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강연내용 정리

[230317] 광화문 월대 및 주변부 고고학 이야기

eunryeong 2023. 3. 26. 18:09

    얼마 전, 기사로 일제시대때의 철로가 복원 중 발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복궁 앞을 잔뜩 막아둔 가벽 안에서 진행되던 광화문 월대 발굴 도중, 예상치 못한 전차 철로가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었다는 것. 그와 함께 이 공간을 3일간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는 소식도 접했다. 역사학과 졸업생이자 라이트한 철덕을 자처하고 있는 나로서는, 마침 백수 기간에 진행되는 이 이벤트를 도저히 놓칠 수 없어서 시간 맞춰 신청하고(고백하자면 공연 티켓팅도 이렇게 해본 적 별로 없음...) 이 날만을 기다렸다.

    약 한시간 반 가량 진행된 이 강연은 서울시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으니, 상세한 내용은 유튜브의 설명에 맡기기로 하고 이 후기에서는 개인적인 감상만 몇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강연 내용을 볼 수 있는 유튜브는 포스팅 맨 아래에 링크시켜두었으니 참고하시길.

 

    강연의 첫 코스는 서울정부청사 옆 사헌부 터. 세종문화회관을 이래저래 많이 가다보니 이 길도 꽤나 여러번 지나다녔는데, 이 공간이 있는줄은 이번 강연을 통해 처음 알았다. 강연 끝나고 조금 더 자세히 봐야지! 생각했는데 하루종일 갤러리 다니랴 강연 들으랴 하다보니 까먹었네 ㅎㅎㅎ 다음에 꼭 봐야지!

 

01

    사헌부 터와 광화문 광장에서 육조거리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본격적으로 발굴현장을 보러 이동한다. 발굴현장 가림막에 있는 그림들도 허투루 보면 안되는 것이, 과거 광화문의 사진 자료들이 담겨있기 때문! 사진을 보며 복원된 후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 또한 재밌을 것 같다. 참고로 경복궁 앞에서 경복궁에 대한 설명도 간단히 이야기해주셨는데, 자금성이 9,800칸의 궁궐인데 경복궁은 7,400칸짜리라고 한다. 국토의 크기 차이가 어마어마한데 그에 비해 경복궁의 크기가 참 커도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가 좌우로 경희궁, 창덕궁과 창경궁이 붙어있었으니. 정말 누구의 말마따나 한양은 궁궐만 있는 도시였던듯. 

 

012

    첫번째 발굴현장. 왼쪽으로 온전히 보존된 전차선로가 보이고, 그 아래쪽에 열심히 발굴중인 유적지들이 보인다. 돌무더기들은 주춧돌을 놓기 전 기초공사 단계에서 돌들을 쌓아두는 적심인데 일렬로 나란히 보이는 이 돌무더기들을 보며 건물의 크기와 방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전차선로가 발굴된 지층과 그 아래 건물잔해가 발견된 지층간 차이를 보면, 아마 발굴 초기에 이 선로가 발견된 것 같은데 다른 구역 발굴을 먼저 하면서 일단 이 부분은 미뤄둔 듯 하다. 향후 이 선로들은 철도박물관으로 옮기는 것으로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옮기기 전 발굴홍보도 할 겸 일반인들에게 지금의 모습을 공개하는 듯.

    이 전차선로의 거취와 관련하여 인터넷에서는 이런 저런 의견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서울 곳곳에 있었던 전차노선들과 단 한 곳에서만 발굴할 수 있는 궁궐과 행정기구 건물들의 발굴을 놓고 비교한다면 당연히 후자가 우선순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노선이 남아있는 게 신기하고 재밌는 볼거리는 될 수 있겠지만, 굳이 이 자리에 남겨두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흥선대원군 시기에 뒤늦게 중건된 경복궁을 되살리는게 뭐 그리 대단한 역사적 가치가 있냐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글쎄요 그 흥선대원군 시기가 전차가 깔린 시기보다는 확실히 앞서고 희소성에서도 경복궁이 전차보다 앞서고. 심지어 여기가 최초의 노선 그런것도 아님. 

    여담이지만 서울에 전차가 제일 처음 깔린게 1899년, 도쿄에 전차가 깔린 시기보다도 빨랐다는 건 재밌는 이야기다. 1895년에 전차가 깔린 교토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시기의 차이를 생각하면 굉장한 일이지.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게 빨랐다는 점에서 고종은 꽤나 재밌는 캐릭터이기도 한데, 국력이 조금 더 받쳐주었다면 격동의 시기에 나름 선방하는 군주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하나 확신하는 건, 만약 고종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다면 꽤나 빠릿빠릿하게 사업 아이템 잘 찾아서 성공했을 것이라는 것.

 

01234

    발굴현장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와봤다. 제일 안쪽에 아주 넓고 평평한 단이 바로 월대의 기초 부분. 너비가 50미터나 되었다고 하니 나중에 복원 완료되면 여기에서 캠핑해도 되겠다. (흥선대원군이 하늘에서 노려볼라나...) 중간에 돌로 쌓아놓은 수로같은 것은, 수로다. 조선시대때부터 사용하던 수로. 동그랗게 콘크리트로 막아놓은 것은 일제시대때의 흔적.

 

012345

    발굴현장 가장 안쪽까지 들어와 설명을 들은 후 돌아가는 길, 온전히 남아있는 철길 사진을 한번 더 찍어보았다. 모든 것은 갑작스럽게 끝이 날 때 더 온전하게 보존되는 법이 아닌가 싶다.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하루 아침에 화산재에 파묻힌 폼페이, 인기 절정의 시기에 생을 마감해 세기의 아이콘으로 남은 마릴린 먼로.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도로를 정비하느라 미처 철거당할 새도 없이 콘크리트로 덮여버린 전차노선. 

 

 

    첫 발굴현장에서의 강연이 끝나고 다음 발굴현장으로 이동하는 길. 가림막에 있는 이 일러스트에서 볼 수 있는 이 돌은 월대의 난간을 구성하는 동자라고 하는 돌이다. 지금 경복궁의 (짜리몽땅한) 월대에도 원래의 돌이 하나 남아있는데, 마지막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색이 확연히 바랜 동자석이 그것.

 

012

    마지막 발굴장소는 의정부쪽 터. 사실 이쪽 편은 도로 너머 의정부 터도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반대편인 삼군부 쪽은 현재 정부종합청사가 우뚝 서 있는 곳이라 발굴은 하지 못하지만, 삼군부 건물 세 개중 두 개가 현재 남아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육군사관학교 영내라고 하는데, 이거 왠지 기억 날거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분명 여기 놀러갔을때 오래된 건물 하나 본거 같은데. 암튼 교수님의 원대한(?) 꿈은 용산시대도 막을 올린 마당에, 정부종합청사도 용산으로 옮기고 아예 삼군부 건물도 원래 자리에 옮기면 좋겠다! 는 포부를 밝히셨다 ㅋㅋㅋㅋ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쉽지 않긴 하겠지만 또 전공자의 마음으로는 이런걸 꿈꿔볼 수 있지!

    흥선대원군 시대에 크게 중건한 경복궁이 일제강점기 36년을 거치면서 원래 면적의 10%도 채 남지 않은 채 훼손되었고, 이를 복구하기 위해 2040년? 2050년?까지 장기적인 계획으로 진행중이라고 한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약 40%까지는 복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나 광복 후 백년 가까이 지나도록 40% 가량을 겨우 복원하고, 그 이상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복원할 수 없는 부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마저도 역사의 흔적이라고 생각해야겠지. 교수님 또한, 원래의 모습을 100% 복원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주셨고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개인적으로는 반드시 과거의 흔적을 복원하는 것이 필요한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그 방향이 파괴와 상실이라고 할지라도. 라고 생각하지만, 일제시대때 굳이굳이 궁궐들을 열심히 뜯고 허무는 짓을 한 것을 시대의 흐름이라고 그냥 놔두는 것도 배알이 꼴리는 일이다.

 

01234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유튜브는 여기!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