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강연내용 정리

[230401] 공연탐탐 - 세상 친절한 '파우스트'

eunryeong 2023. 5. 29. 12:50

    강연을 들은지 거의 두 달이 되어가는 시점에, 더 늦으면 정말 안되겠다 싶어 강연록을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원래는 훨씬 길고 방대한 메모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 모든것을 그대로 옮겨봤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의미없는 쓰레기가 될 터이니, 내가 조금이나마 스스로 소화한 분량과 내용에 대해서만 다루는게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원래 이 강연은 파우스트 공연을 보기 위해서 신청한 것이었는데, 정작 예매해 둔 그날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서 공연은 보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별 수 없지 뭐.

 

- 옛날에는 '표절'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든, 혹은 모두가 알고 있는 스토리를 다시 가져오고 재정리하고 변용하는 것이 창작의 방법 중 하나였다는 것. 생각해보면 오늘날에도 이미 있는 이야기를 리메이크하거나, 모티프로 삼거나, 패러디를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에 가져올 수 있긴 하다. 다른 점이라면 오늘날에는 원작자의 동의가 필수라는 것, 그리고 원작자에게 일부 저작권료를 협의해야 한다는 것 정도?

 

- 신화적인 인물로 종종 여겨지곤 하지만, 일단 기록상으로는 파우스트라는 인물이 실존하였다고 한다. 실존인물 파우스트가 살았던 15세기 혹은 16세기의 특징으로는 많은 변화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시기, 마녀사냥이라는 전근대적인 문화와(사실 마녀사냥이 가장 기승을 부린 때는 중세가 아닌 그 이후이긴 하지만) 아메리카라는 신대륙 발견이라는 역사상의 '발전'이 공존한 시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공존하기도 한 시기.

    이 불안정한 시대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있고 미래 또한 예측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굉장히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 파우스트였다. '석사 게오르크 자벨리쿠스, 파우스트 주니어, 강신술사, 점성술사들의 원천, 마술의 제2인자, 수상술사, 기상술사, 화상술사, 수점의 제2인자'라는 그의 명함에 붙은 어마어마한 길이의 수식어가 바로 그의 자존심이자, 그가 포장으로 만들어내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이리라.

 

- 그가 신화적인 인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아주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연금술 실험을 하다가 폭발사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시신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던 이 사고로 인해 그의 영혼이 악마와의 계약 만료로 인해 악마에게 귀속되었다느니 등등의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평생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로서, 그의 죽음이 비극이라기보다는 영원히 이어질 명성(비록 그것이 위대한 인물로서의 기록은 아니라 하더라도)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죽음이지 않았을까.

 

- 이 미스테리한 인물을 다루고자 하는 소설이 여럿 있었는데, 인쇄업자 요한 슈피스의 첫 작품의 히트에서 시작하여 희곡, 소설, 인형극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었다고 한다. 괴테가 처음 파우스트 이야기를 접한것 또한 어릴때 파우스트 인형극을 본 것이었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의 괴테 이야기라니 이거 진짜일까? 하는 생각이 첫번째. 그리고 저 이야기가 어린이용 인형극의 소재였다니 하는 생각이 두번째.

 

- 파우스트의 1부는 그레트헨이라는 여성과의 연애장면과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파우스트의 무책임한 행보가 주를 이루는데 이 이야기의 모티프가 된 재판에 괴테가 참관하였었다고 한다. 주잔나 마르가레타 브란트라는 이 여성의 재판 참관 후 처음 쓰여진 20대 시절의 파우스트는 주인공을 비판하는 논조에 가까웠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1막까지의 파우스트 인생을 볼때 그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주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20대에 적힌 단촐했던 이야기가 80대가 되면서 이런 저런 내용들이 추가되면서 스케일이 아주 커지게 된다. 1부에서는 파우스트 개인의 이야기에 그친다면 2부는 근대 인류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정도. 다만 이런 방대한 내용으로 인해 극본이 아주아주 길어지게 되는데, 햄릿이 208 페이지인 반면 파우스트는 무려 758 페이지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한다. 이 작품 전체를 무대에 올릴 경우 23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이때문에 대부분은 천상의 서곡과 1부만, 그것도 일부만 발췌해서 올린다고. 생각해보니 국립극단에서 보았던 파우스트 엔딩도 1부 내용만 살짝 다뤘던 듯 하다. 

 

- 파우스트의 전체 구조는 총 5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강의에서 나온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1. 헌사 : 괴테가 오랫동안 중단했다가 다시 집필을 시작하는 감회를 묘사

    2. 극장의 서곡 : 이 작품의 성격에 대한 사전 설명
    3. 천상의 서곡 : 천상의 신과 악마가 파우스트를 놓고 하는 내기
    4. 비극 1부 :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사랑 이야기
    5. 비극 2부 : 파우스트가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펼치는 활동 이야기

 

- 워낙 방대한 작품이다보니 다양한 관전포인트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부분은 신과 악마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었다. 신이 보는 인간은 노력하는 존재, 노력하다가 방황도 하지만 자신이 가야할 선한 길을 찾아가는 존재로 궁극적으로는 선을 추구한다고 보는 반면 악마의 입장은 노력한다고 해도 헛된 노력을 하기 일쑤이고, 이성적인 존재하고 자부하지만 언제든 동물의 상태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본다. 둘 다 인간의 노력하는 모습은 인정하지만 그 결과물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에 대한 내기상대로 신이 고르고 고른 파우스트라는 존재가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악마가 이겼다고 보아야 하지 않나...라는게 나의 생각. (참고로 파우스트 전체를 읽어본 것은 아니고, 대략적인 줄거리를 통해 파악한 모습이긴 하다)

 

- 파우스트가 이 극 내내 보여주는 모습은 대부분이 성공적이지 못하다. 대부분이 실패하고 마는데, 그럼에도 파우스트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다시 시도한다. 파우스트적인 인간상이란 실패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도전하는 것이고, 그의 이런 자세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이 극의 의미-라고 많은 연구자들이 이야기하는 듯 하다.

 

- 아주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파우스트라는 인물이 완벽하지 않고 오히려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그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레트헨의 인생이 너무 불쌍해서 막 공감이 간다거나 진지하게 그의 삶을 통해 내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거나 하지는 않다. 아무래도 몇백년 전의 작품이라는 한계도 있을테고, 픽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 성향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