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2022) 미국 - 시카고, 뉴욕 등

미국여행 Day 18. 뉴욕 (디아 비컨)

eunryeong 2023. 3. 3. 23:15
Day 18 (2022. 7. 9.)
디아 비컨

 

    이 날의 예정된 일정은 단 하나, 디아 비컨에 가는 것. 뉴욕에서 비컨까지 거의 두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관람시간까지 고려하면 이 날은 다른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울 것 같아 온전히 디아 비컨! 이라는 목표 하나만 설정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비컨이라는 동네를 조금 더 돌아다녀볼까 하는 정도? 암튼 꽤나 느슨한 여행계획...이었지만 그다지 여유롭지만은 않았던 하루.

 

    비컨까지 가는 기차는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탑승해야 한다. 역으로 가면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발권기들이 여럿 있는데, 이 발권기에서 비컨행 왕복권을 구매했다. 시카고나 나이아가라 폴스에서 탔던 암트랙 열차는 모바일 티켓으로 입장했는데 메트로 노쓰 레일로드는 옛날 코레일 티켓같이 생긴 종이를 주네? 하긴 예약구매가 아니라 방식이 좀 다른가. 암튼 표를 구매하고 기차시간까지의 짧은 여유시간에 역 내부 사진을 찍고 구경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역이기도 한 이 어마어마한 건축물은 땅값 비싼 뉴욕에서 고층빌딩 사이에 당당하게 (상대적으로) 낮고 넓은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는데, 돈의 논리에 이 건물도 사라질 뻔 했지만 펜 역의 눈물나는 희생으로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뉴욕 하늘을 연필타워들이 뒤덮고 있는 이유'라는 유튜브 참고하시길. 웅장한 대합실과 별자리가 새겨진 에메랄드빛 아치형 천장, 반원형 창문 틀에 새겨진 다양한 조각들을 구경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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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에 탑승한 후 승차권 사진 한 장. (라이트하지만 나름 철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이런거 하나 찍어줘야 한다) GCT에서 Beacon까지, Two Rides in either direction이라고 적힌게 왕복이라는 의미겠지? 왕복 운임이 35달러였군요. 4만원 조금 넘나... 가는거 오는거 합해서 4시간 걸리는데 무궁화호 타고 서울-대구 거리인거 생각해보면 역시 비싸긴 비싸네. 참고로 좌석도 (당연히) 지정석이 아니기 때문에 기차에 타자마자 알아서 자리 찾아야 한다. 다행히 그랜드 센트럴 역이 출발역이라서 좌석 찾는데 어려움은 없었음.

 

 

    두 시간을 달려서 비컨역에서 내리면 디아 비컨으로 가는 길에 대한 이정표가 역 안에서부터 계속 붙어있다. 이 역에서 내리는 사람 중 많은 수가 (시간이 조금 지나서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거의 다였던것 같기도 하고...) 이 미술관을 방문하러 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줄줄이 사람이 이동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라서 본인이 알아서 길 잘 찾아가야 함. 도보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으니 시골길 걷듯 느적느적 걸어가면 된다. 한 십분 정도 걸으면 도착! Dia 표지판을 지나 들어오다보면 정면에 보이는 큰 건물이 미술관인데, 입장을 위해서는 우선 왼편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금속 재질의 입장권을 옷에 적당히 끼워두고 입장하는 시스템.

    디아 비컨(Dia Beacon)미국여행 15일차 포스팅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디아 첼시(Dia Chelsea)와 같이 Dia Foundation에 소속된 전시관이다. 비컨과 첼시, 이 두 곳에 있는 전시장이 규모가 크지만 그 이외에도 현대 미술작품을 접할 수 있는 곳을 여럿 관리하고 있다. 롱 아일랜드에 위치한 Dia Bridgehampton이나, 뉴욕 시내에 위치한 Walter De Maria의 Earth Room이라든가. Dia 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는 장소들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고, 방문할 수 있는 곳들에 대한 정보도 찾아볼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체크하시길. 참고로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Earth Room이 수리중?이라 방문할 수 없었다. 구글 지도만 믿고 다니다보면 바뀐 휴일이나 임시휴일을 놓치거나 이런 수리중 정보를 보지 못한 채 움직이게 될 수 있으니, 가장 정확한 정보는 무조건 홈페이지에서 더블체크! 참고로 홈페이지 들어가봤더니 2023년 3월 2일자 기준으로 RM씨의 공연이랑 인터뷰가 블로그 최상단에 올라와있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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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은, 넓다. 아주 넓다. 정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다. 현대미술관들이 대체로 넓은 편이라 큰 규모의 미술관에도 좀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미국의 스케일과 현대 미술작품이 결합되니 와...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저 만큼도 물론 넓지만, 이건 그냥 통로일 뿐. 이런 통로가 반대쪽에도 있고, 그 너머 전시관도 있고, 그 바깥쪽에 또 작품들이 있다. 너무 많은 작품들이 있다보니, 물량에 지쳐 압도되는 느낌도 없진 않다. 참고로 지하에도 전시가 있다...! ㅎㅎㅎㅎㅎ

    모든 작품을 소개하는건 언제가 될지 모를 미술관 관람기로 대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미술관 분위기와 몇 가지 미술작품에 대한 간단한 단상 정도만.

 

1. Charlotte Posenenske의 작품들. 배관의 모듈단위 같아 보이는 각 피스들을 이리저리 연결하여 배치했는데, 알루미늄으로 만든 것들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연약한 소재인 골판지를 이용해서 만든게 꽤 재밌어보였다.

2. Sam Gilliam의 작품. 히피히피해.

3. Robert Smithson의 'Map of Broken Glass (Atlantis)'라는 작품. 깨진 유리조각들이 무질서하게 놓여있는 것만 보았을때는 뭐지? 싶었는데 제목과 함께 보고나니 이 유리조각 덩어리들이 아틀란티스로 느껴지는 신기한 일이.

4. 연극 '아트' 후기를 작성할 때 언급했던 Robert Ryman의 작품들. 이건 아주 부분일 뿐, 전시관에서는 훨씬 많은, 그리고 훨씬 다양한 '하얀 판때기'들을 볼 수 있다. 

5. 그 유명하신 앤디 워홀님의 작품입니다. 색감이 제 취향이군요.

6. Sol LeWitt의 작품. 사진으로 보면 크게 느껴지지 않는데, 평면에 아주 단순하게 그린 그림인데 멀리서 보면 입체적인 도형이 떠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아주 단순한 형태로 회화의 본질에 도전하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왠지 아닐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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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곳을 찾은 가장 큰 이유, 바로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Torqued Ellipse 시리즈를 보기 위해. 아마도 RM씨의 인스타그램이었나? 디아 비컨에 방문해 이 작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이걸 보고 뉴욕에 가게 되면 이 곳을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를 이곳으로 이끈 작가이니만큼 리처드 세라라는 이름도 조금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시카고 현대미술관이나 MOMA에서 만난 그의 작품들은 이곳에 대한 내 기대치를 한껏 올려주기에 충분했다.

    현대미술, 특히 설치작품들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마주했을 때의 인상이 아주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조금 더 특별했다. 내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크기, 붉게 녹슨 질감, 커다란 공간이 비좁아보일 정도로 가득 채워 배열된 작품들 사이를 거니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특별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돌돌 말려진 작품의 틈새로 들어가는 경험이었다. 마치 대공분실의 나선형 계단을 걷는 것 같이 뱅뱅 돌아가다보면 이 곳이 어디즈음인지, 얼마나 왔는지, 이 길이 끝나기는 할지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지럽다. 기껏해야 철판 두세겹을 사이에 둔 공간으로 건너온 것 뿐인데도 마치 이세계로 온 것만 같다. 이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두었어야 하는데 라는 아쉬움을 이 방을 나오고나서야 가졌지만, 기록때문에 굳이 다시 발걸음 하는것도 번거로운 일이라 단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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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작품들 몇 개 더.

 

1, 2 - Michael Heizer의 작품인 North, East, South, West. 숭덩 잘려버린 바닥, 그리고 그 아래로 더 끝없이 이어지는듯한 깊은 구멍의 작품을 바라보다보면 911 메모리얼 파크가 연상되기도 한다.

3 - Imi Knoebel의 작품들이 잔뜩. 이 미술관에 있는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이런 의도로 만들었구나, 이렇게 바라볼 수 있겠구나 하며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보았는데 이 작가의 작품만은 잘 모르겠더라. 이해되지 않는 것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도 필요하겠지 아마.

4 - John Chamberlain 작가의 Dooms Day Flotilla. 햇볕이 들어오는 창문을 배경으로 하니 정말 함대같아 보이기도.

5 - 디아비컨의 창문. 불투명과 투명, 가는 격자와 보다 굵은 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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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층 전시실 구석진 곳과 지하에는 Dan Flavin의 작품이 있다. 첫번째 사진에 있는 이 작품은 지하의 아주 넓은 공간에 배치되어 있는데, 홈페이지를 보니 Closing Soon에 전시가 있는걸로 봐서는 곧 철거될 예정인가보다. 왠지 조금 아쉬운 기분. 두 번째 사진의 작품은 단순한 형태이지만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다른 형상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게 재밌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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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넓은 미술관에서 나와 식사를 하러 가려면 또다시 십여분을 걸어 비컨역 근처로, 그리고 문을 연 식당을 찾아 또 한참을 헤매야 했기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미술관 내 카페에서 간단하게 배를 채웠다. 먹을만한게 별로 없어서 야채스틱과 후무스를 골랐는데 맛은 야채스틱과 후무스맛. 참고로 야채스틱은 원래부터 매우 좋아했고, 후무스는 비오는 날 우연히 들어간 중동음식점에서의 경험 이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보기에는 단촐하고 별 맛 없어보이지만 실제로는 제가 꽤나 좋아하는 식단이라는 이야기. (그러나 저 양은... 식사는 아니긴 해...) 카페 건물 안에는 멋들어진 문구가 천장 근처에 적혀있어서 기억해두려고 일단 찍어놓았다. 까먹고 있었는데 포스팅 쓰는 김에 이 사진도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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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관람을 마치고 다시 역으로 돌아가는 길. 한적하고 아무것도 없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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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컨역에서 다시 뉴욕으로 가는 길. 지금까지 탔던 기차들은 모두 시발역에서 탑승했기 때문에 자유석이라고 앉을 자리를 찾는게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다른 역에서 출발한 기차에 탑승해야 하기 때문에 혹시나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지 살짝 걱정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역에서는 다소 좌석이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허드슨강가쪽 창가에 앉을 수 있었음! 뉴욕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이 많아지고 서서 이동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미국에서 처음 본 붐비는 교통수단...이라고 할 수 있을듯. 이만큼 붐비는 걸 본게 (나중에 적을) 양키스 경기날의 지하철 정도? 아 양키스 경기날이 훨씬 더 붐비긴 했다 하긴.

    참고로 뉴욕-비컨 라인은 나이아가라에서 올 때 이미 동일한 경로를 지난 적이 있다. 나이아가라에서 올때는 펜 스테이션, 비컨에서 오는 길은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이 종착역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물론 두번째 보는 길이라고 해서 더 기억에 잘 남고 그런거는 없다. 마지막 사진은 어느 역에서 만난 커다란 동력차량이 인상적이어서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전기차량은 아닌것 같은데 아마도 디젤 차량일라나.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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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뉴욕에 돌아와서는 그랜드 센트럴 역 안에 있는 문구점에서 몇 가지 책과 소소한 문구류도 사고, 숙소로 돌아와 우버이츠로 음식도 주문해보았다. 그것도 무려! 한국식 짬뽕을! ㅋㅋㅋ 효동각이라는 중국집이 딱 배달이 되는 거리이길래 시도해보았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은듯? 우버이츠 기본 배달료는 대체로 한국이랑 비슷한 정도? 생각보다 높진 않았는데, 팁을 추가로 조금씩 챙겨주게 되더라. 음식가격이 홀이랑 달랐는지는 모르겠다. 굳이 비교해보지 않아서. 참고로 짬뽕은 아주 맛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런던에서도 뉴욕에서도 짬뽕은 꼭 먹었구나 나.

    이렇게 미술관 한 곳과 소소한 쇼핑, 배달시켜먹은 저녁식사로 이날의 여행은 끝. 다음 날에는 숙소를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미리 짐을 열심히 챙겨두었다. 어느새 뉴욕 여행도 일주일이 되어간다는 이야기!