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공연관람 기록

[230112] 금호아트홀 - 공성연 Pucussion

eunryeong 2023. 1. 13. 16:00

- 공연을 많이 보다보면 대략적인 감이라는게 생긴다. 어떤 공연을 보았을 때, 대략적인 무대구성과 연출, 음악 혹은 연기 스타일, 그리고 내가 얼마나 그 공연을 좋아하게 될 지 등등. 이러한 감이 100프로 맞지는 않지만, 또 100프로 틀리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런데 이 공연은 다소 오만한 태도로 공연을 감흥없이 보러 다니던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렇게 온전히 신선하고 새롭다는 감상을 느낀 게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

 

- 올해 금호아트홀 라인업을 훑어보고 예매할 때 기준을 하나 세웠다. 건반악기는 최대한 지양하고 그동안 자주 접하지 못한 악기들은 좀 더 챙겨볼 것. 이번 공연도 퍼커션 독주회를 가볼 기회가 많지 않기에 경험삼아 예매한 것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이 공연은 아마 올해 금호아트홀에서 보는 공연들 중 세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을까? 어쩌면 첫번째가 될 수도 있고.

 

- 공연장에 들어왔을 때, 무대 위에 여러개의 악기가 놓여있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중앙에 마림바, 뒷편에 타악기 세트, 오른쪽 앞에는 북과 징, 뒷편에 비브라폰까지. 어떤 악기로 가장 처음 연주할까 두근두근하며 기다리던 중, 조용히 왼편 문을 통해 누군가가 조용히 입장하여 왼편에 있던 노트북이 놓여진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았다. 어둠속에서 가만히 입장해서 페이지터너이거나 비슷한 느낌의 서포터이려나? 생각하고 눈길을 거두려던 찰나, 그 분이 책상을 조금씩 두드리기 시작했다. ASMR 영상에서 보았던 태핑인가? 싶었는데 점점 손가락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손바닥을 책상에 쾅 치기도 하고, 팔을 이용해 책상 전체를 쓸어보기도 하고(아마도 도박판에서 칩을 쓸어담는 그런 모양인듯?). 뭐지 이 공연?하고 적응이 아직 되지 않았을 무렵, 어디선가 모기소리가 위잉하고 들리더니 연주자가 갑자기 손을 휙 뻗어 허공에서 모기를 잡는 제스처를 취했다. 때로는 왼편으로 팔을 쿵 하고 두드리니 보이지 않는 북이 울리는 듯한 큰 소리가 나기도 했다. 본인의 손을 이용한 날것의 사운드와 제스처, MTR의 완벽한 조화. 

    이것이 첫 번째 곡이었던 시간과 돈, 파트 1 이었다.

 

- 하나의 곡이 끝났다. 으레 연주자를 비춰주며 박수를 유도하던 조명은 켜지지 않았고, 청중들도 침묵을 지켰다. 연주자는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무대 좌측의 책상에서 일어나 우측 뒷편에 놓여진 비브라폰으로. 잠시 후 조명이 켜지고, 연주자는 천천히 비브라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아주 리드미컬하게, 때로는 아주 서정적으로 채를 잡고 비브라폰을 두들겼고, 청명한 소리가 공연장에 널리 퍼졌다. 중간중간 어깨춤을 흥겹게 추며 이어지던 연주가 마무리될 때 즈음, 조용히 다시 조명이 어두워졌다. 박수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연주자는 다음 악기로 천천히 이동했다.

 

- 세 번째 곡의 제목은 . 북을 친다고 할 때, 북의 어디를 칠 것인가? (가죽면? 나무통? 나무통의 중간? 가장자리? 등등) 북을 무엇으로 칠 것인가? (손? 주먹? 북채?) 로 크게 나눌 수 있을것 같은데, 간단히 이야기하면 그냥 모든 방법을 이용해서 다 친다. 물론 막 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서 스토리가 있다. 손가락만으로 나무통과 가죽면의 바깥쪽을 약하게 두들기다가, 조금씩 세게 힘을 주다가, 가죽면의 중심을 퉁퉁 치다가, 손이 아닌 브러시를 이용하다가(브러시로 소리북을 치는 장면에서 속으로 어마어마한 쾌감을 느꼈다!!! 이런 크로스오버 좋아 ㅋㅋㅋㅋ), 북채를 들고 신명나게 두들기는. 그러면서 중간 중간 청산별곡의 구절들을 연주자가 반복하여 소리치는데, 연주자의 목소리도 악기소리라는 의미였을까? 연주자의 목소리와 북채가 만들어내는 정신없는 리듬 속에서, 연주자가 갑자기 커다란 징 채를 손에 들어올리길래 속으로 드디어!!! 아 징채로 북을 치는건가!!! 했는데... 징 채로는 징을 쳤다. 생각해보면 바로 뒤에 징이 있는데 당연하지. 당연한거긴 한데... 왜 이상하게 아쉽지...

    전반적으로 흡입력 있고 신명나는, 그리고 여러모로 재미있었던 무대.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타악기의 음량과 연주자의 목소리 성량이 조금 더 밸런스가 맞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 타악기가 워낙 소리가 큰데 인간의 목소리를 그대로 얹으니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빈약해보였다. 또한 무대 앞쪽에 앉아서 진행되다보니 뒷편에 앉은 사람들은 연주하는 모습을 보기가 좀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운이 좋게도 나는 이 공연을 1열에서 본 지라 모든 악기들의 연주장면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감상할 수 있었지만. 

 

- 네번째, 다섯번째 곡은 마림바 연주. 놀랍게도 다른 연주들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해 정작 마림바 연주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네 번째 곡은 MTR 사운드에 맞춰 마림바를 신명나게 두들기던 것은 기억나는데... 드럼 비트 같기도 하고 건반악기에 튠을 잔뜩 먹인 소리 같기도 한? 전체적으로 곡을 듣고 난 감상평은, 아 일렉트로닉 사운드같다...는 느낌. 슈퍼밴드2에서 녹두와 윤현상의 하모니를 연상케 하는 그런 조합. 아 그리고 한 손에 채를 두 개씩 들고 치는데, 중간에 채가 바뀌기도 하더라. 고무가 달린 스틱에서 천이 달린 스틱으로? 아 반대였나? 암튼 굉장히 신기했다.

 

- 페르 뇌고르의 역경 중 온화한, 날카로운 은 악기 구성이 아주 특이했다. 인터미션 시간에 오른쪽 앞에 팀파니가 세팅되길래 아 그렇구나 하고 말았는데, 막상 연주를 보니 팀파니가 아니라 그 위에 놓여있던 악기들로 연주가 이어졌다. 칼림바와 작은 싱잉볼?같이 생긴 놋쇠그릇이 팀파니 위에 있었고, 의자 아래쪽에는 방석같은 납작한 천주머니 안에 쇳조각들이 들어있는듯한? 것이 있어서 연주 중간에 발로 열심히 천주머니를 밟아 짤그락 소리를 냈다. 거기다가 팀파니 페달도 끊임없이 밟던데... 어떤 역할을 한 걸까? 공연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음.

    참고로 칼림바는 공연하는 동안 앞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아서 계속 궁금해! 보고싶어! 무슨 악기인거야! 생각했는데 곡의 마무리 즈음에서 칼림바를 들고 천천히 일어나 왼편에 있는 책상으로 이동하면서 칼림바를 연주했다. 아마 이 장면이 없었다면 무슨 악기였는지 여전히 감도 못 잡고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굉장히 뻘 소리지만, 칼림바를 한번 배워보고 싶어졌다. 

 

- 마지막 곡은 여러개의 타악기 세트로 화려하게 마무리. 하나의 연주마디?가 시작되기 전, 항상 한번씩 울리는 쇳소리의 악기가 궁금했는데 작품설명을 읽어보니 아마도 탈란톤...이 아닐까? 싶다. 근데 아무리 검색을 해도 성경의 달란트만 검색이 되고 악기로는 검색이 안되네. 이게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 북을 신나게 두들겨 치는 마지막 곡이 끝난 후, 드디어 관객들이 박수를 칠 수 있도록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진짜 오랫동안 참고 참았던 박수갈채를 열심히 보내주었고 이에 화답하는 짧은 마림바 앵콜까지. 

 

- 흔히 연극, 뮤지컬, 클래식, 발레, 무용 등 특정 장르에 대해 스테레오 타입의 공연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물론 무어라 이름붙이기 애매한 경계의 공연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긴 하지만, 대체로 홍보할 때부터 그 애매한 성격을 공연명을 통해 미리 밝힌다. 댄스 시어터 컨택트, 댄스 뮤지컬 백조의 호수, 필름오페라 미녀와 야수. 그러나 이 공연은 공연명에 연주자와 악기에 대한 정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이에 스테레오 타입의 클래식 공연을 생각하고 보러 왔던 내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었다. (의도한 것인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일부러 위의 후기를 작성할 때에는 공연에 대해 음악적인 요소 위주로 적었는데, 실제로는 전면에 프로젝터로 영상이 재생되는 장면들이 많았다. 첫번째 곡은 아예 영상과 함께 진행되었고, 다른 곡들의 연주와 연주 사이에도 짧은 영상이 계속 삽입되었다. 이런 요소들까지 온전히 즐기고 싶었지만 내 내공이 그정도는 되지 못해서 아쉬웠고, 그럼에도 이런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2023년 첫 시작이 아주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 이에 아래에는 각 프로그램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같이 옮겨둔다.(출처-금호아트홀 프로그램북) 웬만해서는 이런 귀찮은 일을 하지 않지만, 이 곡에 대한 정보들은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기에. 근데 이런 난해한 곡들도 한국 초연이 아닌 곡이 많다는 게 아주 신기했음. 대체 어디서 이런 곡들이 연주되었던 것이죠...?

 

 

[ Program ]

 

- 피에르 요들로프스키 PIERRE JODLOWSKI - Time and Money, Part 1

    이 작품은 시간 및 돈과 관련한 사회와 우리들의 행동양식에 의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전작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 이 곡은 나무 입방체라는 기초적인 물체를 사용한 진행이 모션 캡처나 실시간 비디오 등의 기술과 대조를 이루며 시작하고, 곧이어 라디오와 영화의 음향 속에서 음악이 원을 그리는 리듬 패턴과 함께 등장한다.

 

- 벤 와룬트 BEN WAHLUND - Hard-Boiled Capitalism and the Day Mr. Friedman Noticed Google is a Verb

    이 곡은 우리나라가 현재 처한 불황을 시의적절하게 조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의 금융사고들에서 착상을 얻은 것이다. 나는 미국인들이 방종의 절정 상태에서 느낀 광기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낡은 사고방식의 청산을 반영하고자 했다. 악기로 비브라폰을 선택한 것은 요청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련의 금속판이라는 단순한 매체가 지나치게 저평가되었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삶이라는 근본적인 개념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 이정혜 JUNGHAE LEE - 북 (편곡 최소리) Buk (arranged by Sori Choi)

    고려속요 '청산별곡'의 운율을 분석하여 하나의 리듬 패턴으로 변형한 뒤 곡의 근간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한국어의 운율이 한 작품 안에서 소리로써 형상화되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로 쓴 타악기 독주곡이다. 이 작품에서는 작품의 중간부터 타악기 연주자가 악기 연주와 더불어 시가의 원문을 읊는데, 이는 음악과 시가가 동일한 감정선을 유지하는 동시에 음향적으로도 리듬을 강조하고 변화의 양상을 조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 에밀 쿠윰추얀 EMIL KUYUMCUYAN - Azure for Marimba and Tape *Korean Premiere

    제 7회 슈투트가르트 세계 마림바 콩쿠르 측에서 위촉받아 쓴 곡으로 ... 이번 공연은 이 작품의 한국 초연 무대이다.

 

- 피터 클라초프 PETER KLATZOW - Dances of Earth and Fire

    이 작품은 땅의 견고함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인력, 언제나 위로 타올라 허공으로 사라지는 불의 덧없는 명멸을 그리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 연주자는 이 곡에서 동작을 통해 이러한 변경을 창조하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땅'은 불변성을 상징하며, 이는 측정할 수 없는 형태의 론도로 구현된다. 이 초시간성이 1악장의 주제가 되며, 여기서는 침묵이 음향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페르 뇌고르 PER NORGARD - The Gentle, the Penetrating from | Ching (Hexagram No.57)

    이 작품은 중국 고전인 <역경>에서 소재를 딴 것이다. 주역에 등장하는 괘는 총 64개이며, 이 가운데 57번째에 해당하는 손괘는 바람을 상징한다. 바람은 부드럽지만 날카롭게 꿰뚫는 힘도 지니며, 뇌고르는 이 속성을 음악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 미나스 보르부다키스 MINAS BORBOUDAKIS - Evlogitária for Solo Percussion

    이 곡은 그리스 정교회 수도승들이 함께 기도하거나 만가를 부를 때 쓰는 막대기인 탈란톤의 리듬에 기초하지만, 곧 다양하게 분화해 다중 리듬을 형성하며, 이 과정은 대단히 강렬한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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