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이것저것

2023 WBC 호주전과 일본전 단상

eunryeong 2023. 3. 12. 09:44

    고백하자면, 이번 WBC 경기를 영상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다. 호주전과 일본전 시간에 일정이 있는 관계로 그나마 가능한 시간에는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경기 진행상황을 파악한 정도. 호주전은 후반부 경기부분은 아예 내용을 보지 못했고, 일본전은 공연 중이었음에도 계속 커뮤니티를 켜서 올라오는 글만 보고 있었다. (혹시나해서 이야기하지만 관크는 아님. 이건 공연글에 따로 적겠음) 두 경기 모두 너무 힘들었는데, 이 기분을 어딘가 풀어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버틸 것 같아서 일개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드는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호주전 경기는 이길 수 있었던 많은 기회를 한 끝 차이로 놓친게 내내 찝찝했다면, 일본전은 그냥... 할 말이 없다. 아니 어떻게 이닝이 끝나지 않는데 투수는 계속 교체되고... 계속 사사구에 사사구에 만루... 호주전 패배는 진게 아쉬웠던 정도였는데, 일본전에서는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건가 싶은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아마 많은 야구팬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투수 엔트리에 있는 상당수의 인원이 마운드에 올리기조차 버거운 상태라니, 한국 야구를 대표해서 나간 투수들이 스트라이크 존에 공도 제대로 넣지 못하다니.

 

    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째서 이 지경일까. 원인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끝도 없겠지만, WBC라는 대회만 놓고 보았을 때에는 순리대로 가지 않은 것. 이게 가장 큰 요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전 첫 경기에서 다음날 선발로 내정한 선수를 무리하게 끌고 오지 않았어야 했다. 직전 경기에서 불펜 등판을 위해 경기 중후반부까지 불펜에서 대기하던 선수를 다음날 선발로 낙점하지 않았어야 했다. 경기 시점의 컨디션대로 라인업을 조정했어야 했다. 예비 엔트리에 들지 못한 선수를, 특히 단기간에 컨디션 올리고 밸런스 잡기 쉽지 않은 투수를 추가 엔트리로 뽑지 않았어야 했다. 등등의 많은 아쉬움들.

    그리고 부담감. 이것 역시 첫 경기를 잡지 못한 것으로 인한 스노우볼이 구르고 굴러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은 2루타 이후 세레머니를 하다가 아웃된 장면이 아닐까. 하필 이전 국제경기에서 부당한 비난을 너무 많이 받았던 선수에게 말도 안되는 황당한 본헤드 장면이 나오게 된 것을 보며 참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다. 그 직후 2루타가 나와서 저 아웃이 점수로 연결될 수 있었던 상황임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고.

    이후로는 전적으로 아무 근거없는 내 궁예일 뿐이지만, 아마 저 상황 이후 선수들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부담감이 있었을거다. 첫 번째는 이 경기를 반드시 이겨서 저 상황이 패전의 원인으로 낙인찍히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두 번째는 절대 실수를 하면 안되겠다는 마음.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장면이었던, 홈베이스가 비어있는 상태에서 3루주자가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3루주자가 움직이지 않았던 그 상황도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일본전에서 스트라이크 존 근처에도 가지 못한 공들은 '볼'이라는 작은 실패를 할 지언정 '홈런'이라는 큰 실패만은 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에서 나온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경기 내적인 요인들을 먼저 들었지만, 사실 이 모든 상황의 시작은 경기 준비단계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본다. 현역 감독을 사령관으로 둔 이상, 캠프지는 미국으로 선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건 이해하지만 왜 굳이 한국까지 다시 들어와야만 했을까? 애리조나에서 비행기 문제로 인해 장시간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선수들도 있었는데, 이 시점에서 바로 일본으로 이동하는 코스를 짜는 것은 어려웠던걸까? 왜 WBC경기 직전 연습경기에서 연투, 멀티이닝을 소화시킨걸까? 예기치 못한 폭설과 사고, 다 알겠는데 그러면 그 상황에서 가장 좋은 대안을 찾아서 대표팀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했던게 아닐까? 준비 단계에서도 '해야 하니까' 하는 수준의 준비로만 보여질 뿐, 좋은 성적과 멋진 경기를 위해 최선을 다한 준비과정이라고는 솔직히 보기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스포츠 경기는,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넘어 경기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그만큼 100%가 아닌 120%, 150%를 철저히 준비하고 변수에 맞서가며 대응했어야 하는게 맞지. 이번 일본전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엄밀히 이야기해서, 팬들이 허용 가능한 수준을 훨씬 넘어선 졸전이다. 가슴아픈건, 차마 비난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의 경기였다는 것. 무대에 선 선수들도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싶지 않았겠지. 투수들을 다 끌어다써도 2.2이닝을 제대로 막지 못해, 다음날 선발을 끌어다 써서 겨우 경기를 콜드패 직전에서 건져내었는데.

    그래도 한국 야구에서 나름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여 팀을 꾸렸을 것이고, 한국에서는 잘 통하는 공이었기에 자신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공이 손에 맞지 않아 평소보다 구위도 약해졌는데, 일본 타자들은 본인보다도 더 좋은 공을 상대로도 안타 홈런을 잘만 만들어내고, 주자는 깔려있고, 까딱 잘못하다가는 홈런 맞고 역적이 될것 같고. 거기다가 존은 좁고 하니 까딱하다간 한복판에 공을 던져주게 될 것 같고. 이 많은 상황들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은 우리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안타깝지만 현실이지. 실력이 부족하니까 자신감도 생기기 어렵고 좋은 결과를 못낼것 같으니 두려움이 더 커질수 밖에 없고.

 

    그러니 결론은, 한국 야구가 더 발전해야만 한다는 것이겠지. 아마 이 부분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알만한 부분이기에 일개 팬으로서는 여기까지만 적으려고 한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응원 뿐일테니, 당장의 실력보다는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보인다면 계속 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해야지. (대신 ㅇㅇㅈ같은 염치없는 친구들은 제발 넣어두길 바란다. 진심으로 피해자한테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도 고려해볼까 말까인데... 사람 쉽게 안변합니다. 도박판 벌인 삼성친구들을 보세요.)

 

    덧. 근데 삼성라이온즈는 제발 성장가능성이 1도 보이지 않는 그 철밥통 프런트 좀 바꿔보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