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공연관람 기록

[221023] 뮤지컬 '마틸다' 이야기

eunryeong 2022. 10. 25. 17:09

    2018년 뮤지컬 마틸다 초연은 내게 조금 특별한 극이었다. 하나의 공연을 2번 이상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내가, 이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같은 공연을 3번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항상 얕고 넓은 관심사를 유지하는 성격상 웬만큼 좋은 극이라도 다시 봐야지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 극을 다시 볼 바에는 다른 새로운 극이나 전시, 또는 여러가지를 경험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이 극을 세 번이나 보게 된 이유는, 친구들과도 같이 이 극을 나누고 싶었고, '어른이 되면'의 그네씬을 다시 보고 싶었고, 조금 더 앞자리에서 이 극을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의 공연을 여러번 경험하는 것의 매력을 알게 된 후, 여러 극들을 몇번씩 반복해보면서 이전보다 더 깊이있는(혹은 아주 사소한 디테일의 변화를 찾아내고 즐거워하면서) 관람을 하게 되었다.

    2022년에 다시 돌아온 마틸다는 같은 프로덕션에서, 다른 극장 무대에, 대부분 동일한 성인 연기자들과, 완전히 바뀐 아역 연기자들로 이루어졌다. 2018년과 동일한 부분은 안정적이었고, 2022년에 달라진 부분들은 신선했다. 특히 이 극의 주인공인 '마틸다'와 학급 학우들은 특성상 시즌마다 완전히 바뀔 수 밖에 없기에, 이번 시즌의 마틸다는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무대예술의 휘발성이 다른 극에 비해 더 강할수밖에 없기에, 한 시즌, 한 무대를 최대한 온전히 즐겨야 하는 것이다.

 

    이번 시즌 마틸다의 관람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습관처럼 예매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던 중, 바로 다음날 공연의 앞쪽 좌석이 아직 예매가능한 것을 보고 무심코 예매를 해버렸다. 예매오픈에 맞춰 표를 잡는 습관이 없기에 앞자리에서 관람을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이 극은 무조건 앞자리에서 꼭 보고싶었기에 기회가 생기자마자 표를 바로 잡아버렸다. 공연 캐스트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인데, 신시 컴퍼니 극은 어느 캐스트로 봐도 만족스러운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도 많이 봄...) 그래도 이왕 앞자리에서 볼 기회가 생겼으니 재림트런치불 공연이라 다행이라고 살짝 생각했다.

    마틸다의 가장 대표적인 넘버는 Naughty! 때론 너무 필요해 약간의 똘끼! 라는 가사가 너무 귀엽고 발랄하고 영국스럽지 않은가!!! 마틸다가 마냥 착한 아이가 아니라, 자기 주장도 강하고 하고싶은 것들을 타협하지 않는 아이라는 게 보이는 노래라서 너무너무 좋고 사랑스럽다. a부터 z까지 알파벳을 이용해서 학교에 대해 노래하는 School Song은 다시 들어도 어떻게 번역을 이렇게 맞춰서 했을까 진짜 신기하고, 교문에서 알파벳에 맞춰 움직이는 앙상블 배우들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합이 조금만 맞지 않아도 크게 다칠 수 있겠다 싶던데 수많은 연습을 통한 강한 믿음으로 이런 멋진 무대가 만들어지는 거겠지. Revolting은 이번에 더 좋아하게 된 넘버인데, 이 곡을 부르기 전 아이들이 트런치불에게 틀린 철자를 대며 저항할 때 브루스만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쵸키를 한번 경험한 브루스가 그때의 고통 때문에 차마 나서지 못하다가, 트런치불이 쫓겨난 후 분연하게 일어나 Revolting을 부르는 이야기 흐름을 4번째 보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여러번 보았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놓친 장면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마틸다를 보는 이유인 When I Grow Up! 이 넘버를 아주 앞에서 볼 수 있었다. 그네가 머리 위로 휙 넘어가는 것도 약간 기대했는데 아쉽게 내 자리까지 그네가 오진 않았다. 제일 앞자리는 그네가 머리 위까지 넘어오려나? 암튼 이 노래는 가사도, 연출도, 스토리도 완벽하지만, 무엇보다 감동을 준다. 아이들이 상상하는 어른의 모습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한편 어른이 되어도 출근 마음대로는 못할텐데 생각하며 슬퍼지기도 하고...  그러다 그네가 앞으로 확 밀려오는 광경을 보며 가슴 한 켠이 벅차오르는 그 기분이란! 이 순간의 느낌만큼은 무대를 보지 않고서는 결코 느낄 수 없기에, 마틸다 무대를 계속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연출과 연기 모두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하다. 신시컴퍼니 극은 항상 그랬다만. 은영마틸다는 당차면서도 상처를 많이 받은듯한 마틸다여서 너무 안쓰러웠다ㅠ 마틸다 대사량이 굉장히 많은데, 어쩜 대사랑 노래를 그렇게 완벽하게 소화하는지! 아직 공연 초반이라 조금 긴장한것 같은데, 후반부에 보면 또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된다. 재림트런치불은 여전히 악독 그 잡채. 혜미허니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허당. 웅곤엄마 정현아빠 합이 기깔난다. 기정사서?펠프스?는 매번 볼때마다 너무너무 따뜻하게 마틸다를 감싸줘서 내가 다 힐링받는 기분이야ㅠ

    그리고 가까운 자리에서 보다보니 앙상블 배우들의 연기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신시컴퍼니 극을 많이 보다보니 눈에 익은 배우들도 많았는데, 특히 강동주 배우의 파워풀한 동작이 계속 눈에 들어왔고(역시 댄스캡틴!) 어린아이 연기가 굉장히 귀여웠다. 이승일 배우의 루돌프는 아주아주 뇌쇄적이었고, 유철호 배우의 탈출마술사 연기도 가까이서 보니 너무 절절해서 마음이 아팠다. 미처 다 적지 못한 다른 배우들도 모두 멋진 연기로 마틸다를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있으니, 마틸다 관람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멋진 경험이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아니라면 뭐... 어쩔 수 없고. 

 

은영마틸다, 재림트런치불, 혜미허니, 웅곤엄마, 정현아빠. 신시 극에서 많이 보았던 반가운 앙상블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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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 커튼콜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