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강연내용 정리

[230323] 마우리치오 카텔란 : WE 연계 <작가연구 강연 시리즈 1: 카텔란 엔터프라이즈>

eunryeong 2023. 3. 26. 21:37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이번 전시와 그의 작품세계와 관련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러 간 강연시간. 이직 후 첫 출근일자 조율때문에 이 강연을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첫 출근일을 어느정도 조정할 수 있어서 요번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 강연들은 아마 듣기 어려울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이번 강연의 주요 내용은 '카텔란 엔터프라이즈'라는 제목처럼 카텔란이 고귀하고 존엄한 미술을 어떻게 일상의 영역으로 (이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끌어내리고, 자신의 작품활동을 산업화 하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렇게 적고 보면 굉장히 거창한 무언가를 한 것 같지만, 또 미술계 전반을 놓고 보면 카텔란은 아주 작은 규모의, 소소한 움직임이라는 것 또한 재밌는 지점. 적다보니 강연자분이 하신 이야기와 내가 몇가지 생각 덧붙인 것들이 막 섞여있는데, 그냥 블로그 주인장의 머릿속에서 뒤섞인 이야기구나 하고 가볍게 넘겨주시길 요청드립니다. 

 

 

- 강연에서 카텔란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이야기 해주셨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들은 갤러리 공간 자체를 이용한 것들이었다. 1989년 첫 개인전에서 그는, 갤러리에 '곧 돌아옵니다(TORNO SUBITO)'라는 팻말만 건 채 전시기간 내내 나타나지도, 어떠한 작품도 들여놓거나 보여주지도 않았다. 2002년에는 뉴욕에 롱 갤러리(Wrong Gallery)를 세우고 '꺼져. 문 닫았어(Fuck off. We're CLOSED)'라는 문구를 갤러리 앞에 붙여두었다. 이 갤러리는 1평 남짓한, 출입문과 아주 작은 공간만 있는 곳으로 웬만한 작품 한 점도 들어가기 어려운, 전시회를 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장소이나,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이 곳을 임대하여 잘못된-갤러리로 만들었다는 것.

    재밌는 것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결코 이 공간이 의미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갤러리,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힘을 크게 인지하고 있다. 발칙한 현대미술사에서 저자는, 카텔란이 그의 모든 작품은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환경을 필요로 하며, 그 밖의 다른 공간에서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 이야기한다. 심드렁하게 공간을 비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도, 갤러리 혹은 미술관에서 행해지기에 그것이 예술로 취급받는 것이다. 예술의 렌즈를 끼고 그의 작품을 보아줄 사람이 없다면, 그의 작품은 길거리에 있는 커다란 입간판 혹은 조악한 조형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 또 하나 충격적인 작품은, Another Fucking Readymade. 제목에서 감히 뒤샹의 마스터피스를 거론하는 패기도 대단하지만, 이 전시의 정말 놀라운 점은 Readymade의 대상이 무려 다른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이라는 것. 주변의 다른 갤러리에서 작품들을 훔쳐서 전시하려고 했고, 실제로 훔쳐왔으며, 이에 경찰이 와서 이 상황을 설명하느라 (아마도 갤러리 측이) 진땀뺐다는 이야기를 보고 아 이 사람은 노이즈 마케팅의 선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술자리에서 낄낄대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을수는 있어도 저걸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 근데 그걸 진짜로 해내는거지. 그것도 얼마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지, 그러면서도 절대 '완전히' 배제되지 않을 선을 철저히 계산하면서.

 

- 상품의 이용가치와 자산가치가 불일치하는 세상, 자본가들의 눈에는 상품의 실제 효용보다는 얼마나 큰 이윤을 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고 가장 큰 판단기준이라는 점에서 상품이 추상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견해가 굉장히 신선했다. 의미와 대상의 관계가 끊어져가는 시대. 상품을, 작품을, 나를 팔기 위해 광고와 마케팅이 중요해지는 시대. 다시 말해, 마케팅이 가치를 결정하는 오늘날. 예전에 퍼스널 브랜딩 단상을 적으면서 이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는데, 난 이 시대에 그다지 어울리는 인물은 아닌 것 같아.

 

- 현대 사회에서 미술이 가지는 역할에 대해, 결코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안전한 자산으로 기능하는 것과 이에 발맞춰 산업화되고 공장화된 미술품 제작이 어딘가 씁쓸했다. 어느 분야건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고 그 선순환으로 시장이 굴러가야 하는건 맞지만, 때로는 그들이 만드는 작품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예쁜 인테리어 소품 혹은 포스터와 얼마나 다른가? 생각해보면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카텔란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의 작품이 전시관을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거겠지.

    근데 왜 리움에서는 미술관 밖에 노숙자 모형을 두었는가 생각해본다면, 이제는 미술관 밖에 작품을 두어도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판단에서가 아닐까 싶다. 화제성을 면밀하게 계산해보고 이번에는 요걸 홍보아이템으로 삼은거지.

 

- 구겐하임에서의 회고전 사진도 있었는데, 모든 작품을 줄에 매달아놓았다는 설명만 보았을 때에는 전시관이나 나선형 동선 위에 작품을 매달아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나... 나선형 비탈길 가운데 뻥 뚫린 보이드 공간에 아주 긴 줄을 매달아서 작품을 주렁주렁 매달아두었네. 이렇게 작품을 특정한 기준에 따라 순서대로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작품을 줄에 매달아두어 관객들에게 각각이 균등한 존재감을 가지고 보여질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런 작업을 굳이 나선형 동선을 가진 구겐하임에서 했다는 것도 참 재미있다만, 성당 미니어처나 권총자살한 다람쥐 모형 같은건 매달아둘 수 없을텐데...하는 생각도 살짝 들긴 했다.

 

- 그가 창간한 잡지 'Permanent Food'는 다른 잡지에 들어간 이미지들을 복제하여 다시 실어낸 잡지라고 한다. 마치 인스타그램의 리그램이나 핀터레스트의 핀 기능과 유사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디지털 혹은 인터넷을 통해 이미지들을 쉽게 복제하고 소유하며 가공할 수 있는 문화적 변동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듯. 요거 검색해보니 Toilet Paper(요거도 카텔란이 만든 잡지)라는 사이트에서 과월호들을 판매하고 있다. 재고가 있는 것들은 약 60유로에서 100유로 정도인데, 희귀본들의 가격을 생각해보면 뭐 납득이 안되는 가격은 아니지만 내가 살 일은 없겠다. 아니 근데, 여기 잡지만 파는것도 아니고 인테리어 소품도 팔고 뷰티라인도 있네 세상에!!! 아조씨...? 

    덧. 그렇게 사이트에서 몇개 구경하다가 사고 싶은 커텐이 보여서 혹시...?하고 가격을 봤지만 149유로라는 숫자를 보고 조용히 닫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엄청 비싼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번에 확 질러버릴 가격도 아닌데, 이 미묘함이 참 사람을 힘들게 하네요. 진짜 카텔란은 그런 점에서 악마의 재능을 가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