무용수가 많아도 두세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이들의 동작을 아주 유심히 보게 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모두들 같은 동작을 하고 있지만 결코 같은 모양은 아니라는 것.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오히려 동작을 극단적으로 작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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