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2022) 미국 - 시카고, 뉴욕 등

미국여행 Day 2. 시카고 (웨스트루프, 시카고 현대미술관,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eunryeong 2022. 11. 11. 10:04
Day 2 (2022. 6. 23)
웨스트 루프 - 시카고 현대미술관 -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 리버워크 및 도심 산책

 

    여행 둘째날은 일정을 딱 짜놓고 움직인 날은 아니었다. 시카고 여행일정을 고민할 때 픽해둔 장소가 몇 곳 있었는데, 이 중 가장 끌리는 장소로 가야지 하고 대략적인 부분만 잡아놓았던 날. 원래 1순위로 생각했던 일정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대표작인 프레데릭 로비 하우스(Frederick C. Robie House)를 방문하는 것이었다만, 다른 관광지들이랑 거리가 멀기도 하고 투어프로그램에 참여해야만 관람할 수 있어서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을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카고 남쪽 지역이라 치안 문제 또한 걱정거리였다. 바로 옆에 시카고 대학이 있는데, 버스를 기다리던 유학생이 돈을 뺏겼다는 후기를 읽은 터라 더더욱... 첫 날 시차때문에 고생하기도 해서, 둘째날은 조금 쉬어가듯이 여유롭게 일정을 잡아보자고 마음먹었다. 물론 마음먹은대로 일정이 잘 흘러가지는 않았다만. 우선은 시카고에서 새로이 떠오르는 힙한 동네로 알려진 웨스트 루프 지역에 가서 커피 한잔과 함께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하기로 결정.

    시카고는 미국의 대도시들 중 뉴욕과 함께 대중교통이 잘 마련된 지역이라고 한다. 다른 곳은 가보지 않았지만, 시카고와 뉴욕 모두 여행할 때 대중교통 이용하면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시카고의 도시철도 시스템은 19세기 후반에 이용하던 고가철도 구조를 그대로 이용하고 있는데, 시카고 특유의 마천루와 이 고가철로가 만나 차창 바깥 풍경이 아주 기가 막히다...일 줄 알았는데, 지하철 창문에는 불투명 시트지? 가림막? 같은 것이 붙어있어(여행한 지 시간이 좀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 바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빌딩과 열차의 거리가 너무 가깝기도 하고, 도심에서는 속도를 내지 못하다보니 빌딩 창문으로 빌딩 안에 있는 사람들을 훤하게 볼 수 있을것 같아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붙인게 아닌가 싶더라. 아쉽게도 기대했던 풍경은 아니었지만,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시스템을 이용해서 고층 빌딩 숲 사이를 누비고 있다는 느낌 만으로도 라이트한 철덕이자 역덕인 내겐 굉장히 가슴 뛰는 일이었다.

 

 

   웨스트 루프는 시카고 도심지인 루프의 바로 서쪽 편 지역을 의미한다. 마천루가 즐비하게 늘어선 루프 지역에서 시카고 강 하나만 건너서 조금 걸으면 브루클린을 연상케 하는 동네가 펼쳐진다. 시카고의 성수, 연남, 망원 같은 느낌이랄까?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도 많았지만 거리를 걸으며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 길거리 산책은 언제라도 즐거운 법이지. 산책이라고 했지만 아래에 이야기한 곳을 찾아가는 길이라 오래 걷지는 않아서 길게 할만한 이야기는 없으니 짧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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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을 방문한 이유는 사와다 커피, 그리고 그린 스트릿 스모크 미트를 가기 위해서였다. 사와다 커피(Sawada Coffee)는 시카고 여행기들을 살펴보다가 알게 된 곳으로 시카고의 힙스터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장소라고 한다. 상호명에 커피라는 단어가 들어가있지만 차 종류가 레이어링된 메뉴가 더 인기있는 듯 했다. 하긴 서양의 힙스터들에겐 동양적인 차가 더 힙하게 느껴질 것 같긴 하다. 미국 여행중에 의외로 멋지고 힙한 장소에서 아주 친숙한 느낌의 것들을 여러번 발견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여튼, 이 곳에서 내가 주문한 메뉴는 블랙 카모 라떼(Black Camo Latte)인데, 호지차와 에스프레소가 레이어링된 라떼 메뉴이다. 호지차를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쉽게 만나기 어려운데, 여행지 핫플레이스에서 마시는 호지차 라떼라니! 이건 참을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호지차 라떼를 많이 판다면 카페에 더 자주 갈텐데. 암튼 블랙 카모 라떼 아이스 한잔을 마시며 밀린 숙제와도 같은 시카고 건축물 책을 계속 넘겼다. 

    점심식사는 그린 스트릿 스모크드 미트(Green Street Smoked Meats)에서 먹었다. 이 곳을 알게 된 계기는 비투비의 시카고 케이콘 후기?랄까, 당시 다녀온 여행사진 몇개를 보다가 찾게 된 곳이다. 시카고 네이티브인 프니엘 군이 소속된 팀인 비투비가 간 곳은 모두 찐맛집과 찐명소일 것이라는 굳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 장소를 열심히 서치해서 찾아냈다. 이 곳은 위에서 소개한 사와다 커피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곳으로, 입구쪽에는 사와다 커피의 카운터가, 안쪽에는 바베큐 집의 카운터가 배치되어 있고 손님들은 같은 홀을 공유하는 특이한 시스템이다. 커피집은 아침 일찍부터 오픈하고 바베큐집은 11시부터 주문이 가능하다. 마침 자리한 위치가 바베큐 카운터를 바라보며 감시(?)할 수 있는 곳이어서, 카운터 준비가 다 되고 손님 몇명이 주문하는 것을 본 후 슬며시 가서 주문했다. 각 부위별 바베큐를 무게별로 주문할 수 있는데 내가 뭘 주문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암튼 바베큐는 부드럽고 기름지고 맛있었으며, 안타깝지만 한국인이자 나물러버인 나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주문한 양의 반 정도밖에 먹지 못했다. 여기 가시면 무조건 코울슬로 같이 드시길. 그나마 코울슬로가 있어서 반이나마 먹었음. 오해할까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굉장히 맛있다. 그저 기름져서 많이 먹기 어려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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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마치고 시카고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MCA Chicago)으로 향했다. 여행을 다닐때마다 미술관에 들르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현대미술관을 더 좋아하고 챙겨가는 듯 하다. 이번에도 시카고 미술관 가기 전에 현대미술관부터 다녀왔다. 기간에 따라 전시 작품이 달라지는 현대미술관 특성상 혹시라도 이번에 가지 못하면 다시는 그 전시를 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미술관에 가는 길에는 버스를 탔는데 미국 버스라고 딱히 타고 내리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내려야 하는 정류장 안내방송이 나오면 창문쪽에 있는 끈을 당기면 된다. 그냥 버스에 탄 다른 사람들이 하는거 유심히 보기만 해도 바로 알 수 있다.

    시카고 현대미술관은 말 그대로 '현대'미술관이었다. 상설전시가 별도로 없고 기획전시가 시기마다 교체되는 시스템이었고, 방문시기에 따라 일부 관람관은 닫혀있기도 하다. 내가 방문했을 때에도 한 층은 전시준비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천장에 매달려 반짝거리면서 저마다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종이?은박? 공예작품이 반겨주는 것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즐거웠다. 미술관 리뷰는 상세하게 쓰다보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별도로 후기를 남길 예정이다. 대신 아래에 몇 작품들에 대한 사진과 영상만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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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을 나온 후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Starbucks Reserve Roastery) 매장을 방문했다.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은 세계 곳곳에 있지만 이 곳에서 쓰이는 커피원두를 로스팅하는 곳은 세계에 6곳밖에 없다고 하는데, 그 중 시카고 지점이 가장 크다고 한다. 매장에 들어서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로스팅 기계가 5층 건물의 정중앙에서 그 존재감을 한껏 뽐내고 있다. 모든 층에서 어떤 자리에서도 이 기계를 볼 수 있기에, 층을 옮겨다니며 다양한 각도에서 로스팅 기계를 구경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각 층별로 판매하는 메뉴들이 조금씩 다르기에, 마음에 드는 메뉴가 있는 층에서 시카고에서만 마실 수 있는 커피를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해볼만하다. 나는 위스키 배럴에서 숙성한 어쩌구- 메뉴를 마셨고, 진하게 우려낸 커피의 향이 좋았다. 위스키 향이 나는지는 기억이 잘... 아무튼 여기서도 밀린 책 또 읽고 일기도 적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보니 하루에 카페를 두 번이나 갔네. 원래 여행가서 카페 잘 안가는 편인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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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벅스에서 나온 후, 할 일이 없어서 그냥 걸었다. 근처에 워터하우스같은 역사적인 건물도, 360 시카고같은 잘 알려진 전망대도 있었지만 딱히 어딘가를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만 숙소랑 너무 멀어지면 돌아가는 길이 귀찮아지니까 최대한 북쪽으로는 가지 않으면서 이곳 저곳을 보았다. 정처없이, 그러나 방향은 명확하게 설정하고 한참을 걷다보니 시카고의 다른 얼굴이 보였다. 마천루들로 즐비했던 루프, 넓은 호수와 푸른 공원, 낮은 건물들이 넓게 펼쳐진 웨스트루프. 그 어느 지역과도 다른, 19세기와 20세기, 21세기가 나란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곳. 고가 브랜드의 시그니처 매장이 보이다가도 작은 동네에나 있을법한 작고 귀여운 소방서가 나오고, 소박한 성공회 성당 한 블럭 너머 크고 웅장한 이슬람 사원이 보이는 곳. 상점가로 잘 알려진 지역에서도 조금 눈을 돌려보니 다양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돌고 돌다가 시카고 강을 가로지르는 두세블 다리에 왔다. 이 다리 북쪽에는 시카고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건축물, 트리뷴 타워(Tribune Tower)링글리 빌딩(The Wrigley Building)이 위치하고 있다. 길 건너편에 있는 트리뷴 타워는 전면 파사쥬만 슬쩍 보았고, 링글리 빌딩은 건물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멀리서 볼 때에는 화려한 장식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한바퀴 돌아보니 땅 모양에 맞춰 삐뚜름한 모양의 건물임을 알 수 있었다. 높은 층에 위치한 연결통로마저 도로와 평행하지 않게 이어져 있어, 이 삐뚤삐뚤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프라이드 먼쓰인 6월이어서 그런지 건물에 레인보우 기가 걸려있었는데, 이땐 미국여행 내내 곳곳에서 이 레인보우기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날을 시작으로 정말 한달 내내 여기저기서 레인보우를 볼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아 이것도 마케팅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라는 못된 의심마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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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글리 빌딩 앞쪽에서는 거리공연이 한창이었다. 멋진 비보잉 공연을 이어가다가, 마지막에는 즉석에서 관객 몇 명을 불러다가 일렬로 세우고는 멀리서 달려와 점프해서 관객들 위로 뛰어넘는 묘기를 선보였다. 짧게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마지막 퍼포먼스가 너무 궁금해서 꽤 오래 자리를 지켰는데, 안전장비 하나도 없이 맨 몸으로 보여주는 것인데도 깔끔하게 성공하더라. 보면서 마음을 엄청 졸였는데 퍼포먼스 하는 친구들은 되게 여유롭더라.

    공연을 보다가, 몸을 돌려 바로 옆에 있는 두세블 다리로 향했다. 시카고강이 아주 잘 보이고, 가장 최근의 시카고 주요 건축물들이 한 눈에 보이는 장소이다. 시카고 건축물 보트투어 중 하나인 완델라 투어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 장소에 서면 등 뒤로는 20세기 초 건물인 링글리 빌딩과 트리뷴 타워, 오른쪽에는 트럼프 타워가, 정면에는 아온 센터와 아쿠아 빌딩이 위치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마천루들이 즐비해서 하나하나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하지 않다. 한동안 이 장소에 서서 에메랄드 빛의 시카고 강과 멋진 건축물을 바라보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도 조금씩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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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를 건너 시카고 강 남쪽으로 오면 리버워크로 내려갈 수 있다. 강변을 따라 걷는건 꼭 해봐야지! 리버워크로 내려가는 길에 세워진 시카고 표지판이 전형적인 미국스타일 디자인이었고,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좁고 복잡했다. 한강처럼 폭이 넓지 않고, 강둑은 더더욱 폭이 좁고, 그 와중에 반절 이상은 강변에 세워진 레스토랑들의 외부영업장이거나 요트선착장 옆에 붙어있는 계단식 스탠드가 마련되어 있어서 보행에 적절치 않았다. 사람들을 헤치며 걷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시카고의 풍경은 어제 배를 타고 지나면서 본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배를 타고 지나가며 보는 모습은 배의 속도에 맞춰 내게 전달되지만, 내가 직접 걸으면서 보는 풍경은 내 속도에 맞춰 들어온다. 예쁘고 마음에 드는 곳은 조금 더 오래 머무르며 볼 수도 있고, 디테일이 궁금한 곳은 여기저기 샅샅이 훑어내려갈 수도 있다. 배의 높이가 아닌 강변의 높이에 맞춰 내려보면서 새로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작은 카누들이 정박한 선착장, 다양한 레스토랑과 이 곳에서 저녁을 보내는 사람들. 리버워크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초록초록한 잔디밭(인조잔디인지 천연인지 모르겠다)에 놓여진 알록달록한 의자에 잠시 몸을 기대었다. 시카고 강, 보트, 카누, 높은 건물들, 지나가는 사람들. 의자에 멍하게 앉아있는 동안 많은 것들이 망막 위를 스치듯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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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나, 슬슬 숙소로 향해야 할 시간. 미국에서의 밤, 특히 시카고에서의 밤은 아직 내겐 불안했기에 가급적이면 해가 지기 전에 들어가고 싶었다. 내가 앉아있는 장소는 루프의 서북편, 숙소는 루프의 동남편이라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굳이 대중교통을 타고 가는게 더 번거로울 것 같아서 천천히 걸어가보기로 했다. 마침 가는 길에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 예전 이름 시어스 타워, 현 이름 윌리스 타워(Willis Tower)가 있어서 지나가는 길에 들러보려고 열심히 걸어갔는데, 아직 해가 한창인데도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다. 아니 진짜 없어도 너무 없었다. 거의 삼십분 가량 걷는동안 마주친 사람이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 외곽의 어느 주거지라면 모를까, 도심지 한복판에서 이렇게 사람이 없다니. 돌이켜보면 미국 여행기간동안 가장 외롭고 무서웠던 순간이었다. 그래도 큰 사고 없이(?) 윌리스 타워까지 걸어왔는데, 바로 아래에서 보니 너무 높아서 올려다보는데 목이 아팠다. 길쭉한 박스형의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형태는 마치 중세시대 성을 연상케 했다. 지금은 왕좌에서 내려왔지만 한때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로 위용을 떨치던 위풍당당함이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전망대에 오르면 높은 곳에서 시카고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지만, 오늘은 빠르게 숙소에 안전하게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윌리스 타워를 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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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날은 시카고의 다양한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본 날이었다. 시카고에 위치한 관광자원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카고 사람들이 향유하는 일상과 조금 더 가까이 마주한 하루. 덕분에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가고자 했던 여행지들은 많이 밀려버렸다. 뭐 이런것 또한 여행의 묘미니까. 마지막으로 시카고에서 발견한 또 다른 Happy Pride, 레인보우 색상이 없어서 미처 보지 못하고 놓칠뻔했던 친구 사진을 공유한다. Love will always w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