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2022) 미국 - 시카고, 뉴욕 등

미국여행 Day 3. 시카고 (시카고 미술관, 밀레니엄 파크, 버디 가이즈 레전드)

eunryeong 2022. 11. 19. 10:43
Day 3 (2022. 6. 24)
시카고 미술관 - 밀레니엄 파크 - 그랜트 공원(시카고 야경) - 버디 가이즈 레전드

 

   3일째 되는 날 아침은 시카고에서 핫도그로 배를 채우기로 했다. 시카고의 대표 음식이라고 하면 피자가 먼저 떠오르지만, 시카고 핫도그도 나름 유명한 음식 중 하나. 다른 미국식 핫도그와는 다르다고 하는데, 피클이 길게 들어가고 머스타드가 들어간 약간 짠... 좀 더 미국스러운 맛...? 암튼 유명한 핫도그집들도 많았지만, 이날 가야하는 장소 근처에 야외 핫도그집이 있어서 거기를 가보기로 했다. 원래 날씨 좋은 날 야외에서 먹는 음식이 맛없기 쉽지 않기 때문에. 다행히 시카고에 있는 3일 내내 날씨가 아주 좋았고, 덕분에 여행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핫도그 가게까지 가는 짧은 거리에도 아주 유명한 시카고 건축물 두 개가 있는데, 무려 호스텔 바로 옆에 붙어있는 오디토리움(Auditorium Theatre)과 그랜트 공원 건너편에 있는 파인 아트 빌딩(Fine Arts Building)이 그것이다. 특히 파인 아트 빌딩은 그냥 지나가면서 보아도 '어? 이건물?' 스러운게, 기단부와 중앙, 그리고 상층부의 외벽 자재도, 창의 모양과 크기도 모두 다르다. 그렇지만 언뜻 보기에는 별다를 거 없어보이기도 한다. 양 옆에 있는 건물들 역시 층마다 다양한 창의 크기와 모양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복잡하지만 지저분하지 않고 다채롭게 건물을 구성하였기 때문이다. 시카고에 있는 20세기 초반까지의 건물들을 보면 불필요한 장식은 배제하면서도(물론 온갖 부조를 때려박은 링글리 빌딩같은 예외도 있다) 기단, 창 모양, 재질 등에서 다양한 변주를 가져가는 건물이 꽤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시카고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이라면 도심에 있는 건축물에 대한 책을 한 권 읽고 가시면 더욱 풍성한 여행을 하실 수 있을듯. 참고로 파인 아트 빌딩 근처에 66번 국도 끝 표지판(Route 66 End Sign)이 있다. 가볍게 들러서 인증샷 찍기 좋은 곳. 그러나 난 깜박하고 못갔다 ㅎㅎㅎ

  건물들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슬렁슬렁 걸어서 렐리시 시카고 핫도그(Relish Chicago Hot Dogs) 매대에 도착. 지금 보니 추운 날씨에는 휴업하시는듯? 암튼 도착한 시간이 오픈시간보다 조금 일러서, 자리에 앉아서 잠시 어슬렁거리다가 오픈시간 맞춰 주문했다. 메뉴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기본 핫도그...? 와 콜라...? 왜 음식 사진을 찍어놓지 않았을까ㅠ 핫도그에는 약간의 소금간이 되어있었는데, 짰다. 미국음식 생각보다 안짠 것들도 많았는데, 이 핫도그는 확실히 짰다. 그렇다고 못먹을 정도도 아니고, 미술관 들어가면 거의 폐장시간까지 못나올게 뻔하기 때문에 열심히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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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식사를 마친 후 바로 옆에 있는 시카고 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로 향했다. 오픈시간 근처였는데 입장줄이 꽤 길게 늘어서있어서 아 눈치게임 망했나...?하고 잠시 후회. 근데 줄이 긴 것에 비해 일찍 입장할 수 있었다. 예매 없이 현장에서 바로 표 구매해서 입장했는데, 세잔 특별전을 하고 있어서 함께 구매하고 들어갔다.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시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시카고미술관만큼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곳이 있을까 싶었다. 동양의 불상만 전시된 공간이 있는가 하면 안도 다다오의 미디어아트로 꾸며진 방도 있었고, 이집트의 미라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 그리고 잭슨 폴락과 리히텐슈타인같은 현대미술작가에 이르기까지. 뉴욕으로 치면 메트로폴리탄과 모마의 상설전시관을 한데 모아둔 곳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다. 물론 이렇게 넓은 곳을 하루만에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 것을. 그래도 이 미술관의 가장 대표 작품인 쇠라의 일요일 그림은 잘 보고 왔다. 엘 그레코의 성모승천은 너무 감격스러워서 보고 보고 또 봤다. 내가 이 작품을 실제로 보다니!!! 과장되고 왜곡되어 있지만 생동감이 느껴지는 엘 그레코의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성모승천은 이 모든 미덕을 다 갖추고 있다! 심지어 크기도 커! 그 외에도 많은 작품들을 보고 왔는데 이건 다음에 더 자세하게. 암튼 이거 보느라 거의 저녁시간 다될때까지 미술관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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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 탈출 후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곳이 필요해서 근처를 둘러보다가 파이브가이즈가 있어서 바로 직행. 딱히 갈 생각이 없던 곳이라 어떤 메뉴가 있는지, 어떻게 주문하는지 잘 모르고 갔는데 덕분에 주문할때 고생을 좀 했다 ㅎㅎ 여기 탄산음료 기계가 굉장히 신기했는데, 뭔가 앱을 다운받아서 내가 원하는 조합의 탄산음료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더라? 생각해보면 패스트푸드의 콜라가 탄산수에 시럽을 조금 섞어서 만드는 것이니 이론적으로는 시럽만 바꿔주면 다양한 맛의 음료가 나올 수 있는데, 그걸 고객이 직접 손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 큰 재미요소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그냥 사이다만 마시고 싶은 사람은 편하게 사이다를 뽑을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았을것 같은데... 이것도 오래 되어서 잘 기억이 안나네. 기억에서는 분명히 복잡하게 이것저것 해서 겨우 사이다 한 잔 뽑아마셨던거 같은데. 버거는 아마도 적당한 걸로 골라서 탄산이랑 맛있게 잘 먹었던 것 같다. 아 음식에 대해서는 정말 무책임하구나, 나는. 사진도 거의 없고 뭐.

    끼니를 해결한 후 밀레니엄 공원으로 이동. 랜드마크 찍는거에 크게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긴 하지만, 비투비가 시카고 왔을때 콩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이걸 놓치면 너무 아깝지 않을까 싶어서 한번 가봤다. 멀찍이 보이는 프리츠커 파빌리온의 지붕 사진을 하나 찍고, 바로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로 가서 사진을 몇장 찍었다. 직선의 높디 높은 빌딩들 사이에 둥글게 놓여진 콩을 보니 너무 귀여웠다! 석촌호수에 떠있는 러버덕 보는 느낌? 분명히 차갑고 딱딱한 소재인데, 동글동글한 곡선 모양으로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어놓아서 그런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 주변 장소들을 전부 끌어안고 포용하는 느낌이었다. 콩 위에 주변 빌딩들이 비치는 것도 의도된 것이라고 하는데, 시카고의 이미지를 한층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너무 유명한 랜드마크가 된 지라 사람이 너무 많아 저 콩만 보이도록 찍는게 불가능했다는 점은 아쉬웠다만, 그런게 또 관광지의 묘미이기도 하지!

    클라우드 게이트 바로 옆에는 크라운 분수대(Crown Fountain)이 있다. 분명히 두 개의 기둥에서 물줄기가 뿜어져나오긴 하지만, 이게 분수인가...? 싶을 정도의 파격적인 모양새. 거기다가 저 기둥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돌아가면서 나오는데, 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왜 물을 뿜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무슨 기념으로 만든 분수이고, 시카고 시민들의 얼굴을 자원받아서 분수에 넣었다고 하니 상세한게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하시길. 물이 있는 곳에 늘 그렇듯 이곳 주변에도 아이들이 바글바글했고, 대부분 가족들과 함께 온 사람들이었지만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도 간간이 보였다. 잠시 분수와 아이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정리하고, 마지막 일정을 해치우러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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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일정 전, 숙소 바로 옆에 있는 그랜트 공원, 버킹엄 분수에 다시 나왔다. 숙소에 있기는 답답하고 저녁시간 공연에 너무 일찍 들어가고 싶지도 않아서 근처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자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이 시간이 3일간의 여행 중 가장 좋았다. 물론 시카고를 여기저기 열심히 다닌 후이기에 이 곳에서 보는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했으리라. 시카고는 도심지인 루프 지역이 왼쪽으로는 시카고 강, 오른쪽으로는 미시간 호수에 둘러싸인 모양이라 배에서 보는 스카이라인이 멋지다. 또 미시간호와 루프 사이에 밀레니엄 공원과 그랜트 공원이 넓게 위치하고 있어서 이 공원에서 보는 광경 또한 놓칠 수 없다. 분수와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오는 벤치 자리에 앉아 한시간 가량 있었는데, 파랗던 하늘이 아래쪽부터 붉게 물들어가며 서서히 어두워지는 모습 또한 장관이었다. 하늘은 더욱 짙어지고, 빌딩들은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분수에도 붉은 조명이 들어와 파란 하늘, 노란 빌딩들과 어우러졌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사람들도 이곳 공원으로는 삼삼오오 모여서 나와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공연 시간이 임박하여 다시 도심지로 이동하는 길, 멀리 콘그레스 호텔 간판이 보였다. 이 곳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호텔이다. 1800년대 후반부터 시카고를 지킨 아주 오래된 건물로, 알 카포네와 H. 홈즈에 얽힌 이야기(라기보다는 설화에 가까울듯)가 있을 정도. 귀신이 나오는 방은 441호이고, 12층에도 출몰한다고 하니 용감한 분들은 도전해보시길. 나도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이 곳으로 예약했을텐데, 내가 찾아봤을 때에는 너무 낡은 건물과 시설만 보여서 그냥 패스했었다. 건물 위에 부착된 빨간색 네온사인이 상당히 모던하지만 이 네온사인이 붙은 곳이 귀신이 나오는 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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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카고 여행의 마지막 여정은 블루스 공연장인 버디 가이즈 레전드(Buddy Guy's Legends)였다. 시카고 비투비 투어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곳은 정말 비투비가 아니었으면 올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장소이기 때문.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저런 공연장을 찾아서 가는 편이지만 시카고에서는 일정도 짧고, 치안이 좋지 않아 밤에 다니지 않는게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저녁 일정을 웬만하면 잡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시카고 여행사진들 중, 공연장에 가서 찍은 사진이! 그것도 블루스 공연!!! 아 이건 꼭 가야겠다 싶어서 정보를 열심히 찾아봤는데, 클럽 형식의 공연장이었다. 날짜에 따라 연주자가 달라지고 관객들은 미리 입장권을 예매하거나 또는 워크인으로 바로 입장할 수 있는 시스템. 일정금액 이상을 주문하면 입장료 없이도 볼 수 있다는 것 같았지만 혼자 가는데 음식까지 시키는건 내키지 않아서 미리 입장권을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고백하자면, 시카고에 도착한 첫 날에도 공연을 예매했었는데 그날은 시차적응 실패로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아 패스. 이 날도 살짝 고민했지만 오늘도 못가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켜 움직였다.

    이날 공연하신 분은 조안나 코너(Joanna Conor)라는 분이었는데 시카고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블루스 연주자이자 싱어송라이터라고 한다. 이날 들었던 음악들은 정통 블루스보다는 조금 더 락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블루스 특유의 리듬감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리고 클럽 연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악기 솔로! 연주자분들의 실력도 굉장해서, 솔로가 나올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공연장에서는 간단한 음식과 주류를 판매하고 있다. 클럽 공연에서 맥주를 마시지 않는것은 범죄이므로(공연이 3배 재밌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주류 매상이 클럽을 먹여살린다) 간단하게 세 잔 정도 마시면서 관람했다. 

    이날 아주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하나 있다. 공연을 보던 중, 단정한 롱 원피스를 입으신 백발의 어르신께서 공연 중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넓은 공간으로 나와(스테이지쪽이 아닌, 입구쪽에 있는 공간) 신나게 춤을 추셨다. 다른 사람들이 여기서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본인의 흥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정말 멋있었고, 나도 꼭 저렇게 나이들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내 환갑잔치는 클럽에서! 헤드뱅잉을 하며! 신나게 놀겠다!는 다짐.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스테이지 앞쪽 구역은 모두들 일어나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신나게 즐겼다. 역시 의탠딩이 진리...! 이 곳에서의 자유롭고 흥겨운 분위기를 보니 이 공연장은 지역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아주 오랫동안 사랑받아왔고, 앞으로도 사랑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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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끝난 후 숙소로 돌아올 때 시각은 거의 밤 11시 경이었다.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미국, 특히 시카고의 치안에 대해 이야기들이 많은데 다행히 이 공연장에서 숙소까지의 2블럭 가량 되는 거리를 지나는 동안 큰 탈은 없었다. 물론 아주 운이 좋았던 것일수도 있고, 혹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이어서일수도 있다. 공연장 바로 맞은편에 호텔이 하나 있던데, 이 곳에 묵는다면 좀 더 안전하겠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늦은 시간 숙소에 돌아와 바로 침대로 직행. 다음날 오전 6시 30분 기차를 예매한데다, 한국과 달리 이 기차를 놓치면 다음 기차는 오후 12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하루 일정을 망치게 되는지라 절대 늦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시카고에서의 마지막 날도 끝. 내일부터는 미시간으로,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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