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컨텐츠 갈무리

2022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eunryeong 2022. 12. 19. 22:51

    블로그에 책에 대한 리뷰를 굳이 남겨야 할까? 라는 생각에서 이 카테고리는 오랫동안 만들지 않았었는데, 아무래도 이 블로그 하나로 다이어리 대용처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카테고리도 필요하긴 하기에 만들고야 말았다. 계속 고민했던 가장 큰 이유는 도서에 대한 리뷰를 적을 때에는 책 내용의 발췌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었는데, 너무 많은 양의 발췌는 지양하면서 최대한 내 후기와 감상을 많이 적는 방향으로 작성해봐야지. 아마 소설류의 작품들은 후기가 길지 않을수도 있을듯.

 

- 소설을 거의 읽지 않지만 매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챙겨보는 편인데, 올해는 예전에 사두고 아직까지도 읽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얼마전 책장정리 하다가 겨우 발견해서 가져온 것이 전부. 2022년을 한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지만, 지금 읽지 않으면 언제 읽을지 모르겠어서 뒤늦게나마 책을 들었다. 물론 억지력 없이 스스로 읽기에는 버거운터라 독서클럽에 가져가서 겨우 읽었던 것은 비밀...은 아니지만 비밀인척...

 

- 책에 실린 총 7개의 단편이 전체적으로 다 괜찮았다. 매년 한두편씩은 실망스러운 작품도 있기 마련인데, 이번 작품집은 취향이 아닌 글은 있어도 실망스럽다 까지는 아니었음. 그 중 대상을 받은 임솔아 작가, 그리고 두번째로 실린 김멜라 작가의 작품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 임솔아 작가의 '초파리 돌보기'는 읽으면서 공감이 가서, 혹은 생각할 거리가 있어서 줄을 친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잔잔하게 흘러가고 결말도 약간은 훅-하고 풀려버리는 게 조금 아쉽지만, 단편이라는 특성상 한계가 있었을 법 하다. 

 

p.10

    원영은 1978년 가발 공장 취업 이후 외판원, 마트 캐셔, 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원, 볼펜 부품을 조립하는 부업 등을 거치며 쉬지 않고 일해왔다. 그럼에도 '오십대 무경력 주부'로 취급되었다.

 

p.16

    초파리의 가격은 쥐에 비해 훨씬 저렴했다. 번식은 왕성했다. 수명은 고작 이 주 내외였다. 유지비마저 저렴했다. 실험이 다음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보다 빨리 목격할 수 있었다. 겨우 한 달이면 3세대까지 관찰이 가능했다. 4세대가 되어서야 뒤늦게 반응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어떤 일들은 아주 나중에야 볼 수 있다고. 4세대 초파리는 자신에게 생긴 일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 김멜라 작가의 '저녁놀'은 읽는 맛이 기가 막힌 소설이다. 오늘날 순수문학에서 잘 읽히는 책을 기대하기 그리 쉽지 않고, 특히 한국소설은 더더욱 그런 편인데(물론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편견입니다) 이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독자들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린다. 겨우 40여쪽 되는 짧은 소설인데도 기승전결이 완벽하고, 화자의 감정 변화폭이 아주 큰데, 그 감정들이 또 묘하게 설득이 되면서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불편하다. 자꾸 생각할 거리들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재밌다. 이렇게 재밌게 소설을 읽은게 정말 오랜만이었고, 작가의 단편집을 따로 사서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75

    나는 두 여자가 가증스러웠다. 먹기 위해 키우는 파를 애칭으로 부르며 위선을 떠는 너희의 이중성을 낱낱이 폭로하고 싶었다. 날 사자고 할 땐 언제고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려 성욕을 잊은 너, 먹점! 유통기한이 지난 단무지는 그대로 두면서 날 버리자는 말엔 끝내 버티지 못한 너, 눈점!

 

- 김병운 작가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은 퀴어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감정의 부정과 엇갈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나는 사람이 한둘은 있지 않았을까. 글쎄, 나는 있었는데.

 

p.128

    나는 인주씨가 말을 채 맺기도 전에 손을 내저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들으신 건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단언했고, 맹세컨대 우리에겐 아무 일도 없었다고. 걷다가 손끝이 한번 스친 적도 없는 게 바로 우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진 인주씨의 말은 주호와 내가 보낸 시절의 모양이 결코 같지 않으며, 내가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이 복잡해지는 관계는 좀처럼 인정하지 못하는, 아니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라는 걸 실감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