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컨텐츠 갈무리

2023년 3월의 문장 스크랩

eunryeong 2023. 4. 10. 21:29

    늦기전에 3월의 문장 스크랩을 서둘러 시작한다. 언제 코멘트를 다 적고 포스팅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4월 안에는 마무리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시금 굳힌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의 핵심은 무겁지 않은 꾸준함이다.
- 북저널리즘 톡스, 16만 명이 사랑하는 사이드 프로젝트 Ode Studio Seoul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무언가를 시도해보려다 결국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대부분은 뭔가 완벽하게 잘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하는것에 대해 무겁고 무겁게 느껴져 결국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 '무겁지 않은 꾸준함'이라는 표현이 바로 와닿았던 것은 이런 내 경험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감각은 오로지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겁니다. 실적으로 증명해야 하지요.
- 구스노키 켄 (히토쓰바시대 경영대학원 교수)

 

    모든 일은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긴 하지만, '감각'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여진 아이템은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는 이야기가 될 터. 생각하면 할수록 무서운 말이다.

 

너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호텔을 생각했어요.
- CITY HOPPERS, 호텔 가격이 365일 동일한 이유, 고객 관점에서 경험을 설계하라

 

    본질적으로 나라는 사람은 '적당한' 것을 좋아한다. 문제는 '최고로 적당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 때로는 이렇게 안심하고 믿어버릴 수 있는 무언가도 필요하다. 내가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저 적당함인데, 요즘 그들의 행보는 적당함을 넘어선 프리미엄을 추구하는 게 곳곳에 보인다는 생각도 들긴 하고.

 

고착개념에서 벗어나려고 반대되는 생각만 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 반대 방향이 아닌, 제대로 된 방향을 찾아야 한다. 
‘◯◯은 ▢▢이 아니다. △△이다’라는 가정을 계속 해 보면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본질을 찾는다는 것은 브랜드를 정의하는 일이기도 하다.
- 홍성태 (한양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이 세상은 쓸데없는 것이 돈을 벌게 해준다.
- 홍성태 (한양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렇게 한 마디로 딱 찔러주는 게 진짜 스마트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방향 찾기, 쓸데없는 것의 가치 찾기. 언뜻 보면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보면 볼수록 맥을 잘 짚은 문장. 돈을 많이 벌려면, 쓸데없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지만 난 쓸데없는 것 보단 정말 필요한 것을 만드는 걸 더 좋아하지. 그래서 내가 돈을 벌긴 글러먹은 것 같아.

 

서점이 ‘뜻밖의 행운(serendipity)’을 만나는 공간으로 탈바꿈해, 온라인에서는 얻지 못할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 제임스 돈트 (돈트 북스 창립자, 워터스톤스 CEO, 반스앤드노블 CEO)
무엇보다 책방에서의 경험은, 표지나 장정을 보고 마음에 들어 사는 '우발적 책'이랄지, 대형 서점의 획일적 책장이 아닌, 작은 책방들의 사람이 느껴지는 책들, 그리고 '우연한 만남'이라 할 수 있죠.
- CITY HOPPERS, 책방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테크적 우연'을 설계한다

 

    이 두개의 문장은 서로 다른 기사에서 스크랩한 것이다. 같은 달에 본 두 개의 기사에서 이렇게 비슷한 논지의 문장에 하이라이트를 친 걸 보면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깊었나보다. 작년 11월에 스크랩한 문장 중에서 팝업 스토어의 매력을 잡지를 펼치듯이 길에서 우연히 좋은 콘텐츠를 발견하는 즐거움이라고 이야기한 것도 기억나고. 커리어 시작부터 지금까지 온라인 서비스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실물세계와 공간, 오프라인 만남에 대해 더 크게 관심을 갖는것도 이런 이유겠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온라인에서의 큐레이션이 점점 개인화가 대세가 되어가다보니 내가 기존에 좋아하고 향유하던 것에 갇혀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알고리즘이 나를 좁은 세계에 가둬두고 있어. 이걸 깨려면 더 의식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고 시도해야겠지. 잠시 가입해서 이것저것 만져보던 스포티파이를 다시 끊은것도, 카페나 여러 공간에서 들은 새로운 곡들을 찾아서 플레이리스트에 일부러 추가하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부분이기도 하고.

 

건물은 50년 후에도 남아야 하고, 50년 후에 더 좋아야 한다. 
제한된 비용을 이미지에 쓸 것인가, 아니면 퀄리티에 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 데이비드 치퍼필드 (건축가)

 

    세상의 모든 것이 비용과 시간(여기에 때때로 기술이 들어가기도 한다)의 제약 속에서 나름의 전략에 따른 선택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50년 후까지 바라보고 결정해야 하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건축이라는 분야에서 50년은 짧은 기간이기도 하다. 몇천년을 이어져오는 이집트나 로마의 건축물을 굳이 댈 것 없이, 지금 봐도 레이아웃이 신선한 구겐하임 미술관이 이미 60년이 넘었으니.

 

코닥은 사실상 망했다. 그것도 자신들이 최초로 개발한 디지털 카메라 때문이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 된 이후 더 이상 사람들이 필름을 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의 입장] 요즘 구글을 보면서 코닥이 떠오른 이유

 

    어딘가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부분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러면 코닥은 어떻게 했어야 할까?'였다. 이렇게 기존 제품과 상충되는 서비스를 만들면 위험하다는 것은 흔히들 이야기하는 경고 메세지이지만,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디지털카메라라는게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건 아니지 않을까. 사실 이런류의 이야기들을 볼때마다 분명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도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이 꺼림칙함은 구글의 행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챗GPT는 표절과 무감정, 검열이라는 악의 평범성과 같은 것을 보여준다. 이 기술은 일종의 수퍼 자동완성에 의해 표준적인 주장들을 요약하고,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으며,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지능 부족을 호소하고, 궁극적으로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을 하며 책임을 제작자에게 전가한다
- 노암 촘스키

 

    이 시대의 지성 노암 촘스키는 이번에도 의미있는 화두를 하나 던지셨구나.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한 악의 평범성을, 인간의 언행을 토대로 만들어졌지만 '인간'의 행위는 아닌 챗GPT의 산출물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으스스하기도 함. 옳은 주장이 아닌 다수의 주장을 반복하여 생산하는 챗GPT의 결과물이 문제를 야기했을 때, 과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위를 변호하며 모든 책임을 상관에게 돌렸지만, 챗GPT는 제작자조차도 이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용자는 제작자에게, 제작자는 (특정할수조차 없는) 다수의 인터넷 유저들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돌고 도는 무한 책임회피의 굴레.

    이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인터넷에 남겨진 언어를 통해 학습한 모델이기에 필연적으로 이 공간에서 목소리가 큰 일부의 시선이 더 많이 반영되어 있을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학교나 회사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범하게 영위하는 일상은 인터넷에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 무언가에 대한 칭찬이나 긍정적인 시선도 상대적으로 적다.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특별한 이벤트들, 자극적이고 과장된 언행, 혹은 무언가를 향한 끝없는 증오와 진지함에 대한 무비판적인 경멸. 더 나아가, 수면 위에서는 차마 이야기하기 힘든 음침한 욕구와 범죄 행위들. 이런 언어들이 상당수 흘러들어 만들어진 '표준적인 주장'들의 결과가 어떨까. 최소한 아주 흐린 회색빛 미래만은 아니었으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