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2022) 미국 - 시카고, 뉴욕 등

미국여행 Day 14. 뉴욕 (갤러거 스테이크 하우스, MOMA)

eunryeong 2022. 12. 28. 09:22
Day 14 (2022. 7. 5.)
갤러거 스테이크 하우스 - MOMA

 

    뉴욕에서의 본격적인 첫번째 일정! 원래 첫날은 버스투어를 하려고 했는데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고 비가 와도 편하게 볼 수 있는 미술관을 가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이날 점심은 뉴욕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스테이크 집을 예약해두었는데, 숙소에서 20분 남짓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 조금 여유있게 나와 거리를 둘러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스테이크 집으로 가는 길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여성의 토르소에 하반신을 연결한 거대한 구리상이었다. 짐 다인의 '길 바라보기(Looking Toward the Avenue)'라는 이 작품은 크기도 크기지만, 반듯반듯한 건물들 사이에 거칠게 굽은 형체의 이질감으로 인해 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밀로의 비너스와 같은 모양이라고 하지만 푸른 빛으로 산화된 표면은 자유의 여신상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조금 더 길을 지나다보니, 유리벽 너머로 철사를 구부려 형체를 만들어 둔 음식점도 눈에 들어온다. 단지 초밥을 파는 것 뿐인데 이런 예술적인 오브제를 유리벽 전면에 설치하다니, 역시 뉴욕인가? 하는 성급한 인상을 가져보며 걸음을 재촉하다보니 HOPE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명동에도 있는 LOVE 조형물이랑 거의 차이점이 없어서 딱히 감흥은 없었다. 아 여기에 이런게 있구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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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이크 집 가는 길에 록펠러 센터(Rockefeller Center)가 있어서 잠시 들렀다. 어차피 전망대 보러 올 예정이긴 하지만 이렇게 아래에서 보는건 또 다르니까. 겨울이었다면 스케이트장이 있었을텐데, 여름이라 파라솔과 테이블로 야외 카페테리아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차피 밥 먹으러 가는 길이라 패스. 맨해튼은 정말 블럭을 넘어가도 넘어가도 높은 빌딩들이 보였다. 테헤란로는 길이라도 넓은데, 여긴 길도 좁아터진 마당에 건물이 미친듯이 높으니 약간 현기증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설상가상으로 거리마다 까만 쓰레기봉투가 무더기로 쌓여있는게 악취가 여간 심한게 아니었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첫 인상은 여태 본 어느 미국의 도시들 중, 아니 내가 가본 모든 곳들 중 가장 좋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사진으로는 멋지게 나오니 왠지 배신감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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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지를 향해 가던 중 또 다른 뉴욕의 관광지, 성 패트릭 대성당(St. Patrick's Cathedral)을 마주했다. 아니 여기를 먼저 보았던가? 아무튼 이 곳 또한 지나가면서 슬쩍 본 터라 딱히 기억에 남을만한 에피소드는 없었다. 좁은 길 아래에서 큰 건물을 바라보아야 했기에 목이 굉장히 아팠다, 성당에서 우르르 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는 것 정도? 영국에 갔을때도 성당에 굳-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미국에서도 굳-이 이 곳을 들러야 할 이유는 없었기에 패스. 그래도 맨하탄 도심지에 있기에 지나가다 보이면 아 이게 그 성당이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굳이 찾아갈 필요도 없음. 차라리 짐 다인의 조각상을 찾아가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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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걷고 걸어서 도착한 뉴욕에서의 제대로 된 첫 끼니는 갤러거 스테이크 하우스(Gallaghers Steakhouse). 뉴욕 여행 준비하시는 분들은 여행정보 찾으시다보면 뉴욕의 3대 스테이크집에 대한 정보를 많이 보실 듯 한데, 굳이 3곳을 전부 들를 생각은 없었기에 가장 일정을 잡기 용이하고 가격도 괜찮은데다 예약도 쉬운 갤러거 스테이크 하우스로 예약. 참고로 미국에서 예약이 필요한 곳은 모두 구글지도를 통해 예약 링크를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인기있는 곳들 중에서 예약이 필수인 곳들도 많으니 미리 찾아보시길 권한다. (정작 기다리는거 못해서 맛집 같은거 거의 안가는 1인...)

    이 곳은 런치코스로 주문했을 때 가성비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자세한 정보는 다른 분들이 올려주셨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주문했는지 조차 기억이 전혀 나질 않는다(...) 개인적인 후기만 몇 가지 적자면, 입구에서 예약자명을 이야기하니 담당 서버분이 오셔서 좌석으로 안내해주셨다. 1인으로 예약했는데 4명이 앉는 테이블을 주셔서 좋았다. 좌석도 창가쪽 바로 옆, 해가 잘 드는 자리이고 너무 통로쪽도 아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주문을 받고 음식이 순서대로 나왔는데, 중간중간 음식이 괜찮은지 물어주셨다. 처음에 나온 식전빵은 1명인데도 4조각이나 나왔고 당연히 다 먹지 못했다. 반 정도는 먹었나...? 스프는 조금 차가웠다. 기억에 감자랑 파가 들어간 어쩌구였는데 파 맛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고기는 부드러웠고 고기 맛이었다. 소스도 맛있었다. 그리고 고기맛이었다. 마지막에 나온 치즈케이크는 치즈케이크 맛이었다. 뉴욕 치즈케이크 바로 그거. 나는 아무래도 음식점 리뷰를 하면 안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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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약을 했던 레스토랑에서의 점심이 끝나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에는 조금 여유롭게 거리를 둘러보았다. 맨하탄 한가운데 있는 라디오 시티(Radio City Music Hall)라는 공연장은 아마도? 처음으로 지어진 쇼적인 공연을 위한 공연장(이라고 여행 5달 후에 들은 강연을 통해 알게 되었다). 뉴욕에 있는 기간동안 가볼만한 공연이 있는지 열심히 찾아봤었는데 아쉽게도 이 공연장에서 올라오는 공연들 중 딱히 가보고 싶은 공연이 없어서 들르지 못했다. 당시에는 크게 아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지나고 나니 많이 아쉬웠던 부분.

    라디오시티 맞은편에는 방송차량이 잔뜩 모여있었는데 아마도 어제의 독립기념일 행사 촬영을 위한 방송차량이 아닌가 싶었다. 길도 좁고 복잡시러운(뉘앙스를 강조하려고 일부러 사투리를 씀) 도로의 한 라인을 방송차량이 점거(?)하고 있는게 약간은 신기했음. 스타벅스 위에 있는 점성술 간판을 보고, 게다가 무려 수정 구슬! 네온싸인을 보고, 가게에 들어가면 내 고민을 바로 알아챌지, 어떤 결과를 이야기해줄지 너무 궁금했지만 영어가 부족한 관계로 잘못 들어갔다가 털릴까봐 패스. 지나가다 보인 음반가게에서 보위 아저씨의 LP판이 전면에 떡하니 전시된 것을 보고 반가워서 사진은 찍었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때만 해도 내가 LP판을 사 모으게 될 줄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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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이것저것 적어서 오래 걸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십분 남짓? 걸어 도착한 뉴욕 현대 미술관(MOMA, The Museum of Modern Art). 편의상 도시 이름을 붙여서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다른 수식어 없이 '현대 미술관'이다. 아니, '근대 미술관'이 더 적절할지도? 동시대의 미술은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로, 나름 최근이지만 이미 돌아가신, 혹은 원로작가가 된 분들의 작품들은 모던 아트(Modern Art)로 부르고 있으니 시대적인 구분으로는 근대가 더 정확하긴 하다. 그렇지만 최근까지 활동하는 작가들의 기획전도 종종 열리는 듯 해서 현대 미술관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고. 아무튼 MOMA는 자기들이 '현대 미술관'의 대표라는 양 자신있게 이름을 가져다 붙였는데 미국인들의 작명 특성인가? 싶기도 했다. 메이저리그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꽁기한 그 느낌, 그 미묘한 기분나쁨을 MOMA라는 미술관 이름에서도 느낀다면 내가 너무 사소한 데 집착하는걸까.

    미술관 이름에 대한 설왕설래는 차치하고, 미술관의 위치를 보자면 맨해튼의 노른자 도심 한가운데 있다. 타임스퀘어, 록펠러센터, 센트럴파크 등 주요 관광지와도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다 워낙 유명한 미술관이다보니 뉴욕에 여행가는 사람들은 무조건 들르는 곳 중 하나. 그만큼 사람들도 많았는데, 또 유명세에 비해 아주 많지는 않고 일부 전시관은 거의 혼자서 여유롭게 볼 수도 있었다. 이 미술관은 곳곳의 전시장 벽이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맨해튼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데, 뉴욕의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전시작품을 감상하는 경험 또한 흔치 않은 기회라 의미있었다. 참고로 내가 방문한 날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을 전시 준비중이었어서, 다른 날 한번 더 방문했다. 허허.

    모마에서의 좋은 경험 한가지 더. 모마 티켓을 발급받기 위해 티켓부스로 들어가기 전, 수많은 키오스크들이 관람객을 반긴다. 대충 보아도 열개는 훨씬 넘어보이는 이 키오스크를 통해서 한글로 편하게 주문을 마칠 수 있다. 티켓부스에서 표를 구입하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편하고 빠르니 일단 입장하면 키오스크부터 찾자. 한국에 있는 수많은 키오스크들과 달리 사용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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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MA에는 유명한 작품들이 워낙 많다. 대체로 6층? 5층? 암튼 꼭대기층부터 보면서 내려오면 된다. 다만 이 유명한 작품들은 대부분 근대의,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동시대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낮은 층까지 꼭 둘러봐야 한다. 다행히 시대별, 주제별, 작가별로 전시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미술관 관람순서대로만 따라가도 근현대 미술의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다음은 아래 슬라이드의 작품에 대해 간단하게 적어보기로 한다.

    1 - MOMA의 전시들 중 현대미술관의 관념적 인상에 가장 부합했던 전시. Carolina Caycedo and David de Rozas Project라고 한다. 솔직히 이해는 못했다.

    2 - 리처드 세라의 작품. 미국 여행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들 중 가장 사랑하게 된 작가. 많은 미술작품들이 보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 사이에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는데, 세라의 작품이 특히나 그렇다. 내 키만한 거대한 철제 덩어리 바로 옆을, 사이를 지나다니는 것 만으로도 위축되는 기분이 든다.

    3 - 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락밴드 EVE의 로고와 비슷해서 반가운 마음에 찍었다. 덕후들은 이런거 놓치면 안된다.

    4 - Now's the Time. 자 이제 때가 되었다.

    5 - 이우환 작가의 작품. 런던에서도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만났었는데 뉴욕에서도 보게 되다니 반갑네.

    6 - 워홀의 캠벨수프 깡통. 진짜 깡통마다 맛이 다 다르다. 실제로 판매되지 않았던 맛도 있을지 궁금하네.

    7 - 백남준 작가의 전시 포스터. 뉴욕 현대미술관 중 작은 전시실 하나를 백남준을 위해 마련해두고 있다. 당연하게 국뽕이 저절로 채워진다. 

    8 - 재스퍼 존스의 깃발은 물론 훌륭한 작품이지만 조금은 미국 국뽕이 들어간 평가가 아닐까 하고 항상 생각한다.

    9 - 이브 클라인의 파랑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아주 선명하고 밝은 파랑. 내 몸에 파란 피가 흐르는 골수 파랑둥이로써 이 작품은 그냥 좋다.

    10 - 누가 봐도 마크 로스코 작품, 누가 봐도 우크라이나 국기가 연상되는 작품. 설명을 보니 마크 로스코가 현재 라트비아 지방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하필 이 작품을 걸어놓은 이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때문이겠지.

    11 - 에바 헤세의 똑똑한 작품. 다른 곳에서 본 작품들도 그렇지만, 소재의 특성을 이용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세심하게 표현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유리의 견고함과 연약함, 투명하지만 희뿌연, 동그란 기둥들이 어딘가 굽어져 있는. 어느 쪽도 아닌 세계.

    12 - MOMA의 대표작, 마티스의 춤. 실제로 보면 아주 크다. 작품 바로 앞에 벤치가 놓여 있는데, 한참을 벤치에 앉아 가만히 작품을 들여다 보게 된다.

    13 - 또 다른 MOMA의 대표작,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큰 감흥은 없었다

    14 - 피카소의 작품. 개인적으로 피카소의 작품들 중 청색, 녹색을 쓴 작품들을 좋아한다. 청색시대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이 색감만큼은 아주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15 - 모네의 수련을 전시하는 데 전시실 하나를 할애했다. 역시나 멍하게 바라보기 좋다. 모네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수련 그림으로 가득찬 방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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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대기층부터 1층까지 모든 전시실을 야무지게 돌아보고 나니 어느새 폐장시간. MOMA는 폐장시간 이후에도 MOMA 기념품 샵을 운영하기에, 지하에 있는 샵으로 내려가 상품들을 하나 둘 살펴보았다. 보통의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엽서, 마그넷, 배지, 그 외 작품들을 이용한 굳즈들도 많았고, 예술서적들도 한켠에 서가 가득 꽂혀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모마 디자인 제품. 모마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암튼 다양해도 너무 다양한 기념품들을 한참 둘러본 후, 엽서 몇 장만 사왔다. 실용성 없는 굿즈들을 모으는 것에 좀 질리기도 했고, 그나마 살까말까 고민했던 미술서적들은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여행 초반에 구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덕분에 가볍게 쇼핑을 마치고 거의 6시간만에 MOMA로부터 해방.

    미술관을 나오니 어느새 하늘은 잔뜩 흐려지고, 빗방울도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빗줄기가 거세지기 전에 서둘러 마트에 들러 간식 몇 가지와 저녁식사를 사고(뭘 먹었는지는 모르겠음) 숙소로 돌아가 오늘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나름 알차게 보낸 첫날 일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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